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의도한 바는 아니나, 12월이 주는 이야기라는 게 그렇다. 나이 얘기가 꼭 들이민다. 그저께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누군가는 오십이라서, 누군가는 사십이라서. 이십대 중반부터였나. 얼른 나이를 잡숫고 싶던 나는, 

아직 여전히 그렇다. 이십대 중반 무렵, 나이듦은 뭔가 감투 같았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이듦을 꿈꾼다. 물론, '제대로' 나이듦. 사십,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에, 나는 어느덧 사십줄을 바라보는 나와 내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그 나이를 이야기한 내 오래된 친구들에게.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여전히 슬픈 것이다.

   
  한 사람의 나이-누군가가 내게 가장 슬픈 단어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죽음이니 가난이니를 다 제쳐두고 나이라고 말하겠다. 그 까닭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저 어쩐지 스무 살이라는 말도 슬프고 서른 살이라는 말도 그것대로 슬프다. 쉰 살은 쉰 살이어서 여든은 여든이어서 슬프다.
 
어떤 세상 없는 부모 형제나 친구 혹은 사랑하는 이까지도 모두,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서 살아줄 수는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깨우치는 데에 어떤 사람은 이십 년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사십 년이 걸린다. 또는 영영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무 일찍 깨우치는 사람들은 그래서 슬프고, 끝내 깨닫지 못하고 삶을 마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또 그래서 슬프다...                                   
                                                   - 김한길, 《눈뜨면 없어라》중에서

 
   

요리
오래된 친구들과의 식사. 하하호호. 웃고 떠든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때론 그렇다. 서로를 신뢰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연놈들, 결혼 연식도 좀 됐고, 아이들도 숭숭 큰다. 인생이 그렇듯, 결혼도 언제든 업다운이 있는 법이지만, 그 결혼이란 게, 그냥 안주하고 있는 느낌.

그들에게도, 여느 부부가 그렇듯, 결혼이 감정을 죽이고 사랑보다 일상이 강해진 그런 것이 됐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고 대신 정이 둥지를 텄다고 하겠지만, 좀 안타까운 면도 있다. 그 빛나던 사랑이 으스러진 것. 다시는 빛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들에게 사랑은 그저 오래된 기억일까? 지금, 사랑하냐고 물으면, 웃으며 툭 던진다. 에이, 그냥 가족이야, 하하호호. 그 웃음이 왠지, 나는 아쉽다. 사랑의 지지고볶기 보다는, 그저 일상이 강해진 풍경.

그러다 그들, 으레 결혼얘길 스윽~ 꺼낸다. 결혼, 어떡할거야? 떼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누. 허나 분명한 것은, 나는 꼭 커피를 포함해서 요리를 해주겠다고 다짐한다. 《요리 본능》에선, 화식, 즉 요리가 성별 분업을 가져오고, 요리는 여자의 것으로 규범처럼 굳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더 자주 부엌에서 요리하리라. 장석주의 詩가 아니더라도,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요리를 하는 남자만큼 멋있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하긴, 내 친구도 결혼 전에는 그랬다. 하하.  

그러니까,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마구마구 불러 일으키는 여자, 그런 여자라면 나는 첫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은 늘 첫사랑, 모두 첫사랑. 일상보다 강한 사랑을 위해, 나는 당신을 위해 요리하는 남자! 자, 오늘은 어떤 것으로 우리의 사랑을 요리할까요? *^.~*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
성경책을 끝까지 읽으리라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
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
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
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
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
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
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 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중에서
 
   

 * 아, 12월5일, 리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1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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