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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지음 / 푸른숲 / 2009년 10월
평점 :
《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인디 레이블의 악전고투의 순간, 고생바가지를 다룬 글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건, 뭐 염장질이라고 봐야겠다. 그러니까,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이런 거다. 뭐라도 재미난 것을 하면서, 명예와 명성을 얻고, 돈까지 벌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을쏜가.
물론, 약간 부러움에서 비롯한 언급이었지만, 붕가붕가레코드(이하 붕가붕가)는, 책을 보면 그렇다. 놀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잘 논다.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들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 가능하도록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과장해서 이렇게 잘 노는 애들은 국민들의 정서함양을 위해서라도 국가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제대로, 잘 놉시다'라는 콘셉트의 공익광고라도 만들어 그들을 출연시키고 싶을 정도다.
붕가붕가는 그렇다. 인디신의 거성, ‘장기하와 얼굴들’을 통해 익숙해진 레이블이다. 책이 나올만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출판사라고 그들을 놓칠리가 있나. 책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가 쏠쏠하다. 대학교에서 음악 좀 해보겠다고 '깝치던' 청춘들이, 혈혈단신 음악판에 뛰어들어 좌충우돌, 종횡무진, 엎치락뒤치락 흥망성쇠(?)를 겪은 기록.
점차 나아지고 있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붕가붕가의 성장사를 보자면 기특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어떻게 버텼을까, 용하기도 하고. 더구나 그들은 잡탕이다. 뚜렷하게 섞이지도 않고, 하나로 관통할만한 음악세계도 없다. 그러나 단 하나, 재미있어야 할 것. 아하, 책은 그들의 음악과 다르지 않다. “서로 섞이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게 용케도 어울려 있다. 이것이 바로 붕가붕가의 음악세계다. 물론 생판 다르다면 이렇게 섞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음악에 아교 구실을 하는 몇 가지는 분명히 있다.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작업을 좋아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은 것이 붕가붕가레코드의 노래들이다.”(p.215)
놀기를 잘 해야 조화로운 사람이 된다고 믿는 나로선, 약간 뻥을 튀기자면, 붕가붕가 멤버들이 놀 줄 모르는 이 사회에 균형추를 놓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그렇잖나. 우리는 너무 못 논다. 노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도 그렇고, 노는 것을 금기시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했다. 근면성실이 아니면 죄악으로 몰아버리는 이 근엄한 풍조. 미친 게지. 못 놀아서 지금 이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인게야!
그런 면에서 장기하의 공연에 대한 철학(!)은 선명하다. 그 선명한 철학은 역시 놀 줄 알기 때문에 고안할 수 있는 거다. '음악은 듣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엄숙한 풍조에서 이런 생각은 나올 수가없다. “장기하의 얘기처럼 음반이 들려주는 것이라면 공연은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붕가붕가레코드가 처음 공연을 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가져온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아주 괜찮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럴싸하다‘고 보여주는 것, 그리하여 관객에게 음반을 들을 때와는 다른 경험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p.250)
붕가붕가의 모토 또한 놀 줄 아는 자가 가져야할 덕목이 아닐까. “혼자 힘으로 사랑하자 + 혼자 힘으로 살아가자 = 혼자 힘으로 사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는 법을 배우거나 익히지 못하니, 악성 패거리문화가 생기고 힘 자랑이나 하게 된 거다. 혼자서 노는 법도 중요하다. 혼자 놀다가 재미 맞으면 둥둥 서로 손을 맞잡는 거고!
그래서 장기하와 얼굴들로 제대로 뜬 그들의 차후 행보가 마음을 잡았다. 그들에게도 아마 야심이나 야망 따윈 없으리라. 나를 움직인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야망 없음.' “온전하게 우리 힘으로 해낸 게 아닌 만큼, ‘장기하와 얼굴들’에 의존하지 말자. 다른 팀들에게 그 수준의 성공을 기대하는 건 애초에 그만두자. 당분간 초라한 자취방에 살더라도 자기 힘으로 관객을 모아나가자. 남이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다른 문을 두드려보자. 아니면, 아예 벽을 뚫고 문을 하나 새로 내자.”(p.83)
지금 대한민국의 음악시장, 아니 예능인들을 만들어내는 주류의 방식은 이런 거다. 소속의 하나가 제대로 떴다치면, 어디 줄을 대서 새끼를 자꾸 키워 세력을 확산시켜볼까, 공산품을 만드는 일에 전력해볼까. 포트폴리오 짠답시고, 비슷비슷한 애들로 돌려막기나 하는 거다. 고작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돈 벌 궁리에만 매몰된 주류의 방식에 비해 그들의 철학은 깔끔하다. 어디 뭐, 더 재미있는 일 없나.
