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잇태리
박찬일 지음 / 난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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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른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여행상담 선생님 일수꾼이에요. '잇태리'를 여행하고 싶다고요? 어떻게 하면 여행을 잘 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요. 잇태리 여행하는 거, 어어렵지 않아요오~ 제가 맛있고 즐거운 잇태리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먼저어, 잇태리에 가기 전에 잇태리 음식점에 가서 잇태리 음식에 적응하면 돼요. 홍대 부근의 '라꼼마'가 참 좋아요. 그리고 나서, '라꼼마'의 오너 셰프인 박찬일 아저씨를 만나서 물어보면 돼요~ 박찬일 아저씨를 못 만났다?

 

그래도 방법이 있어요오~ 글맛이 살아 있는 박찬일 아저씨의 《어쨌든, 잇태리》를 보면 돼요. 잇태리 갈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박찬일 아저씨가 시시콜콜 알려주셔요. 뭣보다 '진짜 잇태리를 만나는 박찬일의 버킷리스트 30개'도 있어요. 잇태리가 익숙하지 않고 낯설어서, 가서 뭘 해야할지 애매하다면 그걸 정해주는 리스트에요. 그러니까, 박찬일 아저씨는 '잇태리 애정남'이에요. 이 책 읽고 잇태리 갔다오면 잘 다녀왔다고 소문이 날 거예요.

 

<개그콘서트>의 <사마귀유치원>에 일수꾼이라면, 이렇게 소개할지도 모르겠다. 박찬일 셰프는 자신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잇태리를 아주 맛깔나게 버무린다. 아마도 자신있게 글요리를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 같은데, 그 글요리를 맛보는 입장에선 맛이 돋는다, 돋아. 

 

읽다 보면 눈은 번쩍!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물론 이 표현은 약간의 과장이 섞인 것이지만, 죽기 전에 다시 한 번이라도 잇태릴 가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느낌이 들 것 같다. 특히나 먹을거릴 놓고 보자면 더욱 그렇다. 

 

20대 중반 배낭여행의 한 코스로 잇태리에 발 디뎠을 때, 나는 몰랐다. 그저 헤집고 돌아다녔다. 그때까지의 잇태리란 <시네마천국>의 아름다운 시칠리를 품은 나라,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의 베스파를 잉태한 나라, 피자의 본고장 정도였다. 그때 그 짧은 잇태리는 그 전에 알던 피자의 맛을 바꾸고 로마는 질서정연보다는 번잡했다는 정도 외에 지금 특별히 남아 있질 않다. 

 

물론 잇태리 남자들이 잘 생겼다는 것은 남자인 나도 인정할 만 했는데, '잇태리 남자는 바람둥이'라는 선입견까지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자인 내게 '작업'을 거는 잇태리 남자는 없었으니까!) 먹는 것에 대해 지금만큼 민감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그냥 있으면 꾸역꾸역 먹었다. 특별히 잇태리 음식을 감식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어진 대로 먹었다.

 

그런데, 커피를 생의 중심에 놓은 지금, 내게 잇태리는 다소 특별하거나 로망을 품은 곳이다. 커피의 심장, 에스프레소가 탄생한 곳이 잇태리니까. 이전에 갔을 때, 잇태리의 에스프레소를 맛보았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기억이 가물하다면 아직 나는 잇태리 에쏘를 맛보지 않은 것으로 하자.

 

그러니, 잇태리는 다시 가고 싶은 로망이다. 자주는 아니라도 종종 잇태리를 들린다는 박찬일 셰프가 부러운 것도 사실이고. 책은 그 로망을 더욱 부추긴다. 박 셰프, 잇태리를 툴툴 거리는 것 같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행간에는 잇태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거나 잇태리를 향한 지름을 부추긴다. 한마디로, 잇태리 돋는 책이다.

 

미국식 피자나 짝퉁 화덕으로 페이크하는 피자집들 말고, 진짜 피자이올로를 만나서 진짜 잇태리 피자 맛을 보고, 올리브와 식초, 소금만 딱 뿌려진 간결한 샐러드와 (금연법이 발효됐다지만) 시골 카페의 방코에 서서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에쏘를 들이키고 싶다.

