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선물 - 커피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지음 / 김영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피를 마신다. 세상에서 가장 향긋한 내음이 코를 자극하더니, 입에서 퍼지는 향미가 뇌를 깨움과 동시에, 목구멍을 타고 마음을 적신다. 몸과 마음, 커피는 곳곳에 박힌다. 커피가 주는 선물이다. 아, 행복하다. 커피야, 고마워.

그와 함께 때론, 나는 울컥한다. 방금 마신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선물 같은 이 커피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생각하면 그렇다. 커피 한 잔이 내게 오기까지 거쳐 온 수고를 생각하면 그렇다. 커피농사를 짓는 사람부터, 방금 커피를 따라 준 사람까지. 물론, 커피라는 농작물이 자랄 수 있게 해 준 흙, 안개, 햇빛, 바람, 비, 나무 등 모든 자연에 대해서도. 내게 행복을 주기 위해, 지구의 모든 것이 한데 모여 있다. 이 커피 한 잔에 말이다. 참으로 고맙다.

나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다. 멋으로 맛을 내는 사람이고자, 오늘도 커피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나는 커피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누구나 자신의 직업이나 관심을 통해 세계를 읽고 해석하듯, 나도 그렇다. 커피 그 자체와 함께, 커피를 둘러싼 다양한 세계에 나는 촉각을 세우고, 사유하고자 노력한다. 아마 그 덕분일 것이다. 내가 다루고 만지는 커피는, 공정무역 커피다.

말하자면, 커피노동자인 나는, 내가 만드는 커피가 누군가의 하루를,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커피가 어떻게 세계를 연결시켜주고, 어떻게 온 것인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도.

커피 강의를 할 때마다 언급하고, 이전 글을 통해서도 언급한 적도 있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 말.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수확한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나는, 그리고 커피를 마시는 당신은 그렇게 이미 신세를 지고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세계의 누군가에게 신세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커피 향미가 더욱 짙게 다가온다. 사실, 이건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우린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교에서 늘 이런 말을 들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니가 먹는 이 밥을 만든, 벼농사를 지은 농부의 노고를 생각해 봐라.” 나도 그랬고, 많은 이들이 대수롭지 않게 들었겠지만, 같은 맥락이다.

참농부가 여기 있었네

《히말라야의 선물》을 보고, 그래, ‘농부’의 뜻을 재차 다졌다. 누구보다 땅님의 힘을 믿고, 바람님, 해님, 물님, 별님, 안개님 등 자연이라는 큰 선생님의 뜻을 받들고 합일점을 찾는 분, 농부님. 네팔에 있다고 다르랴, 커피를 다룬다고 다르랴. 더구나, 그들은 잔머리 굴리지 않는다. 편하고 손쉬운 방법을 구하지 않는다. 그저 몸으로 밀어붙인다. 몸에서 우러난 철학이랄까. 교과서나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다. 땅을 일구고, 커피나무를 기르며, 유기농법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렇다.

책의 저자이자 EBS다큐프라임 <히말라야 커피 로드>를 찍은 이들의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유기농법이야말로 자연이 그들에게 허락한 농사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해본 적도, 하고 싶지도 않다는 말레 마을 농부들. 이런 고집 속에서 단순히 커피 수확량을 늘리기보다는 깨끗한 커피, 건강한 커피를 키워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p.141)

거참, 돈독 든 화폐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뻘짓하고 자빠졌다. 많이 팔아서 많이 남겨야 미덕이지, 뭔 깨끗한 커피, 건강한 커피란 말인가. 화학 농약 화끈하게 뿌려줘서, 수확 빠방하게 하고 봐야지. 뭐어, 천연 비료? 천여언 비료오~ 그럼 소는 누가 키워? 소는? 하고 버럭할 일이다.

뭐, 그런다고 여기 말레 마을 사람들, 끄떡할 사람들도 아니다. “사람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화학 농약입니다. 우리는 화학 농약은 전혀 쓰지 않아요. 우리는 약초로 천연 비료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절대로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정말 깨끗하게 만듭니다.”(p.141)

그러니까, 배운 놈들이 더하다는 말, ‘틀린’ 말이 아니다. 말레 마을표 유기농 비료를 만드는 이쏘리의 경우처럼, 여기의 커피 농부들은 편하고 빠른 방법 대신 느리지만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땅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그 땅이 건강한 커피나무를 길러낸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땅에서 배운 현자들.

