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 -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실이 중요한 이유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고 속는 것이 거짓말이라지만, 사람들은 거짓말이라도 믿고 싶으면 믿는다. 세월 먹으면서 뼈저리게 절감한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그건 ‘사실’ 여부와 상관없더라. 객관적 사실을 들이댄다고 사람들이 바로 마음을 바꾸는 건 아니다.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호소해봐야 그건 넋두리일 뿐이다. ‘쇠귀에 경 읽기’는 그래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사실은 늘 변함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삶이 반드시 사실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다. 삶이 신봉하는 건, 삶의 근거는 (자신의) 믿음이다. 즉, 가치(관), 지각, 생각, 관념 등이다. 사실을 폄하하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은 현실을 이루는 날 것의 질료에 불과하다. 현실 자체가 아닌 셈이다. 사람들은 사실을 접하고 난 뒤 그것을 해석할 따름이다.


거짓말을 ‘잘’ 하는 것이 정치인(꾼)의 미덕이 됐다. 어쩌다 그리 됐을까? 표절 안 했다고 우기던 자식이나 제수씨를 추행 의혹이 있던 놈 모두 국회의원 당선자가 됐다. 그리고선 탈당을 했다. 탈당의 변(명)이 우습다. ‘박근혜’라는 거짓말 고수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란다. 당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란다. 아니, 대체 그 당에게 부담이 될 것은 무엇이며, 박근혜라는 작자에게 폐가 될 것은 무어란 말인가.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탈당이 아니라,(혹은 출당 여부가 아니라) 국회의원 당선자 직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 당은 그런 수준의 작자들이 버글버글한 오합지졸들 아니던가. 초록동색이 탈당이니 출당을 거론하는 걸 보니 우습고 화가 난다. 그리고 궁금했다. 대체 우리는 왜 자꾸만 거짓말에 속는 것일까?


《How do you kill 11 million people?(1,100만 명을 어떻게 죽일까?)》는 그 이유를 알려준다. 제목의 1,100만 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숫자)이다. 정확한 숫자는 11,283,000명. 1933년부터 1945년까지.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적으로 죽은 이들. 이 기간 희생된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한 전사자 5,2000,000명은 여기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이 숫자, 지금의 서울시민 숫자다. 어마어마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당시 히틀러는 측근들에게 이리 말했단다. “사람들은 생각이란 걸 안 해. 그러니까 뻥을 크게 치라고. 쉽고 간단하게 말해. 계속 말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걸 믿는단 말이지.”(p.53) 별 볼일 없던 우익청년 히틀러가 가진 핵심적인 무기였나 보다. 거짓말! 그는 자서전을 통해서도 이리 언급했다. “엄청난 규모의 대중들은 아주 작은 것보다는 거대한 거짓말의 희생자가 되기 쉽다.”


저자 앤디 앤드루스는 책의 제목으로 드러난 질문의 답을 단순 명쾌하게 지른다. Lie to them(그들에게 거짓말을 하라)!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몰랐었다. 나치에게 희생당한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가 독가스를 마셨다고 생각했었다. 어쨌거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등에서 독가스로 죽은 것은 ‘사실’이니까. 나는 그리 믿고 싶었던 건가보다.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러나 그들, 수용소로 강제 이주된 것이 아니었다.


‘악의 평범성’으로 알려진, 일명 ‘마스터(Master)’로 불렸던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그는 1941년 12월 ‘최종 솔루션’을 실행하라는 지시문을 하달 받고, 다국적 기업의 총수처럼 과업을 수행했다. 웅대한 목표를 설정하고, 열정적인 스태프들을 고용했으며, 전체 프로세스를 면밀히 모니터링 했다. 목표를 위해 회심의 일구로 던진 전략은 거짓말이었다. 이런 말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유태인 여러분! 러시아 군이 동부 전선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을 위한 보호 조치를 이렇게 급박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는 점 사과드립니다. 불행히도, 설명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의 안녕만을 원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직업을 갖게 될 것이며, 부인들은 살림을 하고 자녀들은 학교에 가게 될 것입니다. 풍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p.45)


많은 유태인은 자발적으로(?) 발걸음을 뗐다. 수용소로 향했다.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곤 아주 극소수를 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히만의 저 말. 어디선가 많이 접한 말 같지 않나? 기시감 말이다. 특히나 저 풍요로운 삶. 747공약을 들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다는 감언이설이 ‘오버 랩’ 된다.


아니나 다를까. 히틀러는 더 나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다른 것을 약속했다. 이른바 ‘더 밝은 미래’다. 2007년 대선, 이명박 후보의 가장 강력한 선동(?)은 이것이었다. “경제! 확실히 살리겠습니다.” 당시의 홍보물은 그것을 ‘사실’로 적시하고 있다. 구호는 ‘전 국민 성공시대’. 단 한 명의 실패나 낙오도 없는 성공이 일상화된 꿈같은 유토피아.


