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 따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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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맛집 천국이다. 인터넷, 특히 블로그 등을 보면 그렇다. 너나할 것 없이 먹을 것을 탐하도록 포스팅하고 맛난 것을 먹었다고 자랑질한다. 향도 없고 맛도 볼 수 없는 것이 사진으로 덩그러니 폼을 낸다. 그러나 그 대부분, 나는 믿지 않는다. 맛집 블로그의 자기 과시적 소개 행태 때문이다. ‘맛집 소개’라는 명분을 달고 있지만, 많은 그들은 ‘난 이런 걸 먹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남들과 ‘구별 짓’고 싶은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브런치’라는 호명이 가진 의미와 비슷한 맥락이다. 과거 아점이라고 부르던 것과 천양지차의 무엇. 브런치는 뉴욕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상품이 됐다. 브런치를 즐긴다는 블로그 포스팅은 엇비슷하다. 유럽(미국)풍의 레스토랑이 우선 배경이다. 메뉴명은 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다. 재료가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럴싸하게 조립한 음식이 흉내만 그럴싸하게 낸다. 그리고 우아하고 여유 있게 그것을 먹었다는 ‘포스’. 그것으로 충분하다. 블로거는 뉴욕 라이프스타일 종결자로 거듭난다. ‘구별 짓기’에 성공했다.


뭐, 그게 그리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문제는 맛에 대한 주체성이 담겨 있지 않다. 내가 골라 먹은 맛집이라는 형식, 표방하지만,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오로지 남은 건 스타일뿐이다. 사진을 통해서 그럴싸하게 보이면 그뿐. 재료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없다. 사람들의 숨소리와 땀 냄새도 없다. 오직 소비하는 상품, 소비하는 장소, 소비하는 자의 쾌락만 배치돼 있다.


그건 ‘맛집’이 아니다. 줏대 없이 움직이는 혀에 의해, 소비하는 자의 쾌락만을 위해 복무하는데 무슨 ‘맛’을 가진단 말인가. 맛집만 60만개에 달한다는 시대. 어딜 가나 맛집 천국이다. 그러나 진짜 맛집은 없다. 언론과 미디어는 그걸 충분히 알고 블랙 커넥션을 형성했고(<트루맛쇼>에는 그것이 잘 나온다), 줏대 없고 무지한 일부 ‘맛집 블로거’들은 그것을 조건반사적으로 따른다. 주체성이 없다는 건 그것 때문이다. 그들만의 맛집, 사진의 구도만 달리할 뿐, 립싱크가 난무한다.


그런 욕망, 조선 사대부들의 것과 통하였느니라. 무슨 말인고 하니, 조선 사대부들에게도 음식의 그런 맥락이 있었다. 소고기, 고귀한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었다. 문화인이라는 자부심까지 심어주기도 했단다. ‘구별 짓기’하면, 일가견이 있는 그들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당시 백성들은 소를 사람 대신 땅을 갈아 곡식을 심게 해 주고, 무거운 짐을 운반해 주는 동물이라 고기까지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백성들의 육식관은 사대부들에 비해 염치가 있었던 셈이다.


헌데, 사대부들의 이런 ‘소고기 사랑(?)’은 조선의 건국이 큰 역할을 했다. 새 나라 조선이 들어섬과 함께 가장 사소하면서 강력하게 일어난 변화는 밥상이었다. 육식 금지가 풀린 것이다. 물론 힘없고 돈 없는 백성들에겐 이런 변화가 약 올리는 처사였다지만. 없어서 못 먹었으니까.


“조선 건국이 민중들의 식생활에 끼친 변화는 토지 개혁으로 ‘이밥’(이성계가 준 밥)을 먹게 된 것과 육식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소고기를 많이 먹지 않았다.” (p.48)


오호, 재밌는 음식문화사인 것 같지 않나? 《조선의 탐식가들》이 주는 쾌락(!)이다. 음식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만, 거기엔 늘 생존 이상의 무엇이 있다. 이 책은 음식에 늘 시대와 사회가 담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먹는 것이 곧 사람이다!


