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 문학의 비밀을 푸는 18개의 놀라운 열쇠
정여울 지음 / 이순(웅진)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여울의 문학멘토링》.

우선, 나는 이 책을 온전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할 수 없다.

저자가 '정여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군가!

그녀, 한겨레에 <정여울의 청소년인문학>코너를 연재하는 문학평론가이다.

나는 그것을 꼬박꼬박 읽는 독자로서, 뭣보다 이 코너가 주는 '망치 한 방, 전구 반짝'을 좋아한다.

말인즉슨, 그 글은 자주 세상의 진실과 마주대하게 만들고, 나를 성찰하게 한다. 

그녀의 글은 또한 미려하며, 번뜩인다.

가령, 몇 주 전에 봤던, 앞뒤 맥락없이 제시하지만, 이런 글 앞에 나는, '형님!'했다.

그리고, '사랑'을 다시 생각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청소년인문학>의 업그레이드판이다.

2주에 한 번 그녀의 글을 보는 것, 감질났는데, 이런 축복이 있나. :)

 

정여울은 "우리의 다채로운 삶을 담아내는, 크기도 문학도 일정하지 않은 그릇"인 문학에 대해 조곤조곤 말을 건다. 문학의 역할부터 문학의 기법, 문학의 내용 등 문학과 친구가 되고, 연애를 하는 법을 알려 준다.

콘셉트, 한마디로 이렇다. "문학아, 놀자~"

 

아~ 좋다. 《정여울의 문학멘토링》에 대한 나의 소감이다.   

책 덕분에 문학이랑 더 잘 놀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문학이랑 아삼육처럼 지낸 사이는 아니다만,

이전부터 문학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고, 이 책을 통해 그 힘을 확인한 셈이랄까.

 

뭣보다, 슬픔에 대처하는 문학의 자세.

얼마 전, 나는 거듭 언급했었다.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 본명 카렌 블릭센(Karen Blixen)). 

그녀, 우리가 영화로 더 익숙한, 영화의 원작인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썼다.

이 책, 디네센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영화 내용처럼 그녀는 커피 농장을 일구다 말아먹었고, 사랑을 잃었다.

그런 '슬픔' 앞, 그녀는 이야기를 썼고, 이렇게 말했다.

 “All sorrows can be borne if you can put them into a story or tell a story about them(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맞다. '문학의 힘'이다. 

정여울의 말처럼, "인간이 상처에 ‘아파하는 법’을 몰랐다면, 문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문학은 인류가 입었던 수많은 상처의 박물관이다. 또한 문학은 인류가 입었던 수많은 상처의 치료법이 숨겨진 지혜의 보물 창고다." (p.201)

 

그러기에, 문학은 쓴 사람은 물론이요, 그것을 읽는 사람에까지 치유의 권능(!)을 발휘한다. 상처는 문학을 통해 치유의 길을 걷는다. 물론 그것이 완전하진 않아도,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 "문학은 인간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의 눈물과 피를 먹고 자라나는 영혼의 원시림이다." (p.203)

 

정여울은 더 나아가, 문학의 '사회성'까지 언급한다. 문학에 드러난 '나의 상처'를 '세계의 상처'로,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고통'으로 공감하게 만든다고. 

 

맞다. 프랑스혁명의 지적 동력은 루소 등이 쓴 찐~한, 당대로선 포르노소설에 가까웠다고 일컬어지는 '연애소설'이었다.

당대의 인민들은 그 연애소설을 통해 주인공이 처한 현실에 '공감'했고, 

그것이 혁명에까지 이르는 동력 중의 하나가 됐다. (by.《인권의 발명》)

개인의 고통이 사회적 공감의 촉매가 된다는 것. 그것이 또한 문학이 지닌 강력한 힘임을 이 책은 강조한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문학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타인의 아픔을 자발적으로 느낄 줄 아는' '공감의 능력'을 키우게 한다. 

 

"우리는 그렇게 문학을 통해 ‘나의 상처’를 넘어 ‘세상의 상처’와 교신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pp.208~209)

 

나 역시 문학 덕분에 위로 받고, 조금씩 슬픔의 늪에서 나를 건져올렸다.

많은 경우, 이별한 직후였다.

한 없이 아래로 침잠하던 나는 詩를 붙잡고 견디고 버텼다. 책과 함께 했다.

문학은 어떻게든 개별의 인간을 놓지 않는다. 손을 내민다. 눈을 맞춘다. 어깨를 빌려준다. 문학은 그래서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다.  

 

당연하게도 책은, 개별의 슬픔에 공명하는 문학의 힘만 언급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상상력이 살아 숨 쉬는 보물창고”로서 문학이 문명을 어떻게 지탱했는지도 언급하고, 일상 속에서 기적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문학을 통해 어떻게 배우는지도 알려준다.

문학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면,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이다.

정여울은 문학 속 '악역'의 진짜 매력은 '얼마나 잔인한가'가 아니요,

'주인공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로 결정된다고 언급한다.

 

이것은 곧, 우리는 문학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묻게 됨을 의미한다.  

혹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를 묻는다.

물론 문학이 답을 줄리는 없다. 문학의 역할은 딱 그것까지다. 질문하기.

그것으로 족하다. 답까지 준다면, 그건 참고서(문제집)지, 문학이 아니다.

 

좀 과장하겠다.

우리는 문학이 있어서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즉에, 인류는 멸망의 길로 들어섰어야 했으나, 문학이 그 시간을 늦추고 있다.

정여울은 그것을 18가지 지도로 설명을 했다.

당신도 읽어보면 좋겠다. 문학이 좀 더 가깝고 진득한 친구이자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우리들 각자의 마음 속엔 포기하지 않은 꿈이 있음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의 묘사처럼.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의 잡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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