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이야기 - 최규석 우화 사계절 만화가 열전 2
최규석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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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보고 읽는 순간보다, 책을 덮고 난 뒤 일상을 영위하면서 툭툭 떠오르는, 사유를 하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우화가 지닌 속성일 수도 있겠으나, 이땅에서 펼쳐지는 사건사고, 현상을 접할라치면 자연스레 그의 짧은 우화가 툭툭 떠오른다.  

 

1월20일, 3주기를 맞는 용산참사를 자연 연상케하는 '가위바위보' '새'는 시기적으로 맞물려 그런 잔상을 드리운다. '갑옷도시' '용을 잡는 사냥꾼' '농장의 일꾼들' '원숭이 두마리' 등에선, 자본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이 세계의 잔인함과 그 농간에 넘어가 자유를 자본에 넘겨준 인간들의 무력함을 엿본다.

 

끊임없이 긍정(의 힘)을 설파하며 개인의 노력만 강조하는 시대의 간교함은 또 어떻고. 천사를 찌부러트리는 '불행한 소년'은, 일말의 논쟁이 있었다지만, 여러 메타포(은유)가 있지만 나는 천사로 위장한 지금 시대의 자기계발(기만)서에 대한 은유로도 읽었다. 

 

기득권은 반성이나 성찰 따윈 않는다. 문제가 생겨도 시스템을 거론하지도 않는다. 처벌하고 즉자적인 대응이나 반응을 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여긴다. 그러니 가난이나 불행, 고통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긴다. 자신들이 가진 권력, 힘만큼의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건, 그게 크나 적으나 비슷하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에는 동물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다. 그걸 보고 있자니, 우린 역시 동물의 왕국이다.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다를 바가 없다. 아니, 모르긴 몰라도 인간의 세계가 더 야만적일 것이다. 우리는, 곧 짐승의 시간을 버티고 있음을 절감한다. '괴물'은 우리가 지금 괴물이 돼 있음을, '괴물의 시간'에 살고 있음을 거의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어쨌거나 지금의 내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을 준 것은 '스스로 줄을 자른 연'이었다. '하늘이 그립지 않니?'라고 묻는다. 연은 답한다. 아니. 스스로 줄을 자른 연은 하늘을 그리워하지 않아. 며칠 전, 제안이 왔다. 거대 커피체인점 홍보실장 어떠냐고. 자암시 고민하다 거절했다.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곧 이 책의 '스스로 줄을 자른 연'이 들어왔다. 최규석이 내게 준 위로였고, 힘이었다.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영어로 땡큐, 중국어 쉐쉐, 일본어로 아리가또라고 하지요. ^^

 

책의 미덕은 곧 그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것. 그런데도 최규석은 짧은 우화의 힘을 빌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최규석. 본인이야 어떻게 받아들이든, 나는 그를 (사유형) 천재라고 생각한다. 매번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놀란다. 재미는 기본으로 그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세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의 책을 볼 때마다 기분 좋은 이유다. 더구나 잘 생기기까지 했으니, 보통 잘 생긴 것이 아니고 완전 쩔게 잘 생겼다. 하늘이 공평하다는 말은 틀렸다. 하늘은 드물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준다. 최규석이 한국의 그 예다. 외국엔 조지 클루니가 있듯.  

 

감히 말하건대, 최규석은 우리 시대의 보물이자 축복이다. 만화계뿐 아니라, 지금 모두의 우리에게.

 

아울러, 다시 한 번. 용산을, 추모한다. 떠올린다. 기억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뿐이지만, 그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들의 무덤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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