‘먹는 것 갖고 왜 그러냐?’고 우리는 묻곤 하지만, 사대부들에게 먹는 것이 곧 사람이었다. 즉, 정쟁 상대를 공격하거나 역모 죄인의 간악함을 까발릴 때, 식탐 버릇을 문제 삼았다. 그럼으로써 도덕성에 타격을 입혔다. 명분을 만든 셈이었는데, 방금 말한 대로 ‘먹는 것이 곧 사람’으로 치환됐다. 먹어서 남과 구별 짓는 행위와도 이는 통한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사대부들이 왜 우심적(소의 염통을 얇게 저며서 양념간장으로 간을 하여 구운 음식)을 좋아하는지 언급한다. 우심적에 담긴 이야기 때문인데, 이 음식엔 ‘당신을 왕희지처럼 여긴다’라는 뜻이 있다. 저자는 사대부들이 우심적의 맛보다 그런 호사가 더 즐거웠으리라 추정하는데, 브런치라고 다를까. 브런치의 맛보다 ‘뉴욕 라이프스타일을 즐긴다’는 호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나는 자신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권력싸움에서 패배하면, 먹는 것 갖고도 공격을 당했다. 재밌는 건, 탐식이 도덕적인 치명상이었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흠집 내기로도 익히 사용됐다고 한다. 탐식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행위였다. 물론 그런 분위기였기에 조선 시대 양반들의 탐식 기록은 많지 않다. 탐식이 까발려지거나 부풀려지는 건, 권력의 눈 밖에 날 때다.


“조선 시대의 간관들은 탐식을 하는 관료를 공개적으로 성토하기도 했고, 당쟁을 벌이는 관료들은 정적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기 위해 집요하게 상대방의 탐식 습성을 물고 늘어졌다.”(p.279)


그럼에도 먹는 것, 그것도 많이 먹는 것은 조선시대의 ‘대세’였던 것 같다. 외국에 조선하면, 대식국大食國으로 알려졌다고 책은 전한다. 18세기 조선의 일상을 쓴 샤를 달레, 《조선교회사서설》을 통해 이리 말한다. “조선사람들의 큰 결점은 폭식이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 양반이나 상민이나 많이 먹는 것을 영예로 여기고, 어릴 적부터 많이 먹어 위장을 늘려 놓는다.”


이런 말, 들어본 적이 있다. 중국인은 음식을 혀로 먹고, 일본인은 눈으로 먹고, 조선인은 배로 먹는다. 조선인을 비하하기 위한 말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듯싶다.


탐식에 대해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건, 아마도 중세 기독교의 칠거지악을 통해서가 아닐까. 정욕, 탐식, 탐욕, 나태, 분노, 시기, 허영. 탐식이 특히 지탄을 받은 건, 다른 죄악까지 불러 모으는 근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탐식은 동서고금을 망라한 죄의 으뜸이었다.


그럼에도 탐식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순수하게 먹는 것에 대한 욕심 때문만은 아니다. 새롭고 진귀한 음식을 먹는 것, 지위와 권세를 확인하고 보여주는 기회였다. 조선에서 탐식은 소수의 권세가들이 누린 특권이었던 셈이다. 맛집 포스팅이 그렇게 끊임없이 이뤄지는 것, 물론 조선의 권세와 다르겠지만 다 숨은 이유가 있다.      


탐식에 대한 비판은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인 한편 권세가의 전횡을 견제하여 관료층의 부패를 억제하기도 하는 기능도 했다. 아울러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역할도 했다. 권세가에게 탐식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대다수 기층 인민은 기아에 시달렸다. 특권층의 호위호식을 통제하지 않으면 인민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도 일자리, 일자리 얘기하지만, 그것은 곧 먹는 것과 직결돼 있다.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탐식을 건드리는 건, 지배세력의 자기 방어와도 같은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민의 분노 게이지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고 볼 때 즈음, 권력은 재벌의 탐식(!)을 비판한다. 최근의 ‘재벌 빵집’건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그것은 체제 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이다. 시스템을 확실히 바꾸거나 뒤집지 않는다. 정부가 잊을 만하면 출총제를 꺼내드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 책, 조선의 탐식가(혹은 조선의 음식문화)를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의 우리 사회와 연관 지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먹는 것,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어떻게 먹을 것인가!


《조선의 탐식가들》은 더 나아가 어떻게 먹는 것이 바르게 먹는 것일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우선 저자는 바르게 먹는 것과 관련 두 가지 뜻이 있다고 언급한다. 하나는 낯설거나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 또 하나는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에 송나라 시인 황정견의 식시오관(食時五觀), 즉 ‘음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인용한다. 


․ 음식을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노고를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라.

․ 자신의 덕행이 완성되었는지 결여되었는지를 헤아려서 공양을 받아야 한다.

