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대꿘'(대선)의 계절이야. '대꿘 is All Around'지. 물론, 재미 없다. 감동도 없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촉각은 그곳으로 향하기 마련이지. 과연. 그래서 대꿘 함 쥐어보려고 저 지랄들인가보군. 대꿘이 '남아대장부'의 로망? 남자라면, 힐러리처럼? 하하, 농담이야. '남아대장부' 따위의 근엄한 코멘트엔 코웃음 픽픽. 그래, 난 남아소장부다.^^; 대꿘은 언감생심. 취꿘이 어울릴 남아. 남아당자약!
 
명함이 무릅팍팍 늘어나. OO위원회, OO본부니, 알지? 대꿘용! 알던 양반들이 그렇게 새 명함을 돌려대. 타이틀 늘어난게지. 어제도 그랬어. 송년회 자리에 빠지면 안되지. 홍보홍보. 뭐 굳이 필요없는디, 새 명함을 건네 주시더군. 넙죽 받았지. 뭐 글타고 크게 거부감도 없어. 개의치 않는게지. 줄테면 주라지~ 걍 받고 말지~ 쨌든 퉁~

근데 그 대꿘. 크긴 크다. 그래서 소외 받고 있지. 바로, '인권'. 사실 한끗 차이인데. 어쩌다보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네. 완전히 묻힌 거 같애. 잘난 '대꿘' 덕분이지. 그래, 오늘 12일. 조영래 변호사의 17주기야. 그 이름이 낯설다면, <<전태일 평전>>. 알겠지? 수배생활 중 집필했던 이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첫 제목. 조영래 변호사는 알려준거야. 넓혀준거야. 이 세계의 어떤 작동원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어. 어른들도 알려주지 않았어. 전태일을. 그리고 노동자들의 핍박과 억압을. 그것이 또한 이 세계가 돌아가는 한 축임을. 몰랐었지. 그리고 놀랐지. 조영래 변호사는 그렇게 빨간약을 준거야. 나처럼 누군가는, 안게야.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전태일을, 혹은 세상의 한 단면을. 양심의 흔들림도 느끼기도 했겠지.
☞ 전태일,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은 그 사람...



맞아. 조영래 변호사는 이른바 '인권변호사'야. 근데, 웃기지 않아? 원래 변호사는 인권을 수호하는 직업군이었던거 아냐? 그게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거 아니었어? 그런 변호사 앞에 왜 '인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돼? 허허. 인권은 어느 때부터인가 변호사 몸뚱아리에서 빠져나왔나봐. 영혼이 빠진게지. '인권아~ 빠이빠이'했나봐. 인권이 라이프~ 얼마전 실형을 선고받은 우리 전인권 형은 잘 있으려나.^^;

그만큼 그는 독특한 위치였었지. 오늘날보다는 덜 자본과 몸을 섞었을 당시의 변호사 바닥에서도 말이야. 조영래 변호사는 약자 역시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려줬어. 쉽지 않았을거야. 그 당시 분위기로선. 그리고 약자를 위해 자신을 모든 것을 바치고 투쟁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알지? 조영래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도 치받았어. 공권력의 타락상을 폭로하고. 부도덕한 정권과도 정면승부를 택했던 검객.

12월1일부터 12일까지. 혼자 정해본 인권기간. 1일 세계에이즈의 날(감염인 인권의 날), 우리의 편견에 메스를 들이대고. 8일, 평화와 공존의 사절단, 존 레논이 구름의 저편에 다다른 날. 반전과 인권을 부르짖던 로맨티스트, 존의 'imagine'. 나도 바라고 있어. 천국도, 지옥도, 국가도, 종교분쟁도, 소유도, 배고픔도 없는. 오로지 우리 위에 하늘만 있어서,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사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하는 그런 세상. 바로, 존 레논이 'imagine'하던. 그 세상에선 전혀 인권이를 부를 필요가 없을테지. 그냥 녹아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10일. 세계인권선언일. 올해 59주년. UN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날. 내년이면 환갑인데, 너무 기력이 딸려. 그러면서 점점 빨라져. 노화가. 더구나 올해는 이가 빠졌어. 그것도 앞니가. 바로, '인권 콘서트'. 지난해까지 열여덟번째 행사를 가졌던. 그러면 드뎌 이 땅에 인권이 완성된 것? 이 행사가 열렸다는 건, 이 땅의 인권현실이 열악함을 방증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일리는 없고. 무슨 일일까. 아픈 걸까. 이젠 중병으로 진화된 걸까. 응급실에 나자빠진 것?

