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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크백 마운틴 - Brokeback Mountai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토요일(1/22) 방송될 울산 MBC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비록 나는 그것을 들을 수 없지만, 노래를 신청했다. 틀어준다더라.
아무렴, 나는 예언자는 아니지만, 2011년 1월22일 늦은 오후의 어느 한 때,
대한민국 울산의 공기 중에는 이 노래가 공명할 것이다, 「He Was A Friend Of Mine」.
울산의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이 노래를 듣고, 이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히스 레저.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그와 나는 모르는 사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통하는 사이일 것이다.
오늘, 귀 기울여 들었던 유이한 노래, 「He Was A Friend Of Mine」와 「거위의 꿈」.
이 글을 접한 당신도 아마 울산(과 그 인근)에 있지 않다면, 라디오를 통해선 듣지 못할 터,
플레이 버튼을 살짝 눌러 이 노랠 들어도 좋겠다. 그저, 그 사람을 짧게라도 떠올려보는 시간.
그런데 왜 연고도, 관련도 없는 울산이냐고? 그건 개인적으로 물어라. 아프지 않게.ㅋ :P
히스 레저, 그 아름다운 사랑의 초상
3년 전, 서른 즈음에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를 추모하며
1월22일. 커피 한 잔을 준비한다. 커피야 매일같이 마신다지만, 이날은 약간은 다른 커피야. 특별한 레시피로 준비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마음 한 스푼이 더 들어가지. ‘에스프레소 리스트레토(ristretto)’1)를 뽑고, 스티밍한 우유, 한 점을 찍는다. 메뉴의 이름은, ‘브로크백 마운틴’. 시간과 양에서 제한된 채 추출됐으나, 맛이 진하고 짙은 풍미를 지닌 리스트레토. 거기에 덧붙여진 한 점은, 브로크백 마운틴에 대한 동경이야.
맞아. 그 커피 위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지? 광활한 산맥과 함께 떠오르는, 히스 레저(본명. 히스클리프 앤드루 레저). 서른 즈음, 요절한 배우예술가. 마음 한 스푼은 다름 아닌, 히스 레저에 대한 추모심이야. 아마 ‘콩’도 함께여야 할 것 같은 커피 한 잔의 시간. 3년 전, 2008년 1월22일 히스 레저가 영영 떠났어. 남겨진 사람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가 없는 삶을, 누군가는 살아가고 있다. 당신과 함께 커피 한 잔, 나눈다.
아름다운 청년, 히스 레저
커피 한 잔에 콩, 끝이 아니야. 사실 하나 더 있어.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거기엔 아름다운 얼굴이 있으니까. 아마, 그건 마음이 아리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마다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런 말을 남겼어. 히스가 떠난 직후인 제14회 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시상식, <데어 윌 비 블러드>로 영화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소감을 통해 히스를 거론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히스 레저는 완벽했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는 이미 인생에서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했다.” 아름다운 청년, 히스 레저. 죽어서도 호명된 그의 이름에는 그렇게 아름다움이 묻어있구나.
아름다운 누군가는 그를 향해, “I Swear...”를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잊지 않겠다는 그 맹세는, 사실 히스의 것이었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히스가 분한 에니스는 잭(제이크 질렌할)의 옷을 보면서 그렇게 나지막하게 뱉었지. 아마, 이 영화를 가슴으로 본 사람이라면, 히스의 죽음 소식을 듣고선, 이 장면에서 카메라를 다시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 그 슬픔을 가슴으로 삼킨 그 얼굴이 떠올랐다.
도리가 없잖나. 당신이라면 어떤 얼굴을 떠올렸겠나. 유작 직전의 작품이 됐지만, <다크 나이트>의 조커? 글쎄, 그가 조커역을 맡아 지나치게 몰입, 정신적인 혼란을 겪었다는 말도 있었다만, 그건 배우가 가진 일종의 숙명이었을 터. 온전하게 배우였던 그가, 조커를 즐겼을망정, 그것을 마지막 얼굴로 삼고자 했을 리는 없지 않았을까.
차라리, <브로크백 마운틴>의 에니스가 제격이지 않아? 완벽에 가까운 배우, 다니엘도 완벽하다고 격찬했던 그 얼굴 말이야. 어쨌거나 <브로크백 마운틴>의 잔상이 그를 온통 지배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음 그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계속 얘기하자.
아픔, 사랑의 다른 판본
아마도 그건, 사랑, 그것도 세상에서 파멸당한 사랑 때문이었을 거야. 사랑했지만,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하고,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채, 안으로만 삭혀야만 했던 사랑. 해서는 안 될 사랑, 그런 게 있어선 안 되잖아. 물론, 세상의 윤리는 때론 사랑을 속박해. 울타리를 쳐놓지. 브로크백에 풀어놓은 양들처럼 말이야. 방목하는 것 같지만, 결국 누군가의 소유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선 안 되지. 그저, 울타리가 넓을 뿐.
하지만, 사랑에 필요한 건 세상의 윤리가 아니잖아. 사랑에 오로지 사랑의 윤리만 있으면 되잖아.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마냥, 사랑의 이치는 단순하다. 당사자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것.
사랑은, 기실 세상의 윤리가 갖다 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누가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가’의 문제야.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함께하면 그건 옳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그른 것이다.(이건 명로진의 말에서 빌어왔다.) 사랑은 세상의 윤리가 가늠하거나 잣대를 들이댈 것이 아니다. 옆에서, 혹은 당사자도 아닌 이가, 너의 사랑이 이러쿵저러쿵, 말짱 헛것이고, 헛말이다. 닥치고 꺼져라, 외쳐도 좋을 터.