․ 마음을 절제하여 지나친 탐욕을 없애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특히 맛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까탈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 음식을 몸에 좋은 약으로 알고 몸이 파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먹어야 한다.

․ 군자는 도업을 먼저 행하고 그 다음에 음식 먹을 생각을 해야 한다.


뭐, 다른 건 각자 알아서 해석하기로 하고, 내가 꽂힌 것은 바로 첫 번째 마음가짐이었다. 음식을 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노고를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생각해 보라. 커피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늘 가슴 속에 품은 명제이다. 내가 공정무역 커피에 꽂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면 이유이다. 그러면서 나는 모든 먹을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내가 먹는 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가’를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됐다.


내가 생각하는 탐식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말한 ‘탐식의 유형’, 시도 때도 없이, 너무 섬세하게 맛과 호화로운 음식을 추구하며, 게걸스럽게 너무 많이 먹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이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욕망은 더 이상 죄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심정적인 죄라고 할지라도, 이를 어긴다고 경찰이 잡아가지 않는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약속’처럼 대량소비와 탐식을 미덕처럼 여기기까지 한다. 저자의 현실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거대한 식품기업과 언론이 가르쳐 준 ‘맛집’의 충실한 고객으로 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개개인의 모든 욕구를 억압하면서도 유독 식욕만큼은 제동을 걸지 않는다. 도리어 더 많이, 더 맛있게, 새로운 맛을 추구하라고 부추긴다.”(p.330)


고로, 나에게 탐식은, 맛의 주체성을 잃고, 화학조미료가 이룬 ‘(감칠)맛의 평등’에 중독됐으며, 거대 브랜드(의 공세)에 아무 생각 없이 끌려 다니면서 ‘짱’을 외치는, 재료가 어떻게 왔는지조차 알 생각을 않는다는 뜻이다. 많은 맛집 블로거가 그렇다. 그럴듯해 보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혀와 코가 줏대 없이 움직이는 한편 눈으로만 먹을거리를 대한다.


그것은 죄악이다. 저자는 다른 범죄와 달리 탐식은 남을 해치지 않고 자신에게 해를 입힐 뿐이라고 했지만,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에게만 미칠 해를 남에게 전파하고 있으니, 그건 죄가 아니고 뭔가.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 분별해야 하는 이유이다. 맛있다는 음식을 찾아가 먹는 행위가 미식이 아니다. 저자는 내가 좋아하는 황교익 음식문화칼럼니스트(《미각의 제국》《한국음식문화박물지》)의 말을 인용해 미식을 정의한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탐식을,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이라고 했고, 미식을,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이전에 가졌던 미식에 대한 개념,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남까지 망치는 탐식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음식에 담긴 삶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당신이 세상에 사소한 애정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쉽다. 나는 세상의 일부이자, 세상도 나의 일부임을 안다면. 


다시, 미식을 생각한다


당연히 나는, 다산 정약용이나 성호 이익처럼 음식에 대해 지나치게 이성적인 태도를 요구하는 것, 아니다. 오랜 유배생활을 버텨 내기 위한 호구지책으로 개고기를 애호했다는 다산은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라면서 한 끼 식사에 재화를 낭비하거나 너무 많이 먹는 것을 경계했다. 평생 소식(小食)을 실천한 성호 이익도 부유한 집에서 하루 일곱 번이나 식사를 한다고 질타하면서 조선이 가난한 원인으로 음식 사치와 대식을 꼽았다. 


나는 그렇게까지 먹는 것에 엄격할 자신, 없다. 이 책을 읽고, 단지 시를 읊고 싶었다. 고려의 문신, 목은 이색은 ‘배부른 하증(중국 진나라 무제 때 재상으로 탐식의 대명사이자 전설적인 탐식가)보다 배고픈 시인이 낫다’는 의미를 담아, “방장(식전방장)이야 배부르게 먹을 줄만 알겠지만 / 굶은 배는 시를 토해 낼 줄도 아는 걸요”라고 말했다. 탐식에 대한 경계의 의미를 담은 것일 게다. 진짜 굶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은 절로 시를 읊게 만든다고 믿는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도 지인이 보낸 미나리를 먹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고작 미나리 먹으면서 웬 호들갑이냐 싶을지 몰라도, 역시 이것도 은유 아니겠는가. 채소 하나라도 이런 정성이라면 ‘미식가’라는 호칭, 충분하다. 저자의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안빈낙도의 삶에 허용된 착한 사치이자 청빈한 삶에 대한 메타포로 언급했던 ‘순챗국과 농어회’도 먹고 싶어졌다.   