음 아마, 대꿘이 탓도 약간은 있겠지. 1989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으로 시작됐던 인권콘설. 12월10일 즈음이면 꼬박 찾아왔었는데. 행사를 주최하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홈페이지에 가도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자유게시판의 짧은 글 하나가, 아프다. "아직 소식이 없네요. 올해 인권콘서트 언제 하나요? 인권...아직 멀었는데... " 인권 현실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이 증발한 것일까. 혹시 유괴? <세븐 데이즈>의 김윤진을 불러라. 무죄를 만들어라. 정신없이 소중한 우리 박희순 오빠도 도와줘~

나는 작년에 이 행사가 없어졌음 좋겠다고 했어. 그러나 이런 식은 아냐아냐. 인권이 제대로 박혀있다면,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되지 않은 사회라면,이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제길 어케 된거야. 콘설 앞에 '인권'이라는 말을 붙여야할만큼 우리는 너무 많은 인권침해와 박탈 속에 살아가고 있었던건데... 아예, 포기한걸까, 인권. 후, 자신의 인권현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인권이도 지칠만해.

그날, 그러니까 그저께. 우연찮게 난 폭격을 맞았지. "나 사실은 에이즈야"라는 결정적 한마디. 그건,  연극 <뷰티풀 선데이>의 대사. 외로운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 '세계인권선언일'과는 전혀 상관없었어. 의도하지 않은 관람이었다규.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에 감동먹었어. 재미까지. 너에게 추천해줄께.
☞ 맞잡은 손이, AIDS를 예방한다

그건 그렇고. 대꿘이 삼켜버린 인권은 어디서 건져내야지? 수렁에서 내 딸은 건졌는데, 인권이는 도대체 어디서. 지금의 세밑 풍경은 그래서 우울해. 좀더 이 세계의 현실을 생각케 만들지 못해. 대꿘이의 방해공작 때문이겠지. 오늘, 우리만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자. 이랜드-뉴코아 조합원들, 몸을 불사른 동지를 잃었음에도 달라진 것 없다던 전기공 노동자들, 지자체의 폭력적 단속에 내몰린 노점상인, 2년여 거리 투쟁을 하고 있는 KTX의 씩씩한 언니들, 자꾸만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의 신분, 비정규직, 그리고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

그건 곧 우리야. 울림은 때론 흐느낌. 계속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할텐데. 소수자와 약자들의 인권을 향한 노래를, 우리의 양심에 호소하는 이야기에. 나도 때론 두려워. 휙~하고 휩쓸릴까봐. 그래서 이런 발악이라도 하는지도 모르지. 그래, 당신이나 나나, 약간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세계의 인권과 약자들을 생각해보자규. 인간으로서의 내 권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인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 그 인권.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님에도 세계는 점점 더 엄혹해져. 많은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계급성을 배반하고. '대꿘'이 불알만 만져대. '대꿘'이는 밀접해야 할 인권이와 그닥 친하질 않아. 어쩌다 이름이 불려도 찬바람 휘잉~ 지금 대꿘이는 경제, 아니 정확하게는 '자본'과 아삼육인거 같애. 계는 없고, 색만 있어.ㅋ

마흔 셋의 나이에 눈을 감은 조영래 변호사. 과거 인권탄압을 고발했던 그는,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이야길 들려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사실, 몸이 힘드네. 헥헥. 머리도 안 돌아. 역시 한해를 보내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아.^^; 뭐긴 뭐겠어. 술술. 역시, 환락의 밤은 짧고 숙취의 낮은 길어. 역시 난 취꿘이 어울려. ^^;;;;;;;;;;;;;;;;;;
  
글고, 아직 술독이 남아있는 것을 빌어,
대꿘, 특히 인권과 가장 거리가 먼 작자에게 한마디.
                   
조까라마이싱!
캠프에서 엉뚱한 전화질 하지 마라. 짱난다, 이 계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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