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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휘말릴 수 있는 우연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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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유재현의 쿠바 기행문 《느린 희망》이었다. 쿠바인들의 수도 아바나에 발을 디디기 직전, 인상적인 표지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표지판은 이렇게 말한단다.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쿠바'의 수도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수도. '人'이라는 말 하나만 덧붙였는데, 그 느낌이 확 다르다. 국가가 아닌 사람을 앞세우는 발상이라니, 놀랍고 재밌다. 아마도, 체 게바라가 쿠바 사람들과 함께 이룩한 쿠바 혁명의 영향이 아닐까, 나는 진단했었다.
그 뒤, 어디라도 갈라치면 나는 그곳의 표지판을 본다. 허나, 아직 쿠바를 만나지 못한 탓일까. 나는 다른 어디에서도 사람을 앞세우는 표지판을 보진 못했다. 어설프게라도 우리의 공정무역 커피하우스에선 'OOO OO지역 사람들이 만든 커피'라고 알려주면서 자족하는 정도랄까.
물론 동티모르라고 다르진 않다. 비행기에서 땅에 발을 디디자, 제일 먼저 반기는 말은 'WELCOME TO TIMOR-LESTE'다. 동티모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도 저 말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아, 진짜 동티모르 사람들이 사는 곳,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곳에 왔구나.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복스러웠다. 우리의 발걸음을 환영해주는 듯한 태도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동티모르에서 동티모르에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건넨다면, 동티모르 커피 한 잔을 주면서 이리 말하리라.
"여러분이 마시는 동티모르 커피가 자라는 나라에 오셨습니다."
그 '커피'라는 말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땅, 햇빛, 구름, 비, 안개 등과 같은 자연 그리고 사람들. 한 잔의 커피는 그렇게 '사물과 동물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연처럼 휘말리고 결합한 관계의 결정체다. 그 관계는, 다시 "커피 한 잔 하자"는 말로 새끼를 친다. 관계는 관계를 낳는다.
동티모르 사람들의 수도에 있는 딜리공항은 작고 소박했다. 한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공항보다 더 작고 낡았다. 시골의 터미널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낯섦과 설렘이 한 공간에서 뒤엉킨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동티모르를 느껴본다.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가 목구멍을 넘어간다. 그렇다고 커피 냄새가 날리는 없다.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피부가 약간 더 검은 사람들이 공항을 메우고 있다. 몇 년 전의 내전 탓인지, 군복 비슷한 것을 입은 요원도 보이고, 시골 터미널의 어수선함을 닮았다. 그들이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것 같진 않다. 다만 아이들의 시선은 다르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애처로움을 품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여행객에게 다가서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십 수년 전,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나는 그것에 무척 당황했었다. 기브 미 원 달러.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에워싸고는 하나같이 외쳤다. 어찌할 바를 몰라, 줘야 할 지 말아야 할 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 것인지 머리가 하얗게 탈색됐던 인도의 첫밤이었다.
뭣보다, 그 아이들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 원하는 바도 아니요, 돈벌이를 위해 어른들에게 등을 떠밀려 나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동정을 살 수 있는지, 곧 스스로 알아차린다.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없는' 환경은 아이를 어른이 되게 만든다. 이 초롱초롱한 아이의 눈에서 고단하고 애처로운 삶의 면모를 엿봐야 한다는 사실도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딜리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일행이 있었다. 양동화 전국YMCA전국연맹 간사와 현지인 조디. 이 낯선 땅에서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안도할 일이기도 하다.
5년 전, YMCA가 동티모르에서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전개할 무렵, 양 간사는 산지 개발과 커뮤니티 조성을 위해 이곳에 왔다. 이십대 후반에 동티모르를 자원한 양 간사는 어느덧 삼십대가 돼 있다. 국내에서 두 번 가량 본 적이 있어 나와는 구면이다. 건강한 얼굴의 그녀를 보니 좋았다.