유권자들은 대체 무엇에 혹했던 것일까? 경제가 죽기라도 했다고 믿었던 것일까? 국민 모두가 성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일까? 성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었던 것일까? 4년이 넘게 흘렀다. 살리겠다던 경제, 어떻게 살렸는지 궁금하다. 전 국민은 성공은커녕 한숨만 늘고 불행해졌다.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다. 물론 이명박 정권의 거짓말 덕분에 덕을 본 아주 극소수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4년 전 경제적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명박은 좀 더 윤택하고 풍요로워지고 싶은 사람들의 강력한 욕망과 딱 맞아떨어졌다. 부자가 되고 싶은, 돈만 많으면 언제든 행복해질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감언이설을 곁들여. 평범한 우리는 거의 홀라당 넘어갔다.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권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으로 여겼다. 믿음으로, 생각으로, 관념으로.


그러니까, 이명박도 알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이란 걸 안 한다는 것을. 큰 뻥을 치면 된다는 것을. 쉽고 간단하게, 계속 말했다. 사람들, 그냥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을 것이다. 꼭 이명박과 당시 한나라당의 지지자가 아니라도 말이다. 히틀러도 그랬다. 당시 열성적인 히틀러 지지자들은 독일 국민(7970만)의 10% 가량인 850만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평범한 독일 국민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히틀러에 철저히 놀아났다.


지금-여기라고 다를까. 우리는 이명박에게 희롱(!)당하고 추행(!)당했다. 거짓말에 속았다. 거짓말쟁이 권력자와 평범한 사람들의 관계.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목소리를 닫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식자층에 속하는 대다수의 주류들은 임금만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만족했다. 이제껏 향유했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만 급급해, 그 뒤에서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도사리고 있던 뱀과 같은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다.”(p.55)


나치 독일의 이야기인지, 지금 우리의 이야기인지, 똑같다. 방관과 침묵. 거짓말쟁이 권력자들은 그런 순간을 파고든다. 다시 말하지만 악의 평범성. 기존 질서에 의해 피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질서에 순응하는 건, 그 질서와 체제가 행하는 살인에 동참하는 일이다.


우리가 부른 업보다. 그렇다고 눈물만 훔치고 후회로 땅만 치고 있을 순 없다. 생각을 해야 한다. 믿고 싶어 믿기보단 진실만을 말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앤디 앤드루스는 그것이 누군가에게 통치를 맡기는 자들이 기초적으로 갖춰야 할 판단기준이라고 일깨운다. 우리 모두에게 효과적으로 거짓말하는 것으로 정치가 되는 풍토. 그것을 바꾸는 것. 무엇보다 권력의 주체가 아닌 세상을 진짜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는 보여줍니다. 자기의 이익이 충족되는 한 온순한 양처럼 지도자의 뒤를 따라 걷는 국민들, 그들이 어느 순간 화들짝 깨어났을 때 도착한 그곳이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곳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p.85)


꿈에서 깨어나니 우린 망망대해에 있다. 힘들게 만회하고 있던 민주주의를 잃어버렸고, 자유는 가출했다. 누군가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할 정도로 한 국가가 변질되는 데 그리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지난 4년, 충분히 알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유를 되찾고 집 나간 민주주의를 되돌아오게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똑똑한 CEO가 필요하지 않다. 지능이 아닌 인격. 모든 것은 인격이 바탕이 돼야 한다. 법조계, 의료계, 교육계 모두 마찬가지다. 리더에게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지능 아닌 인격!


저자는 인격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에게 권력을 줘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인격파탄자에게 권력을 줘봤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왔는지 이젠 안다. 머슴이고 일꾼이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이들의 키치적 거짓말에, 그 무섭고 지속적인 뻥카에 더 이상 속지 말 것. 도덕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작자의 말장난에 휘둘리지 말 것.  

 

책은 1,100만 명을 죽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는 한편으로 1,100만 명을 죽이는 질서에 평범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지침서다.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그건 12월을 향한 것만이 아니다. 계속 우리는 묻고 요구해야 한다. 알고 속는 건, 이쯤이면 충분하다. 복지, 경제민주화, 일자리. 새빨간 누리내 나는 당의 거짓말이다. 물론 민주당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고! 


“이제는 리더들에게 더 높은 가치기준을 요구해야 할 때이며, 설령 그것이 그들의 처지를 위태롭게 할지라도 진실만을 말하도록 요구해야 할 때입니다.”(p.103)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