하다못해, 열네 살 커피 농부 수커바르도 이리 말한다. “만약에 제가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끼칠 거예요. 그래서 좋은 유기농법을 이용해 커피 농사를 짓고 싶어요.”(p.254)


아, 이런 커피, 당신이라면 마시지 않을 텐가? 내 알기로 많은 공정무역 커피가 그렇다. 내가 다루고 만드는 공정무역 커피 역시. 나도 그래서, 종국엔 농부하고 싶다는 거고. 어린 커피나무를 쓰다듬으며 두 손 모아 “커피가 이 땅에서 잘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피 농부의 모습을 지녔던 이쏘리처럼.

커피, 말레 마을의 모든 것

열한 가구가 사는 말레 마을. 어쩌다 커피나무를 재배하게 됐지만, 마을 인민들은 저자들이 마을에 발 딛기 전까지, 커피가 어떤 맛인지, 어떻게 먹는 것인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도 몰랐다. 처음엔 커피를 환영하지도 않았고, 그저 생계에 도움이 될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하나둘 시작한 것이 커피나무 재배였다.

허나, 이젠 커피가 그들의 삶에 깊이 삼투했다. 그들에게 커피가 어떤 존재이냐면, 희망의 다른 이름이요, 최고의 치유약이며, 돈이었다. 또 행복을 가져다주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한다. 친구 같은 존재요,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끈다. 가족이자, 미래며, 약속이다. 인생의 전부이자, 의무요, 아름다움이다. 슬픔과 상처를 이기는 방법이다.

우리가 무심하게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담긴 마음과 삶이다. 커피 한 잔 마실 때마다,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이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크나큰 차이다. 세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진다. 그것은 곧 행동과 실천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히말라야의 햇빛과 안개, 그리고 농부들의 정성 어린 손길을 머금고 마침내 말레 마을 올해의 첫 커피가 완성되었다. 한국에서 무심히 마시던 한 잔의 커피. 그 안에 말레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이렇게나 깃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p.304)

특히나,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은, ‘이야기’가 잔뜩 묻어있기 때문이다. 열한 가구, 모든 가구마다 커피에 얽힌 사연과 이야기가 읽는 이를 툭툭 건드린다. 모든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다큐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주인공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다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말레 마을이 좀 더 특별했던 이유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커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스물다섯 미나 판데의 이야기가 가장 아릿했다. 남편을 사별하고, 다섯 살에서 아홉 살까지의 모두, 만주, 마야, 머니스 등 먹성 좋은 네 아이를 키우는, 말레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가족. 황무지와 사투를 벌여, 맨손으로 커피 밭을 일군 스물다섯 억척여인의 분투가 말이다.


 

그 미나가 이파리 하나 달려 있지 않은 막대기, 즉 죽은 커피나무에 물을 주는 이야기와 사진에서, 나는 커피의 쓴맛을 알싸하게 느껴야 했다. 물 준다고 살아날리 없는 커피나무에 물을 줄 수밖에 없는 그 마음 때문에. 가족에게 유일한 희망의 끈인 커피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마음 때문에 말이다.

말레 마을의 가장 어린 커피 농부이자, 가장 좋은 커피를 재배한 수커바르, 가진 것 없이 가난하나, 식구들이 헤어지지 않고 모여 사는 게 가장 큰 소망인 다슈람, 산사태로 육십 그루의 커피나무가 죽고, 단 한 그루에서 희망을 바라본 이쏘리, 커피와 가족을 위해 열 살짜리 아들을 스승으로 글을 공부하는 서른여덟의 문맹 아빠, 로크나트 등. 모두가 그렇게 커피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투영하고 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 맺는 관계

아, 다시 묻겠다. 이런 커피, 당신이라면 마시지 않을 텐가? 커피가 그냥 커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커피에 묻은 이야기, 삶, 세계가 커피 향을 더욱 북돋지 않는가 말이다. 책은 굳이 공정무역임을 내세우진 않는다. 자연스레 공정무역이 왜 필요한가를 말레 마을 인민들을 통해 스며들게 한다. 그게 최선이다.

