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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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에 '여자친구'가 있다면, 나는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데 나는 세계의 끝이 어딘지 모른다. 물론 그것은 물리적 장소(성)만을 뜻하진 않으리라. '세계의 끝'이라는 어감은, 어쩐지 아득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맞닥뜨린 곳이, 아마도 세계의 끝이 아닐까. 다시 묻는다. 나는 궁지에 몰린,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김연수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그것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다. 여기에 실린 단편,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가 그렇다. 김연수는 용산을 말했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 동료들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내가 화면을 끌 때까지, 거기에는 타오르는 불꽃과 시커먼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침묵의 공간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 새벽, 거기서 여섯 명의 사람들이 불에 타 죽었다는 건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p.107)

그러니까, 지금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면서 갈 곳을 묻는 이들에게, 국가가 폭력으로 대답하는 시대. 김연수에게 용산(희생자들)이 그랬던 것은 아닐까. 세계의 끝에 내몰린 여자친구 같은 존재. 김연수는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것을 세계의 끝 여자친구로 표현한 것은 아녔을까.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 구절. 나를 울리기도 했던 이 편지글이 김연수(의 펜)를 추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내가 떠올린, 그날 새벽의 타오르던 붉은 불꽃과 시커멓게 피어나던 검은 연기와 아래에서 솟구치는 하얀 물줄기들에 대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읽게 된 편지의 구절들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빠에게"라는 구절로 시작해서 "아빠, 나는 아빠가 보고 싶어. 지금은 이 마음 하나뿐이야.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와 줘, 나는 아빠를 힘껏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거야. 떠나지 못하게 절대 놔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아빠한테 말할 거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2009년 1월 용산참사로 숨진 윤용헌씨의 장남 윤현구군이 쓴 편지 중에서)로 끝나는. 아까 내가 울었던 건 그 편지의 구절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얘기했다.”(p.114)

김연수는 자신이 당장 가닿을 수 없는 세계의 끝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썼을 것이다. 용산에 대해, 이 세계에 대해. 지금 우리에게 용산은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할 빚이 됐다. 국가권력이 어처구니 없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그 뒷수습은 우리의 것이 됐다. 그 시대도 따지고보면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던가. MB로 대변되는 패악과 몰염치를 잉태한 것은 우리다.  

2009년 1월20일, 용산은 그 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전자상가’로 대변되는 장소가 아니다. 살자고 외치던 이들이 죽었고, 그들은 아직 장례식도 치르지 못했으며, 국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국가는 국민을 지켜주는 것이 본디 의무이며 사명인줄 알았다. 우리가, 잘못 알았다!  

하지만 일상은 언제나처럼 우리의 의식을 잡아먹고, 용산이 기억 한켠에서 멀어질 즈음, 김연수의 글은, 뇌주름을 건드리고 있었다. 너,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부끄러웠다. 부아가 다시 치밀어올랐다. ‘케이케이’를 사랑했던 미국인 작가(「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처럼, 그랬다.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것들로 가득한, 좌충우돌의 도시’에서 떠나고 싶다. 지금 당장.” (p.20) 막장이 대세인 지금 이 땅, 세계의 끝에 내몰린 여자친구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 다시 책은 묻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고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친구, 그리고 세계의 끝. 필요한 것은 노력이다. 김연수는 그 노력으로 용산에 대한 글을 썼고,(그것이 성공적이든, 아니든) 나는 그것으로 환기받았다. 그 말에는, 꾹꾹 눌러 담은 작가의 흔적이 있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느꼈다. 김연수는 사랑했던 것이다. 직접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김연수는 그것을 실토하고 있었다.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p.32) “나는 숭례문의 그 불꽃에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았다.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p.317 ‘작가의 말’ 중에서)  

단편 사이로 난 길에는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관통하는 소극적인 이정표가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와 서사로 포장돼 있지만, 그는 우리 사는 세계의 연결성을 포획하고 있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의 '최'같은 또라이도 그렇다고 내팽개치진 않는다. 분명 편애는 있지만, 차별은 하지 않는다. 공명의 순간을 기다리는 예지자 같은 느낌도 있다. “각각의 삶은 하나씩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 연결돼 있으니,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더라도 결코 혼자가 아니다.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떨린다. 그 공명과 공감 속에서 예수 시절 이래의 ‘정의와 아름다움’이 이어져올 수 있었다.”(pp.294~295)

나는 '이해니, 오해니' 하는 말로 김연수를,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김연수가 공명의 순간을 바란다손, 책을 읽은 모두가 김연수의 마음과 같을 순 없다. 아마 100만부가 나간다손, 그 마음은 분명 100만개로 흩어질 것이다.  

책을 통해 누군가는 이것을, 다른 누군가는 저것을 획득하거나 채집하지 않았을까. 자기만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어떤 것. 살아가는 동안 셀 수 없이 맞닥뜨리는 오해와 이해의 외줄타기.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p.81)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나일 수도 있고,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바꿀지도 모른다. 아니 바꾼다기보다 영향을 미칠 것이다. 크든 작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흘러가던 이야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영향. 김연수도 그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한쌍의 연인이 1982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을 하다가 링에서 쓰러져 죽은 권투선수(고 김득구) 때문에 사랑했고,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빌딩 때문에 헤어졌듯(「달로 간 코미디언」).  

내 신경의 무심함을 건드린 김연수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 세계의 끝에 있는 여자친구를 위해 너는 무엇을 할 것이냐. 용산은 여전히 현재진형행이다. 계절이 네 번을 바뀌어 다시 그 계절로 왔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체감은 지난해와 또 다르다. 생각지도 않았던, 상상도 못했던 일이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됐고, 우리의 상처는 깊다.  

김연수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그의 고민을, 특히 용산에 대한, 드러냈고,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글쓰기)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화답해야 할까. 각자의 방식이 있겠지만, 우리도 여전히 그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 각자는 안드로메다와 지구 사이의 서로 맞닿을 수 없는 머나먼 생명체가 아니므로. “우리는 각자가 하나의 이야기들이고서로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별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각자 고독하게 달로 가지 않고 모두 함께 복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메리 올리버가 가르쳐준 대로 말이다. "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 그러는 동안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기러기」)”(p.313 해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중에서)

서로가 서로를 껴안을 때 우리는 어쩌면 행복해지는 존재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엄마의 품에서 안전함과 평화를 느낀 존재가 아니었던가. “불편한 자세로,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물에 젖었건 땀에 젖었건, 내가 사랑한 케이케이의 몸은 언제나 젖은 몸이었다. 나는 케이케이의 젖은 몸이 내 몸에 닿는 게 좋았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그 젖은 몸은 보통의 육체와 달랐다. 한없이 부드럽고 또 연약했다. 소년의 몸. 가만히 두면 물에 풀리는 물감처럼,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젖은 몸. 나는 그걸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한사코 케이케이에게 매달렸다. 내가 아는 행복이란 그런 것이었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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