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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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서울탐사기, ≪서울은 깊다≫를 읽고

서울이 시끄럽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 올해의 서울도 그렇다. 쇠고기에서 촉발된 촛불들의 행렬이 대표적이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서울은 언제나 그렇게 바람 잘 날 없는 도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모여든다. 오래 전부터 서울은 그랬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고도 했다. 속담의 뜻과는 무관하게, ‘서울’은 그렇게 가야할 곳이고, 보내야 할 곳이었다. 로마제국의 힘을 비유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를 지금-여기의 현실에 대입하자면,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가 될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들으면, 서운하고 얼토당토않은데다 버럭하겠지만, ‘서울민국’은 어쩌면, 지독하게도 현실이다.

‘유아독존의 수도.’ ≪서울은 깊다≫의 저자, 전우용은 서울을 그렇게 표현했다. 생존과 확장을 위해 농촌을 수탈해야만 했던 도시 중에서도 서울은 유별났다. “조선시대 내내 사실상 유일한 도시였고, 다른 도시의 발전 가능성을 봉쇄한 채 모든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면서 커나갔다.”(p28)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앞선 정권에서 ‘행정수도 이전’ ‘지역균형발전’ 등의 화두를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긴 했지만, 서울은 여전히 ‘식탐’ 많은 ‘식신’의 위치다. “서울은 한번 빨아들인 것은 사람이든 물질이든 되뱉지 않았다. 급기야는 스스로 자신의 중력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빅뱅’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 있다.”(p28~29)

숱한 사람과 물질을 빨아들였던 ‘서울’은, 그러나 자기만의 독자적인 기억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기억을 묻은 채 살아간다. 마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을 내팽개친 야심차고 야멸찬 드라마 주인공처럼. 누군가의 말마따나, 시간을 새기지 않는 괴벽을 지닌 도시 서울. 너무 많은 기억에 짓눌리면 과거의 잔재가 불길함을 야기할 수도 있지만, 서울은 심했다. 압축성장과 팽창일로는 기억과 사유의 능력을 박탈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장소를 모욕할 수는 있어도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는 법이다. 장소 위에 새겨진 역사는 누적될 뿐 대체되지는 않는다.”(p36~37) 기억이 침잠된 서울의 괴벽에 불평만 늘어놓던 시민이었던 나는, ‘서울은 깊다’는 주장에 솔깃했다. 지워지지 않은 흔적, 대체되지 않고 누적된 어떤 기억이 덧붙여진 서울. ‘인위적으로 조성된 계획 도시’(p52), 서울의 웅숭깊음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서울을 사랑할 수 있을 터. “기억하는 것만이 역사가 아니라 잊어버리는 것도 역사다.”(p185)

≪서울은 깊다≫는 서울의 속살을, 우리가 몰랐던 서울의 어떤 기억을 끄집어낸다.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즉위식이 열린 원구단(圓丘壇)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슬픈 상징으로 전락한 역사는 시청부근 호텔촌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역사는 묻힌 채 비즈니스만 횡행하는 풍경, 어쩐지 신자유주의가 집어삼킨 지금의 현실과도 겹친다. 덕수궁(경원궁)의 슬픔도 만만치 않다. 잔디(사초)는 당초 무덤에만 쓰던 풀이었는데, 일본은 이를 대한제국의 심장부였던 그곳에 건물을 헐고 잔디를 심었다. ‘거대한 무덤.’으로 만든 그들의 속셈.

물론 슬픈 역사만 있는 건 아니다. 재미난 팁도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면 연인들이 헤어진다는 속설은 대체 어떻게 유래된걸까. “여러 이야기가 있으나 내 생각에는 두 가지가 그나마 설득력이 있다. 하나는 1927년 이후 경성재판소(현 서울시립미술관)가 정동에 들어선 이래 이혼 소송이 이곳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배재학교 학생과 이화학교 학생들이 정동 입구로 나란히 걸어 들어가다가 정동교회 앞에서 헤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인’과 ‘이혼하기 위해 다투는 부부’는 분위기상 확연히 표시가 날 테니 뒤의 이야기가 더 사실에 근접한 것 같기도 하다.”(p205)

그리고 지금은 아늑하고 포근한 도심 속 산책로, 정동길. 그곳은 대한제국 시절, ‘천자의 나라이자 세계 속의 대한제국’임을 내세워 백성들에게 자존심을 심어주고자 한 의도가 있던 장소였다. 또한 지금이야 고전적이고 고즈넉한 모양새를 갖고 있지만, 이전은 그렇지 않았다. 외국 공관을 비롯해 근대식 건물의 집합소였다.

서울 남산에 한 자리를 차지한 와룡묘. 제갈공명을 모신 사당이 서울에 있는 이유 또한 이 책은 알려준다. 일본 제국주의가 남산기슭에 만든 일본인 최고의 충신을 모신 남산대신궁의 상징에 맞서는 한편 충성심 고취를 위한 고종의 ‘꼼수’였단다. 그러니까 현재 와룡묘가 있는 아래쪽에 남산대신궁이 있었다. “와룡묘는 왜인들이 서울 안에 만들어놓은 ‘그들만의 성소’를 바로 내리누르는 곳에 자리잡았다.”(p370)

≪서울은 깊다≫는 그렇게 흥미롭다. 개인의 경험에서 이야기를 확대하면서 깊은 서울을 전한다. 서울을 좀더 보듬을 수 있는 방법이다. 개인의 발견에서 비롯되는 세계 혹은 우주의 확대. 전 교수는 책 곳곳에 ‘상상력’을 동원했다며, 독자에게 한참 미안함을 토로했지만, 나는 외려 고맙다. 좀더 깊은 서울을 공유함으로써 상상력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은 넓고 깊어질 터이다. 서울이 더 깊고 넓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나 상상력이 아닐까.

사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상상하기를 멈췄다. 서울시에서 아무리 ‘천만상상 오아시스’라며 떠들어대도 우리는 알고 있다. 서울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고작 ‘뉴타운’뿐이었음을. 지난 총선에서도 확인하지 않았던가. “1980년대말 이후에 만들어진 ‘신도시’들은 ‘섞여살기’보다는 ‘따로 살기’를 원하는 주택 소비자들의 요구에 충실히 반영했다... 공간과 장소를 공유해본 경험을 갖지 못한 채 자란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까”(p56)

그렇게 “연대의식이 사라진 도시는 대립의 현장일 뿐 통합의 공간은 아니”(p57)었다. 서울이 그랬다. 그냥 외따로 떨어진 그들만의 제국이었지. 그런데 지금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광장이, 축제가 서울을 바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성급한 기대. 우리는 어쩌면 ‘쇠고기’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촛불이 하나씩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로 어울려 살기 위해 계급적 이익을 일부 유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p56)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다시 말하지만, 성급하고 성마른 기대다. 지금의 서울은 그때와 또 같지 않다.

정리하자면, 우리에게 서울은 무엇인가. 우리는 서울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우리의 서울은 안녕한 걸까. 서울의 속살을 좀더 알고 싶다면 ≪서울은 깊다≫는 충분히 유용하다. 책은 그렇게 서울에 발을 디딜 것을 권한다. 이 책의 미덕은 또 있다. 그곳이 꼭 서울이 아니라도 좋다. 발이 딛고 있는 땅을 좀더 깊이 파고들어가 보라고 속삭인다. 그 깊음에 놀라면서 우리의 세계는 넓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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