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3.0 - 김광수 소장이 풀어쓰는 새시대 경제학
김광수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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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시대다.  마냥 어렵다고만, 현실 정합성이 떨어지는 이론이라고만 치부했던 시절이 아니다. 일상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경제학은, 어느덧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아마 일상적 경제생활의 변화나 의식의 변화가 그 이유일 터인데,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은 현상이다. '일상의 경제학', 그 비슷한 이름으로 각종 경제학 강의가 이뤄지고, 남녀노소 누구 할 것 없이 재테크에 열중한다. 합리성을 띤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길 열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경제학을 사유하고 있을까. 경제학 내에서의 하위 카테고리나 스펙트럼 또한 엄청 넓을 텐데, 현실 속으로 파고든 '경제학'을 고민하는 시선들은 올바른 전제를 갖고 이뤄지고 있을까. 

세간의 널리 퍼진 오해 혹은 오류 중의 하나. 어쩌면 제대로 된 경제학을 사유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그것.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 있다, 혹은 분리돼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전제다. 잘못된 전제로 인해 일상의 경제학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경제를 논하고 문제를 풀 때, 정치를 대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건 '무식'에 가깝다.  

아마도 잘 알 것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죽지도 않은 것을 살리겠다는, 엉뚱한 프레임의 구호로 대중들의 마음에 파고든 작자의 논리가 그러한 것이다. '실용'이라는 고갱이 없는 수사로 그는 대중을 현혹하는 주술을 퍼트렸고, 그것이 먹혔다. 3년 여의 시간. 경제가 정치와 외따로 떨어져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경제 쥐뿔도 모르는, 무식한 MB적 구호는 현실 정합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다시 돌아가, 경제학. 과문한 나는, 경제학을 이리 이해한다.

“의식주 생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삶과 연관된 기본에 대한 이야기.” (김수행 마르크스경제학자)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먼저 쓰러져가는 빈민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앨프리드 마셜 영국 경제학자)
“경제학의 목표가 많은 사람을 좀 더 잘 살게 하는 것이라면, 먼저 가난한 이들을 보고 마음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 교수)

물론, 학교나 직장, 사회가 그리 알려주지 않는다. 특히나 지금-여기에선, 많은 이들이 경제학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것을 보통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생각해보자. 경제학이 애당초, 특정 계급이나 계층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것으로 탄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건 자명하지 않나.  

그러니, 경제학을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건, 단순히 돈이나 화폐로 계산되는 수치에 매몰됨을 뜻하지 않는다. 경제가 정치나 교육 문제 등과 분리해서 작동되는 것도 아니다. 일상의 경제(학)를 다룸에 있어서도 우리는 사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 등과 관계맺고 있음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집을 살 때도 교육의 문제가 끼어들고, 물건을 살 때도 우리는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등 윤리나 사회를 생각하는 경험도 한다. 경제는 그만큼 모든 것과 잇닿아 있고, 특히나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나, 경제(학)를 모르오’라고 커밍아웃하는 거나 다름없다.   

《경제학 3.0》은, 그것을 지적한다. 경제는 혼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며, 지금의 경제 현상을 어떻게 보고, 우리가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지 고민할 것을 권한다.  지금-여기의 우리가, 경제학을 어떻게 현실과 연결시켜야할지 사유해보자고 화두를 던진다.  

가까이, 지난 10년을 돌아보자. 과연, 우리는 어떤 경제학을 토대로 어떤 경제를 구축했는가. 집(주택)문제부터 의료, 노동, 노후, 교육 등 일상의 경제와 관련된 것에서 우리는 나락을 경험했다. 부동산 투기 열풍과 나날이 늘고만 있는 가계 부채.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생산적인 경제는 없었다. 거품 경제가 삼켜버린 사회. 실업에 처한 청년의 좌절은 물론, 믿었던 국가로부터도 배신당한 국민적 좌절(용산 사태)도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경제의 문제였을까. 아니다. 정치인과 관료에 의해 넝마가 됐고, 오랫동안 쌓아온 경제 구조마저 한순간 허물어졌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비정규직이 생겼고, 청년들은 더 이상 이 사회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 사교육은 활개를 쳤고, 집은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야할(buying) 곳이 됐다.   

돌이켜보라. 이것은 정치의 문제였다. 김광수 소장도 그것을 지적한다. “우리의 모든 삶은 정치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사교육비가 급증하는 것도, 대학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도 모두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이다. 어떤 정당 또는 대통령이 어떤 교육 정책을 시행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p.237)

경제가 정치와 무관한 것이라고 문제해결을 뒤로 미루지 말자고 김 소장은 강조한다. 정책을 펼치는 국가 관료들과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 야합이 이뤄낸, 아울러 그에 끌려다닌 우리들의 시행착오. 물론, 장삼이사의 무식이나 무능은 큰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대통령, 정부, 정치권의 집단적 무식(무능)은 나라를 말아먹는다. 이것을 그대로 내버려둘 순 없다.

구조적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일이 필요하다. 공정하고 올바른 경제시스템의 운영을 위해,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실패와 위기의 주모자들에게 계속 이를 맡길 순 없는 노릇이다. 과거의 관습과 경험을 차단하고, 경제학의 새로운 정립에 나설 수 있는 눈 밝은 사람과 정치를 선택해야 한다.  

기업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는다. 기업이 잘 돼야 노동자들이 먹고 산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기업은 기업의 배만 불리고, 노동을 착취하고 있다. 실업을 빌미로 일하는 사람을 겁박하고, 윽박지른다.  

그리하여 문제는, 정치다. ‘경제가 정치와 무관하다’는 인식은, 정치권력을 계속 잡기 위해 노회한 자들이 주입한 수사다. 경제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정치가 필요하다. 경제학의 임무와 고민의 핵심에는 정치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물갈이가 있다. “위기에 빠져 있는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21세기 지식정보화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여야 정치권과 기성세대의 물갈이를 통한 세대교체가 정치 개혁의 핵심이 돼야 한다.”(pp.257~258)  

아울러,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지금 이 시대에 부각되고 있는 '희소성'.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는 경고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임금은 더 오르지 않고, 이윤도 오르지 않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또 모두 죽도록 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그 경고(정체상태론)는 이미 현실이 됐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러나 이 순간에서도,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역사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므로, 이 상태가 우울한 상태가 아닌 '조화 상태’(harmonized state)'가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경제학을 단순히 보지 말 지어다. 우리 시대의 경제학은 정치적 상상력은 물론 문학적 상상력까지 동반하면서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삶과 연관된 기본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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