그 옆의 조디. 잘 생기고 착하게 생긴 청년이다. 인도네시아 출신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동티모르에서 YMCA의 공정무역 커피사업을 위해 일하고 있단다. 영어조차 쉬이 알아듣지 못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지구인 아니던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웃음으로 서로를 확인한다.
인사를 대강 마치고, 두 대의 차에 나눠타고 딜리공항을 떠난다. 며칠 후면 다시 만날 곳이겠지만, 여기(사는 곳)가 아닌 어딘가에 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장소가 공항이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됐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장소 또한 목적지의 공항이다.
그곳을 떠난다. 딜리 시내를 향한다. 동티모르의 첫 기착지인 마우베시를 향하는 길이다. 험한 길을 달려야 하는 여정, 오프로드용 차는 왠지 믿음직하다.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조디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차창을 통해 가난이 덕지덕지 묻은 풍경이 지나간다. 여느 동남아시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모습 또한 엇비슷하다. 섬나라이며, 오세아니아에 속한다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동남아시아인이다. 물론, 그들은 그런 나의 이방인적인 시선에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일본, 중국 사람을 구분 못하지만, 우리는 작은 차이를 통해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수도라지만, 높은 건물도 없고, 도로 포장도 시원찮다. 바깥 풍경은, 만만디 그 자체였다. 덥고 가난한 나라의 여유로움 혹은 나른함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느릿했고, 무심한 듯 흘러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노점상이 진을 치고 있었고, 허름하고 청결해 뵈지 않는 상점들도 도열해 있다. 집도 대충 지은 듯 허술해 뵌다. 이런 시각은 아마 지나치게 깔끔하고 정결하게 구획된 자본의 질서에 익숙해진 탓일 게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나는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밖을 바라본다. 나와 동티모르는, 동티모르 사람들은 어떤 우연으로 이렇게 마주한 것일까. 어떤 우연한 일들이 함께 할까. 궁금하고 설렜다.
테튬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최하위권인 나라의 사람들. 오랜 식민의 기억과 독립의 짜릿함도 잠시, 그들은 어쨌든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존재들이다. 이방인의 해묵은 관점으로 그들을 재단하려는 사고를 막아야 했다. 나는 이것만은 세상 누구에게나 똑같으리라 믿는다. 하루를 잘 살아내는 일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변치 않을 사실.
그러고보면 그들과 우리는 똑같은 '하루'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의 삶에 틈입한 이방인이지만, 서로 우연한 일들에 휘말린 동지다. '커피'라는 관계의 창을 통해 우리는 이렇게 만난 것이다.
동티모르가 내 삶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내가 이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동티모르라는 말이 나오면, 나는 솔깃했고, 더듬이를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는 말했다. "타인의 사정에 무심한 개인은 뿔뿔이 나뉜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그들만의 진실을 쌓기 마련이다."
아마 그랬다면, 나는 동티모르를 그저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나라'라고만 생각하고 어떤 더듬이를 세울 노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은 내 삶에 동티모르를 끌어들였고, 나 역시 동티모르 사람들의 역사에 아주 작고 사소한 흔적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그런 풍경에서도 차 안에서는 즐겁다. 옥천에서 장애인들을 고용해 빵을 만드는 하 대표님의 구수한 입담 덕분이다. 운전을 하는 조디의 옆자리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데, 그들은 대화를 한다. 뒷자리에서 그걸 보면서 신기했다. 서로를 알아듣고, 이야기를 나눈다. 동티모르는 또 다른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낯선 땅이라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점점 더 크게 자리를 잡아간다.
딜리의 바다를 봤다. 저 바다는 내 고향 바다와 잇닿아 있을 것이다. 이십 수 년 전 봤던 그 바다가 흘러흘러 지금 여기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딜리를 차츰 벗어난다. 길이 점점 더 울퉁불퉁해지더니 산악지대로 차츰 접어든다. 모험은 본격적으로 이제부터다. 커피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