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엊그제, 작지만 소중한 작당모의가 있던 겨울밤. 10평 남짓한 내 공정무역 커피하우스, 와인과 커피를 놓고 '부어라마셔라지껄여라' 송년의 밤이었다. 우리, 사회적기업가학교 동기들이었다. 그 쌀쌀한 날씨, 우린 펄펄 끓고 있었다.

 

밤말? 쥐가 듣는다지만, 쥐쉐이는 일본에 가 있는 마당이니, 우린 마음껏 지랄 좀 떨었다. 사회적기업을 공부하고, 추가로 스터디를 하거나 청강을 하면서 정기 모임을 갖고 곡성을 오가면서, 우리는 다소간의 갈증을 갖고 있었나보다.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사회적기업을 만들어보자는 것. 그것도 인증따위에 목을 매지 않는 우리 내면에 뿌리를 박고 그것을 작동원리로 하는 우리들 마음의 깔맞춤. 뭣보다 우리는 '자유'를 함께 찾기로 했다. 나의 자유, 너의 자유, 모두의 자유. 기득권이나 타자가 만들어놓은 욕망이나 틀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나의, 우리의 것으로 작동하는 삶. 그런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은 물론 뒷세대와 함께 고민하는 것. 나와 사회가 함께 즐거움을 도모할 수 있는.

 

우리는 그것을 '지(知)랄라'로 명명했고, '자유를 꿈꾸는 나를 찾는 시간(삶)'을 (가)기치로 삼았다. 심각한 주제를 놓고도 만담이 오가고 수시로 샛길로 빠지는 우리의 송년은 즐거웠고, 꿈을 꾸면서 슬슬 끓었다. 어쩌다 보니, 그날이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사망과 맞물렸는데, 우린 그날을 좀 더 행복하고 잘 하기로 서로의 마음에 불을 붙인 날로 기록할 것이다.  

 

100도씨(100℃). 

나는 내 책상에 그렇게 휘갈겼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온도까지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 사실 이것을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는 '다른 사회'를 꿈꾸기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불씨를 붙였다는 것. 경쟁과 평가, 타인의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힘들고 불편해도 나의 자유, 우리의 자유, 모두의 자유에 우리 스스로가 복무하는 주체가 되자고, 우리는 마음을 모았다.

 

물론 사람 일은 모른다. 더구나, 우선 나부터 껌정 머리의 짐승은 믿을 게 못된다! 중간에 불씨가 꺼질 지는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는 우리 마음의 불씨까지 꺼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의 온기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지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어느 다른 곳으로 불씨를 옮겨서라도 100도씨를 향해 끓어오를 수 있을 테니까.

 

실은 난, 오래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고 궁금했다. 뜨거웠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억에도 속절없이 자본 권력에 투항하고 순응하고야만 지금의 상황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았음이 이상했다.

 

프랑스혁명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상위 5%가 전국 토지의 25~30%를 소유하고 있던 상황에 대해, 프랑스혁명사는 이리 기술한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한 것!"

 

그런데, 여긴 달랐다. 물론 역사적·시대적 상황과 여건이 다르고, 그러면서 축적된 DNA가 달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1988년 기준으로 상위 5%가 전국 토지의 65%, 상위 10%가 76%를 차지하고, 지금이야 상위권이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음이 분명할 터. 그러나 아직 혁명의 파토스는 미약해 보였다. 자본의 힘이 그만큼 세서? 아니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조건으로서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르겠다. 들고 일어나도 벌써 그랬어야 했건만. 허나, 지금의 우리는 조금씩 불을 당기고 있다. 그건 명백한 현상이다. 촛불로 불씨를 당기더니, 김진숙 위원과 희망버스로 캠프파이어를 했고, 강정마을 지킴이들과 함께 불놀이를 하고 있으며, 'Occupy(점령하라)'로 부채질을 하면서 오버슈팅의 위험한 감이 있어도 <나는 꼼수다>로 장작불로 만들었다.

 

뭣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끓어오르는 개인이 있다. 슬퍼하고 분노하면서 행동하는 개인이 있다. 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본다.

 

혁명, 자유의 이름으로 쟁취하는 그 과정.