공정무역이 최선이냐고 묻는다면, 확실하냐고 되묻는다면, 물론 뜸을 들일 수밖에 없다. “공정무역(Fair Trade)은 저개발국 생산자에게 정당한 몫, 공정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한다는 목적 아래 펼쳐지고 있는 운동”(p.226)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기존의 시장질서체제 내에서 작동 가능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공정무역이 당장 이들의 경제적 가난을 타파할 수는 없다. 세상의 빈곳을 약간 메우면서, 더 나은 체제를 고민하는 단계라고나 할까.

허나, 이것마저도 외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커피는 세계(교역과 경제시스템)의 불공정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품 중 하나다. 그건 좀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지만, 이 책은 그것까진 다루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흠은 결코 아니다. 우선은,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져야 한다. 선물을 함께 나눠야 한다.

누구든 꿈꾸는 유기농 삶. 말레 마을의 커피 농부들을 통해 그것을 살짝 엿볼 수 있다. 덕분에 우리 마음도 은근 유기농이 된다. 더 질 좋은 커피, 더 깨끗한 커피를 키워내겠다는 말레 마을 인민들의 꿈이 있기에, 우리는 더 질 좋은 커피, 더 깨끗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커피를 골라야 하는지 좀 더 자명해지지 않는가. 다른 커피가 불공정하다는 건 아니지만, 커피 한 잔이 어떤 세계를 품을 수 있는지, 나와 당신의 커피 한 잔이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인지 안다면, 커피가 더 맛있게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은 자부심까지 살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정무역에 대한 오해 중의 하나라면, 비싸지 않느냐는 건데, 모르고 하는 소리다. 좀 더 알아봐라.

유기농 커피는 제각각 익는다. 인위적인 처방이 아닌 자연 법칙 그대로 따르다보니 한 나무 안에서도 열매가 익어가는 속도가 다르다. 한 배에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다 똑같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니, 공정무역 커피도, 익어가는 속도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와 닿아서 실천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와 닿아도 실천이 느릴 수 있고, 혹자는 와 닿지도 않고 실천하지도 않을 것이다.

커피 열매가 익기까지 기다림의 미덕이 있듯,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일상에서 필요하듯, 우리는 지난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공정무역이 빈곤을 단박에 벨 수는 없으며,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다. 허나, 이 책을 읽는다면, 내가 만드는 커피를 마신다면, 앞으로 커피는 댁들이 평소 알던 그런 커피가 아냐. 커피 장인(농부)이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심은 커피콩으로, 바리스타가 그 노력과 마음에 자신의 마음과 노동까지 담아 빚어낸 선물인 거다. 그게 바로 내가 아는 커피의 관계(학)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힘을 합쳐 준비해야 하는 것이 커피로드”(p.307)라고 했다. ‘커피 한 잔 마시기까지의 길’(커피로드)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연관돼 있고, 신세를 져야 하는지 알겠지?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그랬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커피의 역사》의 저자인 하인리히 E.야콥의 말도 하나 인용하자면, “한 잔의 커피는 경이롭고 놀라운 관계의 집합체이다.”

커피 한 잔 마시자는데 왜 그렇게 까다롭냐고. 그러니까, 세상 너무 띄엄띄엄 보지 마라. 확~ 수틀리면, 카푸치노(거품) 키스해 줄 테니까. 언제든 말만 해라. 참, 카푸치노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시크릿 가든>에서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겠지만, 사회지도층과 가난한 계층이 카푸치노 키스로 하나가 됐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렇게 계층, 인종 등으로 분리된 사회를 카푸치노 사회라고 부른다.  

지금, 우리의 사회가 그런 셈이겠지. 돈 있는 놈과 돈 없는 분으로 나뉜, 거품 가득 낀 사회.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세한 카푸치노 이야기도 들려주마. 오늘은 이만하고, 그래, 커피 한 잔 하자. 널 위해 만들어주마. ‘준수의 선물’이다. 너와 난, 그렇게 관계를 맺는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