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끊고 성적이 올랐어요 - 자기주도학습 4000시간의 실험과 기적
정영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남인사십'(마흔)을 목전에 둔 동창들과 모임을 할라치면, 화제는 더 이상 자신을 향하지 않는다. 즉, 중년을 향하고 있는 우리들은 '나'를 은폐엄폐하거나, 순정한 자신의 욕망은 골방으로 밀어넣는다. 아니, 실종됐다. 고작 말하는 욕망은, 따지고 들면 자신의 것이 아니다. 주류사회가 요구하는, 그래서 주입된 타자의 것이다. 

 

이제 그들과 나누는 대화의 주류는, 집(아파트 시세)이나 직장(에서의 출세나 퇴직시점) 혹은 아이들에 대한 것이다. 좋은 아빠(의 조건 등)를 드물게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육, 아니 정확하게는 사교육 비중이 가장 높다. 영어유치원이 어떠니, 학원이 어떠니, 교육비가 어떠니, 등등이 물결을 치고 꼬리를 문다. 이것은 결국 집, 주식 등과도 불가피하게 연관을 맺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이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느냐, 대부분 그것도 아니다. 그저, 이러저러해서 돈이 얼마가 들더라, 이 정도다.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는 나로선, 그 대화에서 약간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온갖 걱정 앞에 내가 끼어든다. 사교육의 무쓸모, 선행학습의 폐단 등을 주창하는데, 그들은 늘 이렇게 종결한다. "니도 결혼하고, 애 낳아서 키워봐라." 철 없는 소리, 멋 모르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는 그들의 충고(?)다. (이런 고마울 데가. 청순하게 욕 나와주신다. 샤방.)

 

그러나, 그들의 충고에 마냥 동의할 수 없다. 비록 나는 아이가 없어도, 그들의 아이들은 곧 나의 조카들이다. 나는 조카들이 이 무지한 아빠들의 손아귀에서 사육당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의 동창들이라지만, 그들은 깨놓고, 이미 사교육의 노예다.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으며 자신의 교육관을 갖고 있지 못하다. 생각하지 않는 죄. 

 

그들은 사교육이라고 일컫지만, 정확하게 그것은 사육이다. 학교로도 모자라, 세상이 아닌 학원이라는 사각의 프레임에 아이들을 가둔다. 그 아이들, 양계장에 갇혀 알만 낳는 난형성 닭과 무엇이 다른가. 거칠게 말해서, 자신의 아이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부모 맞나?

 

나는 그들 일부에게 이 책을 권한다. 너희들이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보내는 학원, 그것이 과연 일류 아이를 만들까? 학원 끊어도 죽지 않아! 학원 다니지 않는다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아. 학원 다니지 않아도 성적이 내려가긴커녕 올라갈 수 있어.

 

그 명제, '거짓' 같다고? 아니 '참'으로 증명한 것이 이 책이다. 2010년 5월, 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진 위험한 실험. EBS 다큐프라임 < 공부의 왕도 >는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을까'를 놓고 4000시간에 걸쳐 실험을 했다.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지,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에 대한, 21명이 참가한 담대한 실험이었다.  

실험은 학원부터 끊는 사교육 정리부터 시작했다. 학원에 길들여진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불안증 따랐다. 이땅은 남들 다 하는데 안하면 불안이 증폭되는 사회 아니던가. 학생뿐 아니라, 부모, 교사까지 사교육 불안증이 닥쳤다. 그렇다면 실험은?

결과는, 올레~ 아이들이 달라졌다! 교사도 달라지고, 부모도 달라졌다. 모두가 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달라졌다기보다 원위치를 찾았다. 학원을 안 가니, 어찌할 바 모르던 학생들이 스스로 움직였다. 공부할 이유를 찾았다. 자연 성적도 올랐다. 뭣보다 가장 중요한 결과가 나왔다. 아이들에게 미소가 퍼졌다.

이 실험, 사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공화국에 건네는 파열음이다. 책을 보면 학원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생각하면, 학원은 악(惡)이다. 아이가 스스로 서지 못하게 만드는 악. 그것은 결국 인생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러니까 명백하다. 학원, 끊어도 산다.

 

아무리 그래도 학원 안 보내면, 뒤처지는 것 같다고? 책을 좀 더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책은, 그러니까 실험은 증명한다.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성적이 올랐다. 물론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개별 특성에 맞춰 자기주도학습을 하도록 만드는 것.

 

우리의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지쳐 있다. 세계 어느 나라 학생들보다 더 오래 교실에 붙잡혀 있는데도 학원까지 가야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참으라고 하니, 대한민국은 점점 미쳐가고 늙어간다. 그러다보니 만날 필요한 것이 위로가 될 수밖에.

 

독학이 아니다. 자기주도학습이다. 삶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고 자신이 꾸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부모들은 왜 그것을 잊고 사나? 시행착오도 삶을, 자기주도학습을 만드는 과정이다.

 

책은 자기주도학습의 목표도 뚜렷하게 제시한다. 그것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기 위함이 아니다.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이들의 생은 길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부모의 조급함이 아이를 미끄러지게 만든다. 시간이 필요하다. 책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으로 돌아가면 결국 시간 낭비. 성과를 얻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고 책은 강조한다. 긴 여정, 무수히 많고 다양한 일들이 생겨나겠지만, 그것 모두 인생이다.

 

나는 내 동창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즉 '나'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곧 아이들이 스스로 생을 꾸릴 수 있게끔 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아이, 학원 보낸답시고, 자기들 등골도 휘어지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망가진다. 이 무슨 '너 죽고 나 죽고'의 시나리오인가. 학원이야말로 '등골 브레이커'가 아니고 뭔가.

 

남인사십, 그네들이 삶에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땅은 더 이상 지쳐선 안 된다. 학원부터 끊자. 아이들은 성적 오르고, 어른들은 성적(性的)으로 왕성해질 수 있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성관계 횟수는 주 1.04회로 조사대상 13개국(34세 이상 남녀) 가운데 최하위였단다. 대한민국의 활력을 돋게 하기 위해, 학원을 끊자. 상관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자신에게 집중했던 동창들 좀 찾고 싶다. 예전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녀석들과 만나고 싶다. 그들을 학원에 뺏긴 현실은 슬프고 우울하다. 그들 대부분, 아직 모른다. 학원 때문에 자신의 생에서 그 자신이 유폐되고 실종됐음을. '나'라는 서사를 잃은 그들 때문에 나도 덩달아 슬퍼진다. 미친 존재감까지 바라지 않는다.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의 총명함을 되찾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 여기 있다'고, 그 존재만이라도 드러내다오.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우린,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고!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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