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커피를 주시오, 아니면 죽음을 주시오"


- 패트릭 헨리(미국 독립운동 지도자)


그래, 당신도 동의할 거야.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 가령, 사랑이 그렇고, 죽음이 그래. 


오늘, 한 우주가 스러졌어. 

처음 가본 서울추모공원, 친구 아버님이 한 줌의 먼지가 되셨어. 

이 세계를 구성하던 하나의 우주가 희미해지면서 없어진다는 것, 비극.

느닷없이 닥쳐온 비극 앞에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이별 앞에서 필요한 것은 예의여야 함을 새삼 깨달았던 시간. 


아버님을 화장실로 보내기 직전의 곳, '고별실'이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어. 

그 '고별'이라는 말, 유난히 마음에 콕콕 박히더라. 

장례에서 죽은 사람에게 이별을 알림, 고별. 


이별해야 하는 곳. 한 우주의 스러짐을 마음으로 확인해야 하는 곳. 


그래,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어.

개별의 인간이기 때문이지. 구체적인 존엄이 새겨진 개별의 인간이기 때문이었어.

숱한 죽음 앞에 내가 익숙해질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었던 거야. 

한 우주가 구축한 세계, 그 삶의 구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심연이겠지만, 

구체적 존엄 앞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했고, 추모는 마땅한 것이었어. 

이별 앞에 반드시 예의를 필요한 이유도 거기 있었고. 


화장 후 곱게 갈린 뼈라고, 개별의 구체가 아닐쏘냐.  

그래서, 성당으로 향하는, 아버님의 유골을 태운 리무진에 나는 고개를 숙여야 했어.


 

그리고, 

45년 전 오늘, 타살 당한 혁명을 떠올렸어. 

1967년 10월9일, 볼리비아에서 날아왔을 혁명의 으스러짐. 


체 게바라. 

오늘, 그에 대한 추모도 함께.

당신과 함께 타살 당한 혁명을 추모하는 것이고, 위로하는 것이지.  


비록 우리에게 혁명의 새벽은 오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몰라도,

만나지도 못한 혁명에게 이별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혁명과 만날 날을 포기할 순 없는 법. 

언젠가 올 혁명에 대한 예의!


그리하여, 

오늘 같은 밤에도, 노떼 자얀츠가 이겨줘야 할 것 같아.

내 마음에 꿀렁이는 이 슬픔과 추모의 마음에 대한 위로.  

당신도 여전히 우리 자얀츠 팬이지?   


그래 내겐,  

당신이 혁명이었어. 내 마음은 그래서 이미 혁명을 경험한 거야.


당신 하나로 내겐 충분히 가능했던 혁명. 


당신과 함께 보고 싶은 이 영화. 끝내 개봉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한 이 영화, <체>.


오늘, 서울추모공원에서 만났던 커피, 향긋했어.

커피 자체 맛보다는 카페인이 필요했거든. 내 정신을 깨우고 싶은.

내 마음의 추모도 담아 마셨던 그 커피, 오늘의 나를 지지해 준 커피.

수골실 앞에서 커피 마시던 유족들 모습에서, 나는 커피가 주는 위로를 생각했어.


슬픔을 안녕~할 순 없지만, 커피는 슬픔을 위로할 수 있구나.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커피를 건네고 싶다...     

  

언젠가 이 세계에 변혁을 초래할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 인간에게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에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 프리드리히 니체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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