이것이 붕가붕가를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요인은 아닐까. 많고 적음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놀 줄 아는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 “우리가 만드는 노래를 괜찮다고 들어주는 누군가가 지금은 한줌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적지 않은 숫자가 될 것이라는 바람. 취미로 음악 하는 대학생들이 한 줌 모여 있는 동아리 주제에 스스로 회사라고 주장하며 음악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나선 자뻑의 바탕에는 나름 이런 꿈이 있었다. 일단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이런 의미에서 김 기조는 붕가붕가레코드의 모토를 ‘혼자 힘으로 살아가자’로 정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자위라는 붕가붕가의 의미에 목매달고 있던 곰사장은 이를 잘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붕가붕가는 ‘혼자 힘으로 사랑하자’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붕가붕가레코드는, 시작했다.”(pp.54~55)
엄숙한 이들이 들으면 뜨악해 할 이름을, 버젓이 자신들의 레이블 이름으로 단 배짱도 재미있다. “‘붕가붕가 중창단’이라는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논란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2000년에 내 여자친구의 친구 되는 사람 자취방에 놀러갔다가 ‘붕가붕가’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었다. 그 단어가 애완동물의 자위를 의미한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오, 발음 좋네. 뜻 좋네. 붕가붕가 좋네. 우리의 자기 충족적이고 관객 의존적이지 않은 자발적 아방가르드 문화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단어인 것 같아."”(P.30)
그럼에도 그들은 이것을 단순히 인터넷상의 무의미한 유희로 치부하지 않는다. “주류 대중음악(일반적인 섹스)과 기존 인디음악(자위)의 중간 지점에 있는, ‘대중지향적 인디음악’이라는 조금은 모순적인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붕가붕가다.”(p.53) 자신들의 정체성과도 연결 지을 줄 알만큼 그들은 똑똑(?)하다.
지금은 놀 줄 아는 것이 혁명이다. 세상을 무력으로 전복하는 것은 과거지사. D.H.로렌스 시선집 《제대로 된 혁명》은 이리 말하고 있지 않은가.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 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책을 놓고 보자면, 붕가붕가의 행보는 획일이 아닌 깨는 것이었다.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것이었다. 웃고 즐겼으며 너무 진지하지도 않았다. 뭐든 재미로 해보자였다. 이제 혁명은 재미에서 나와줘야 생명력이 길 수 있다. 붕가붕가는 재미사냥은 제대로 과녁을 맞춘 것이다. 출발에서도 그 기운은 완연했던 셈이다. “‘붕가붕가 중창단’이라는 붉은 깃발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 학내 공연의 게스트에 불과하건만 마치 무대를 강탈한 혁명단 같은 모습이었다,”(p.32)
중요한 것은, 붕가붕가가 버티고 견뎠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예술 아닌가. 그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손, 단순히 딴따라로 치부할 건 없다. 무려 5년째, 그들은 버티고 있다. “남들이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아 잘나가지 못할 때,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지속가능을 위한 자질이다. 그걸 해낼 수 있는 게 반드시 용기와 근성만은 아닌 것 같다. 제3의 재능이랄까.”(pp.73~74)
망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이렇게 책까지 내서, 뭐든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증명해 줘서 고마웠다. 엄숙을 가장한 싼티가 판치고, 삽질만 할 줄 알고 놀 줄 모르는 이 엄한 시대에 붕가붕가도 숨통을 틔워주고 있으니까. 분별없는 열정이 판치는 시대에, 붕가붕가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그들은 키치가 아니다. 저렴한 것을 키치와 동일어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 “괴발개발에 엉성해서 저렴하게 보이는 것과 저렴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p.147) 이제 필요한 것은, 현금연대. 인디나 약자에게, 현금은 지속가능함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그들의 연대를 가능하게 하지 않던가. 논다는 것은 노동하고 일 하는 것만큼이나 신성하다. 그것도 제대로 놀아야 한다.
내게 책이 매혹적이었던 이유는, “스스로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대신하거나 소멸한다”는 것을 붕가붕가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 ‘굳이 남의 똥꼬 빨 필요 없이 저렇게 살면 되겠구나’하는, 다른 삶의 방식을 알려줬다. 스펙에 목매달지 않아도, 일보 전진을 위해 반보 후퇴를 하는 한이 있어도, 뭐라도 재미난 것을 해보면서도 살 수 있음을 들려줬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딴따라질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