 

이른바 ‘맛집 블로거’랍시고 호들갑 떠는 사람들이나, 맛집이랍시고 간판을 단 음식점들에게 《조선의 탐식가들》, 필독서 되겠다. 심리학에서는 식탐의 원인을 결핍감에서 찾는다고 한다. 미식과 식탐은 그래서 심리적으로 다른 문제라고 한다. 어떤 결핍이든, 게걸스럽게 먹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먹는 것에는 진짜 중요한 삶의 문제가 늘 내포돼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맛집 블로거들, 이젠 먹을거리를 통해 제대로 삶을 담아낼 때다. 저자에 의하면, 조선 사대부들, 식탐은 많았지만 조리법을 외면해 조리서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문자를 독점했던 양반층이 조리법에 관심을 뒀다면 조선의 음식문화, 훨씬 풍성하게 꽃피웠을 거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아쉬움에서 느낀 바 있을 것이다. 맛집 블로거들이 탐식 아닌 미식의 자세로 접근한다면, 우리는 장례식장에서 맛보는 공포의 육개장 같은 맛집 타령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개념을 탑재한 맛집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느낀 바가 없다고? 그냥 처먹고 뒤져라. 나는 그들에게 ‘악의 평범성’을 붙여주겠다. 고 투 헬(Go to Hell).

 

《조선의 탐식가들》, 재밌고 사유도 하게 만들어준다. 두 마리 토끼 잡는 것, 어렵지 않아요~! 앞서 언급했던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저작, 《미각의 제국》《한국음식문화박물지》을 출판한 곳이 이 책과 같은 '따비'이다. 이들 저작물이 비슷한 맥락에서 출판된 것 같은데, 따비, 음식문화전문으로서 참 좋은 출판사로 여겨진다. 고맙다. 좋은 책들 내줘서, 내 세계를 넓혀줘서. :)

 

 

p.s. 커피와 두부의 공통점


이 책에서 하나 더 건진 것이라면, 커피와 두부의 공통점이다. 맛있는 두부를 만들려면 콩물을 끓이는 온도와 시간이 중요하단다. 즉, 몇 도의 온도로 몇 분을 끓이느냐에 따라 두부 맛이 달라진다. 커피라고 다르지 않다. 커피를 볶을 때, 커피를 추출할 때, 역시 온도와 시간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두부를 언제부터 먹었을까. 책에 의하면, 두부는 고려 성종 때 최승로가 쓴 <시무 28조>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두부는 사찰에서 만들어 부처에게 공양하던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에도 두부는 인민들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고 한다. 콩을 갈고 콩물을 짜는 데 힘이 많이 들고, 뭣보다 인민들은 두부를 만드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콩물을 끓이는 온도와 시간, 불의 세기를 잘 조절해야 하는데, 숙달된 기술과 경험이 필요했다. 잘 만든 두부는 사대부들 사이에 선물로 주고받을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두부가 사대부가에 널리 퍼진 것은 제사상에 두부를 올리면서부터라고 한다.


커피도 귀한 음용수였다. 커피를 먼저 자신들의 음료로 받아들인 이슬람권에서는 커피를 다른 문화권에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철저하게 커피콩의 유출을 막았다. 아울러 커피의 초기 역사에서 수도원에서 커피가 제조됐고, 수도사들이 커피를 즐겼다. 이후 유럽으로 전파될 때도 커피는 왕과 교황, 귀족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물로 성가를 드높였다.


얼마 전, 나는 커피를 마시러 부암동에 갔다. 헌데, 이 책을 보니 조선시대 최고의 두부는 “서울 장의문 밖 사람들”이 만든 것을 꼽았다고 한다. 장의문은 지금 부암동 자하문의 다른 이름인데, 지금 부암동에는 최고의 두부 솜씨를 이어받은 두부집이 없는 대신 최고의 커피집 가운데 하나가 있다. 최고의 두부 명맥이 끊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최고의 커피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부암동에서 커피를 만들고 내리고 싶다.


아울러, 조선 중종 때 안동 선비 김유가 전통 요리법을 기록한 책, ‘수운잡방’의 이름을 딴 음식을 나의 커피하우스에서 대접하고 싶다. ‘진짜’ 맛집 블로거들에게. 참고로, 수운잡방이란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특별한 요리’라는 뜻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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