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실 때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그 시절들이 떠오를 것 같았다.… 또한 커피는 단순히 하나의 음료로만 간주하기에는 너무도 중요한 수많은 사건들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 셰릴 더들리 


어떤 일은 느닷없이 다가오고, 바람처럼 떠난다.


당신의 전화. 그렇게 다시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한 어느 여름밤. 당신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다고 했다. 멘붕.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신. 그 목소리는 그런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게, 나도 멘붕. 그렇다고 멘붕에 멘붕으로 대처할 수 없는 상황.

당신 목소리, 잊었다고 아니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었는데, 순간 떨리는 가슴. 

아, 맞아. 당신도 작은 방 하나를 세놓고 살았었던 게지. 

점점 줄어든 방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커져서 내 심장을 자극하고. 


당신의 멘붕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어느 순간, 당신의 처지에 공감하고야 마는 태도. 

아무렴, 한때 당신은 내가 품고 싶은 세계의 모든 것이었으니까. 

당신 이외의 세계는 없었고, 더 있다손 내겐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처한 멘붕에 그닥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

당신의 멘붕 상황을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


그래도, 순간적으로 당신이 무척 보고 싶었다.

이 얼굴을 닮았던 당신의 모습. 동티모르의 별과 함께 쏟아지던 당신.



맞아. 순전히 나의 오만이지만,

나만큼 당신을 사랑해주고 아껴줄 사람, 없을 거라는 것.

그럼에도 날 선택하지 않은 당신의 선택은 늘 옳다는 것.  


부디, 당신 아프지 않길.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와 오래도록 함께 하길.

곧 새로 여는 당신의 커피하우스가 멘붕 액땜을 통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길. 

여전히 당신의 심장을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오늘. 그러니까, 멘붕. 


여름밤 바람. 어머니는 이 계절의 밤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좋아하신다.

나도 오늘만큼은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시원했다. 풀벌레 울음소리가 섞인 바람. 


그렇게 바람결에 다시 날아간 당신 목소리. 안녕. 

다시 한 번, 

아파도 싸워 이기려하지 말고 다독거리며 공존하길. 

그래서 당신의 生이 그날 밤 동티모르의 별처럼 반짝거리길.


실토하건대, 

당신을 만나서, 커피를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렇게 그 시절, 당신을 사랑했었나 보다. 

당신 덕분에 행복했었다. 그때만큼은, 정말로.

당신의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그러진 못하겠지만. 

그 커피는 영원히 숙제로 남아 있을 것 같네.    


그러니까, 오늘은 멘붕 투데이. 

원전의 안전기준을 완화한다는 미친 소식부터 옛 동료의 노조활동에 따른 해고, 수원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여의도에서 옛 직장동료를 죽인 칼부림. 그리고 멘붕 멘붕 멘붕. 


MB시절의 자화상, 멘붕(MB).

커피가 없었다면 나는 이 시절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혹시 당신은 알아? 

커피는 때론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사랑도, 미움도, 멘붕도, 나에겐 그랬다...


늦었지만, 

커피와 함께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당신.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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