If this is coffee, please bring me some tea; but if this is tea, please bring me some coffee.

-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

 

링컨은, 최소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을 놓고 보자면,

수다쟁이야. 좋게 이야기하면, 이야기꾼.

 

링컨이 커피를 좋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어느날 한 레스토랑에서 그는 저리 말한 것으로 알려졌어.

정확한 맥락은 역시 알 수 없어. 전해진 바로는 링컨에게 커피가 나왔고,

그 커피를 마신 링컨, 형편 없는 맛 때문에 저런 미국식 유머(?)를 작렬했다고 하더라.

(커피와 관련해 유일하게 전해오는 링컨의 저 말은 'Humor'로 분류되지!) 

 

 

넌, 

이 싸늘한 봄날, 느닷없이 왜 '링컨'을 꺼내느냐고 물었지.


어젠(14일) <링컨>을 두 번째 봤어. 시사회에 이어. 

<링컨>을 처음 만났을 때, 참으로 감동적이고 먹먹했지. 쿨럭~ 울음을 지었다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2.12 ~ 1865.4.15)

4월15일, 148주기. 

1865년 4월 14일, 포드극장에서 저격 당한 링컨은 포드극장 가까이 있는 페터슨 하우스(Petersen House)로 옮겨졌고, 이튿날 오전 7시22분, 사망 선고를 받았지.

그러니까, 링컨, 암살. ㅠ.ㅠ

나와 생일이 같은(다윈은 링컨과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났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은 56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어. (흥미로운 사실은, 다윈은 더 오래 살긴 했는데, 1882년 4월 19일 사망했지. 같은 날 태어난 두 사람, 죽은 날짜도 비슷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 독립선언문에 기초해 '흑인=노예'라는 제도적 틀을 깼던 평등의 아이콘은 스러졌어.


(* 노예해방에 대한 링컨의 진심을 둘러싼 의심도 여전히 있어. 설이 설설 난무하지.

그 핵심은 링컨이 노예제 폐지보다 연방 통일에 더 중요한 방점을 두고 있었다는 것.

링컨은 남북전쟁 발발 후, Horace Greeley 기자에게 쓴 서신에서 이렇게 적었어.

"이 전쟁에서 내 최고 목표는 연방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도를 구하거나 파괴하는 게 아니다. 노예를 해방하지 않고도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요, 노예를 해방해야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

<링컨>은 연방을 위해 노예해방이 링컨에게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고 말하지 않아.

극의 전개를 보면, 되레 반대에 가까워. 연방 유지라는 명분과 전쟁의 유리한 국면을 위해 노예제도 폐지를 들고 나왔다면, 굳이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킬 필요는 없었다는 거지. 그렇게 회유와 매직까지 하면서 힘을 뺄 이유, 없었지!)  

 

 

"링컨은 그럼 연방주의자였던 거야? 노예해방론자는 아니고?"


당신의 물음에 나는, 다른 말보다 커피를 건넨다.  

 

"자, 오늘 밤9시의커피. 이름은 '평등(Equality)'"


연방 통일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손,

노예제 폐지를 위한 링컨의 신념은 확고한 것이었어.


"노예제도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세상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그 확신, 미국 독립선언문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에 기반을 둔 거야.

미국의 혁명 또한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듯. 

 

어때?

그 커피_평등, 링컨의 유머처럼 차(tea)로 바꿀 이유는 없지?


"응, 커피 맛 참 좋은데. 뭐랄까. 세계의 평등한 기운이 느껴져. ^.~ 이번엔 링컨을 블렌딩한 거?"

 

하하. 선수 다 됐는 걸!

링컨,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대.

헌데, 그 우울증이 그에겐 '저주받은 축복'이었다는 견해들이 많아. 

우울증 덕분에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는 왠지 멜랑꼬리한 결론인데.

 

 

자, 이콸러티 한 잔 하시고. 


링컨은 어릴 때부터 타인, 동물의 불행에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했대. 남부 출신이었지만 노예해방에 관심을 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는 거지.

 

우울이 자신의 밑바닥을 향하게만 놔두지 않고, 타인의 우울도 함께 바라봤던 능력자였다고나 할까.

 

링컨이 오죽하면 과장법까지 써가며, 이렇게 말했겠어. 