 

또 작년 8월에 돌아가셨다는 위대한 주방장이자 파스타의 어머니, 리디아 할머니의 흔적도 만나고 싶다. 허름한 주방복을 입고 팔순의 나이에도 생면을 만들었다는, 잇태리 음식의 원형질이 있었던.  

 

그래, 뭣보다 내겐 커피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조차 맛있다는 잇태리의 커피. 빨리빨리와 여유가 바리스타 안에서 공존하는 커피. 에쏘의 본고장에서 모카포트의 본고장에서, 잇태리의 검은 혈액을 내 심장 안에 투여하고 싶은 거다. 젖과 커피가 흐르는 땅에서 잇태리의 향을 맡는 그런 순간. 책을 보면서 나는 그런 것을 상상하고 꿈꿨다.

 

총리에서 실각했지만, 여전히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잇태리 사람들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만, 채무위기에 맞닥뜨린 잇태리의 경제가 바가지를 씌우는 것은 아닐까, 우려 안 되는 바도 아니다만, 박 셰프는 잇태리 여행은 순전히 먹는 여행이라고 했다. 먹는 것만 놓고도 잇태리는 가볼 만하다는 얘기렷다. 그는 이렇게까지 염장질을 해댄다.

 

“이탈리아 식당의 메뉴는 계절별로 변해서 식도락가들을 즐겁게 한다. 지방별로 요리가 다 색다르고(돈 많은 서울내기들의 입맛에 맞추기 바쁜 한국의 지방 음식을 생각해보라) 식당의 개성이 뚜렷하다.”(p.45)

 

나는 그저, 책이 안내하는 잇태리를 맛보며, "뿌오나(buona․맛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혹은 "케 벨 파노라마!(오메 멋있는 거!)" 이 말은 좀 변태적 기질 때문이겠다만, 젖 떼고 나서도 여전히 여자들 가슴골에 머리를 처박고 싶어하는 것이 수컷이라는 박 셰프의 말마따나,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들은 고맙게도 옷이란 모름지기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드러내기의 용도로 쓰는 것이라고 믿는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다."(pp.70~71)

 

그래, 인정한다. 내 안구정화를 위해서다! 잇태리 여자들의 드러내기 패션 훔쳐보기! ^^;; 버스를 몰면서 통화를 하는 잇태리 운전사의 곡예운전도, 코레아에서 왔다고 하면 박두익부터 외치고 보는 잇태리인들의 무심함도, 1유로를 받는 잇태리 주요역 화장실의 작태(?)도 잇태리를 향한 돋움을 막진 못한다. 그까이꺼 걍 가서 맞닥뜨리면 되지, 뭐.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박 셰프는 고단수다. 부러 이런 잇태리의 부정적인 면모를 슬쩍 흘린 것 같다. 그것조차도 어쩌면 덮을 수 있는 곳이 잇태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말이다. 잇태리가 그에겐 애증의 관계였다고 고민하나, 책은 증보다는 애가 절절 끓어오른다. "맛의 천국"이요, 잇태리 자체가 아예 맛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이 그걸 증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이탈리아는 가볼 만한 나라다. 혹시 이탈리아에 나쁜 감정이 있어서 “절대 가볼 만한 나라가 아니야”라고 반박하는 이가 있다면 나는 “적어도 당신은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온 것이잖아”라고 말하겠다."(pp.29~30)

 

졌다.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온 것이잖아. 이말 하나로, 모든 것은 진압되고 올스톱된다. 더 이상 할 말, 없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그래, 이제 한국에서 모든 잇태리는 박찬일로 통한다. 이렇게 잇태리를 요리해 놓다니, 박 셰프는 분명 잇태리관광청의 명예홍보대사이거나 무료 왕복티켓 같은 걸 협찬 받고 있을지 모른다. -.-+ (조사하면 다 나와~)

 

이젠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만 돌아놓고선 잇태리 봤다고 깝칠 일 아니다. 잇태리를 잘 갔다왔나 아니냐는 박찬일 버킷리스트를 몇 개나 했는지로 평가 받아야 한다. 그래, 나도 잇태리를 다시 먹을 날을 꼽는다. 역 근처에서만 먹지 않으면 되니까, 그것만 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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