당신도 알다시피, 히스는 사랑하는 모습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온몸으로 보여줬다. 이안 감독의 연출이었다고는 하나, 히스가 아닌 다른 에니스는 상상할 수가 없다. 물론, 그는 닥치고 꺼져라, 고 외치지 못했어. 이른바 ‘도둑 사랑’ 혹은 ‘몰래한 사랑’.
돈 많은 잭이 그 따위 시선에 ‘F word’를 날리자고 했으나, 에니스를 칭칭 감은 세상의 윤리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지. 겁이 난 거야. 돈 없는 노동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이란 건, 그닥 우호적이질 않거든. 그것이 사랑이라도 말이다. 사랑에도 혐오가 있는 건, 참 꼴불견이야, 그렇지 않아?
결국 그 사랑, 파멸 당했다. 브로크백은 그저, ‘시크릿 가든’이었던 거지. 둘만의 사랑을 간직했지만, 실상은 마법도 없고, 체인지도 없는. 현실에선 인어공주는 거품이 될 뿐이야.
하늘은 가끔, 지상의 위대한 연인을 질투해, 자신의 처소로 불러들이곤 한다. 히스도 아름다운 사람을 먼저 하늘로 데려가곤 하는 하늘의 습관에 불려간 건 아닐까. 하늘은 그렇게 제 욕심을 채우곤, 지상에 슬픔과 아픔만 똑 남기더라. 그건 꼭 남은 사람들의 몫인 양. 사랑이 한편으론 곧 아픔이요, 슬픔이라는 것을 알라는 하늘의 뜻인가. 커피가 탄다. 쓰지만 강한 풍미를 느끼고 싶다. 커피 한 잔에 농축된 아픈 사랑의 흔적.
Heath is not here, but…
에니스는 터뜨리지 않고 꾹꾹 누르고 삼키던 사람이었어. 가슴에 돋는 칼로 사랑과 슬픔을 자르던. 히스는 그런 에니스로 각인된 것이 어떨 진 몰라도, 예민하고 섬세한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고전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를 본 뜬 이름부터, 그는 깊은 강이 되고 싶었다. 호주 출신으로 할리우드의 공세에 잡아먹히지 않은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예술적 영혼 덕분이 아녔을까.
당신은 봤는지 모르겠네. 그는 <아임 낫 데어>에서 ‘밥 딜런’의 어떤 한 모습을 그렸어. 그는 세상에 없는 모습을 구현하지 않았음에도, 영화 제목처럼, ‘I'm Not There’를 실현하고야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그를 스크린에서 불러낼 재간은 없어. 디지털 매직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해도 그건, 히스가 아니다. 그는 이제 박제된 히스로만 재현될 것이다. 성장도 노화도 멈춘 그때 그 모습으로만.
히스는 거기도 여기도 없다. 허나, 나와 당신뿐 아니라, 그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개인의 물결이 넘실댈 거야. 그러니, 그는 비록 없어도 없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명복을 빌거나 어쩌다 히스가 그리워지는 날에 영화를 돌려보고, 추모를 공유하는 일밖에 없을지라도. 브로크백이 안겨준 에니스와 잭의 사랑에, 당신과 내가 ‘사랑 확신범’으로서 응원할 수밖에 없어도.
아울러 마틸다 레저, 히스가 세상에 남긴 딸. 그 아이는 올해, 한국 나이로 일곱 살이지, 아마. 히스라는 아빠 없는 생이지만, 잘 버티고 견뎌나가길. 세상의 악행에 쉬이 굴하지 않고, 거칠고 더러운 공공연한 비밀을 품은 세계를 어떻게든 헤쳐 나가길. 사람의 있을 곳이란, 이렇게 커피 한 잔에도 있구나. 그래, 안녕 에니스, 안녕 히스 레저. 참, 노래는 <브로크백 마운틴> OST에 담긴, 「He Was A Friend Of Mine」. 커피 참, 진하다. [뷰즈 기고 원문 약간 수정]
p.s. 20일, 어제 용산 2주기. 아직 용산참사는 끝나지도, 아픔이 아물지도 않았다.
故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 님과 당시 경찰이었던 김남훈 님,
명복을 빈다.
여전히 아픈 건, 그 '사람(들)'을 죽인 주체가, 그들이 믿고 살던 국가였다는 거다.
'사람 아닌' 김석기(당시 서울경찰청장)는 1월10일 오사카 총영사로 내정됐다.
거참, 시기도 그렇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이 국가의 정신줄은 대체.
그러니, 한국엔 '정부'가 없다. 몰염치한 '회사'만 있고. 어메이징하다.
마침, 오드리 헵번과 겹치는 이유다.
그녀가 스크린의 요정,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사람'인 이유가 있다.
1988년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된 그녀는 1992년 9월 소말리아를 방문, 말했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배우일 때보다 더 많은 정열과 생을 다하면서 구호 운동에 헌신한 그녀의 이 말은, 구호와 기부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북돋았다. 명성과 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체화한 그녀였다. 스크린의 요정이자 은막의 여왕으로 받은 사랑, 어떻게 돌려줘야 하는지를 알았던 아름다운 사람.
오드리 여사는, 1993년 1월20일 세상을 떠났다.
구호활동에 매진하다 건강이 악화됐고, 직장암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들에게 들려준 유언이나 명언으로 많이 알고 있으나, 실은 그녀가 좋아한 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