 

"누군가 노예제에 찬성한다고 할 때마다 그를 노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수다쟁이 이야기꾼이 지닌 '문학성'도 그 우울증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는 특히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즐겨 인용했는데, 

죽음을 품은 인간의 운명에 대한 詩와 우울을 희석해줄 유머에도 탐닉했었대. 


"링컨이 그렇게 수다를 잘 떨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링컨, 탁월해. 연설하거나 남을 설득할 때, 그의 이야기와 목소리는 흡입력이 있어.

훅~ 빨려들어간다고나 할까. 굳이 연기의 탁월함을 지목하지 않아도 역사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대. 

달변가 링컨. 영화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인 '동일한 것의 같은 부분은 같다'를 인용하면서 인간은 평등하며 동등한 인권을 갖는다고 얘기하는데,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 그것이 정의라고 이야기하는데, 시큰시큰 거리더라. 

사실, 지금의 노예제도와도 같은 비정규직 문제와도 충분히 겹칠 수 있는 부분이니까.

 

 

"평등하며 동등한 인권을 갖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어려우니까, 지금도 계속 그 문제를 풀지 못하는 거겠지?"  


자유. 인류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지난한 역사라고도 하잖아. 

슈퍼갑의 사회를 깨트리는 출발선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을의 성찰'이야.

영화에서도 그걸 확인할 수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고 뭉클했던 장면이기도 했어.

 

영부인의 흑인 하인과 링컨이 대화를 나눠.

노예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생계 유지 등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수다인데.

그건, 그녀도 링컨도 알 수 없는 무엇. 그럼에도 그녀가 힘 주어 말해.

 

"자유가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 묻기 전에 자유를 찾는 게 먼저죠. 전쟁이 끝났을 때 평화에 대한 준비는 돼 있나요? 자유를 얻었을 때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몰라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으려고 싸우다가 죽었고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요... 자유. 그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심장은 울컥, 코는 벌렁.

그녀가 말한 그 '자유'의 아우라가 내 몸을 휘리릭 휘감는 전율.

평생 '을'로서 살아왔던, 아들을 백인의 무의미한 폭력에 잃고 말았던,

그녀가 생을 통해 체득한 자유. 먹물들이 개념처럼 내뱉거나 정의하는 자유보다 더욱 절절하고 쫀득한 그녀의 자유. 자유는 그런 거 아닐까. 평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엇. 우리의 본능이 요구하는 자유와 평등. 손해와 이익 따위를 계산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산소 같은 거.  

 

 

"음, 아마 링컨이 노예제 폐지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그의 신념도 있겠지만 자유와 평등, 정의를 요구한 인민들이 있었기 때문인 거 같애. 링컨으로 하여금 그걸 요구하고 행동하도록 만든 거 아닐까?"

 

그래, 나도 동의해.

그걸 위해 정치적으로 저열하다는 얘기까지 들으면서 링컨은 우직하게 밀어붙이더라.

더러운 음모와 술수라는 표현도 가능하겠지만,

정치가 어쩌면 궁극적으로 고귀한 행위일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더라고.

왜 정치가 필요한 것인지, <링컨>은 조목조목 느린 속도로 차곡차곡 쌓아가.

 

너에게,

<링컨>을 권하고 싶어. 물론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끈기도 필요해.

미국의 역사와 노예제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더 잘 보일 영화기도 하고.

 

허나 <링컨>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또 하나 권할 수 있는 건, 이콸러티 커피. 

 

링컨이 목구멍으로 집어넣다말고, 차로 바꿔달라고 유머했던 커피가 아니라,

 

링컨과 인민의 피에 흐르는 평등과 자유에 대한 욕구를 블렌딩한 커피.  

 

그리고 우린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링컨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하고 수다를 떨듯,

우리도 커피 한 잔을 놓고 그렇게, 수다수다수다. 우리에게 링컨 같은 대통령이 없음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링컨(권력)을 움직이게 만든 가치를 말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유, 평등, 우애, 사랑 등 모든 가치가 돈(경제)으로 귀속되게 만든 우리의 무딘 감수성을 이콸러티 커피로 촉촉하게 적시면서.  

 

모두 병 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 [그날] 중에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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