100도씨 비등점을 향하는 불씨. 명백하게 끓어올라야 할 지점. 아하, 맞다. 프랑스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란츠 파농은 말했었다. "혁명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1987년6월의 민주항쟁을 다룬 《100℃》는 억압받던 자들이 어떻게 끓어올랐는지 보여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 민주항쟁의 재현. 최규석 작가는 반공소년 출신 영호의 사례를 통해, 그것이 어떻게 발화해서 소중한 백지 한 장을 얻어냈는지를 감정 충만한 이야기로 그려냈다.

 

반공소년 이야기에서 시작한 것이 내겐 흡착력 강한 자석이 됐다. 내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으니까. 반공 웅변대회뿐 아니라 반공 독후감대회 등에서 나는 늘 무적의 똘이장군 만만세였다. 북한의 돼지를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 높인 연사이자 리뷰어였다.

 

그땐 자랑스러움이었지만, 부끄러움으로 바뀌기까지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쥐구멍으로 숨어야 할 것은 돼지가 아닌 나였다. 영호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누나에게, "욕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영호처럼, 나도 내게 욕을 해주던 친구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미욱하지만, 조금씩 깨어날 수 있었다.

 

《100℃》의 미덕은, 우리의 DNA에도 민주화운동을 향해 끓어올랐던 지점이 살아숨쉬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비록 혁명의 기억을 갖지 못한 우리지만, 우리는 지금이라도 혁명을 이뤄낼 수 있음을 자극한다. 혁명은 언제든 상상력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던가.

 

《100℃》는 단지, 6월 민주항쟁의 기억을 통해 과거의 좋았던 날을 되새김질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날을 기억하자는 것도 아니다. 지금-여기의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만든다. 자본이 삼킨 세상이 우리 대부분을 바뀌게 만들고 있으나 바뀌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통해, 다시 세상을 뒤집는 꿈. 그러니까 본래대로 돌아가는 꿈. 혼자 잘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꿈말이다.   

 

물론, 맞다. 감옥에 갇힌 영호처럼 끝이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왜 없겠는가. 정말로 이길 수나 있기나 한 건지, 왜 회의가 없겠는가. 더구나 상대는 독재나 군부 아닌 야비하고 교묘한 자본이다. 이놈은 정말 세다. 독재보다 더 세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최 작가는 영호 옆방의 양심수 선생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그 두려움과 직면할 것인지 단초를 준다. 그것이 99도다. 100도씨가 되면 끓을 것이므로 지금이 99도라고 믿는 우리의 자세.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고 원래 안 끓는다며 포기를 할 수도 있지만, 사람도 분명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사에도 있으며, 6월 민주항쟁이었다는 것. 99도에 그만두면 너무 아깝다. 우리는 이미 9부 능선을 넘어서고 있다. 

 

솔직하게 나는 이기고 싶다.  6시 땡 치모 크락숀 눌러삐가면서, 운동권이 된 영호를 자식 취급 않기로 했다가 면회를 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인 영호아버지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어깨를 맞잡고. 우리가 만들고자하는 사회적기업에서도, 다른 삶도 가능함을 보여주는 증명하는 차원에서도.  

 

《느린 희망》에서 읽은 쿠바농민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왜 체 게바라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는 답한다. "혁명 때문이죠. 모두에게 이로운 혁명." 《100℃》 역시 같은 맥락이며, 우리가 꿈꾸는 사회적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무언가를 대표하는 것보다 꾸준히 일관되게, 마음 먹은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나와 같은 배를 탄 이들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하여 달팽이의 속도로 꾸준히 거닐면서, 6월 민주항쟁이 그랬던 것처럼, 6시의 축제를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의 혁명이 돼서, 혁명이 자극한 삶의 희열을 함께 나누는,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100도씨, 그렇게 끓어오를 날을 위해, 더 이상 우리는 지지 않아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외치고, 분노할 땐 분노하면서 만담을 나눠야 한다. 독립투사들도 만담하고 그랬으며, 민주화도 웃으면서 했다. 그러니, 지금은 더욱 더! 

 

이기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우리는 100도씨를 향해,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체 게바라의 말이었다. 그가 볼리비아로 떠나며 남긴 작별의 한 마디. 이 작별 인사는 68혁명을 통해 전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체 게바라는 영원히 남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지금 우리,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뭣보다 관계 때문에 죽는다. 그러니 그때 그날처럼 이기고 승리해야 한다. 다시는 누구도 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본의 교살을 막아야 한다.

 

그것이 100도씨로 끓어올라야 할 명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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