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달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이었다.
14년째를 맞은 이 날, 지구촌 곳곳에서는 '빈곤에 반대하는 지구적 호소(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 GCAP)' 캠페인이 진행됐다. 한국에서도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행사가 열렸고, 빈곤에 대한 관심 촉구를 위한 '화이트밴드 콘서트'도 열렸다. 이 화이트밴드는, 뜻을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흰 띠(White band)'를 착용해 빈곤 퇴치를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빈곤은 그렇듯, 더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수사가, 빈곤 문제의 부각을 막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나의 문제는 영원히, 아닐까. 그저 남의 문제라고 덮으면 될까. 나는 묻는다.

다수빈국과 소수부국의 불균형.
알다시피, 빈곤은 심화되고 있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소수의 부자는 다수의 빈자를 착취하고, 이를 국가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다. 그렇다면 빈곤에 대한 관심은? 미디어를 통해 빈곤국이나 기아국에 구호물자 등이 수송되는 것을 본 것이 다는 아닐까. 나는 그렇게 안도했던 것 같다. '국제기구나 부자 나라에서 저들을 도와주고 있구나, 다행이다.' 그것으로 나의 죄의식은 봉합된다. 그 구호품이 어떻게 그들에게 전달되고 소비되는지, 알 생각도 없었다. '저것으로 충분하겠지', 하고 여겼다. 그저 워낙 일상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해서일까. '함께 사는 길'을, '세계의 불균형'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지지 못한 불찰.  

빈곤은 바로 우리의 문제 아닌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그래서 좀더 정밀한 진단을 내려준다. 빈곤은, 기아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자기가 속한 작은 우주에 대한 질문 자체임을. 사실, 쉽지 않은 문제다. 이 팍팍하고 비열한 세계에서,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는, 의외로 힘이 세다. 남의 빈곤까지 생각해볼 여력이 많지 않다. 그래도, 이 책은 말한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보라고. UN식량 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는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를 쉽게 풀어낸다. 나와 관련없다고 치부하지만, 언제 내 자신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이 곳은 우리가 함께 발 붙이고 있는 지구의,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의 문제라고. 그는 나지막하게 건넨다. 기아의 진실을. 물론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들이 귀찮다고 하는 사람을 그렇게 타박할 문제만은 아니다. 소수를 제외한 평범한 개인의 일상과 삶은 이미 어찌할 도리없이 숭악한 자본의 질서에 편입돼 죽지 않을정도로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정신의 빈곤. 

장 지글러는, 묻는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8억5000만명이 굶주림에 스러진다. 미국의 생산가능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도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이들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 참으로 불합리하고 흉포한 세계질서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인 어린이들이 구조적 부조리에서 제일 먼저 당하게 되는 이 현실. 미디어에 나온 구호물품으로 당신의 죄의식을 씻지 말 것을 권한다. 실제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의 빈민은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고 있음을 장 지글러는, 폭로한다. 그걸, 몰랐냐고? 그렇다면, 그 쓰레기 생산에 일조하는 우리는, 괴물인가, 인간인가.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히는 아이들'은, 우리의 쓰레기가 만들어낸 악몽이자, 비극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비극.

'밥은 먹고 다니냐",
고 묻던 (송)강호(<살인의 추억>)의 말은 그저 허튼 농담이 아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으로 물질적인 결핍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지만,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는 생명들은 아직 여전하다. 아니 굶주림은 더 심화되고 있다. 장 지글러는, 말한다.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충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빈곤은 세습되고 배고픔의 저주는 대물림된다는 사실. 끔찍하지 않은가. 국제기구, 구호단체의 손길에 모든 것을 내맡긴 채 팔짱을 끼고 있던 사이, 저주는 확산됐다.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다는 말, 너무 이상적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밥은, 곧 생명.

테러, 전쟁, 그리고 다국적기업. 
나는 이 책을 통해, 테러와 전쟁, 그리고 다국적기업이 착취하는 기아와 빈곤의 구조를 좀더 명확하게 알게됐다. 그들은 기아를 무기로 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혹은 경제적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밀로셰비치, 투라비, 테일러, 그리고 미국 등을 비롯, 네슬레의 흉악함. 그리고 북한 역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 또한 나날이 심해지는 사막화와 삼림파괴, 환경오염 등은 빈곤에 대처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점점 좁히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전세계적인 식량위기를 마주대하는 건 아닐까. 풍요의 종말.

그러면 희망은, 대안은? 
장 지글러는, 한 사람의 사례를 든다. Power Of One. 서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나라,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토마스 상카라. 깨어있는 개혁가였던 상카라의 눈부신 조치는 아프리카 대륙의 귀감이 됐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검은 커넥션에 의해 최후를 맞았다. 희망은 깨지고 비극은 반복되는 세계. 상카라의 방식은 맞았다. 자급자족과 식량공급의 확대의 충분조건에는 역시 사회정의의 확립이 있어야 한다. 기아와 빈곤에 눈감고 귀막고 입닫은 현실에서, 우리의 행동이 필요함을. 장 지글러는, 아들에게 세상을 뒤엎으라고 말한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아이에게 혁명할 것을 권하는 아버지? 그러나 장 지글러는 그것이 진정 아들을 위한 것임을 아는 것 같다.

야만적인 미디어들.
'지금-여기'의 대다수 주류 미디어들은 기아나 빈곤 문제에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빈곤 앞에 '악' 소리 제대로 내지 못한채 스러지는 빈자들의 아우성에 미디어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빈곤은 너무도 익숙한 의제라서? 나서봐야 별 볼 일없다는 판단 때문에? 돈이 안돼서?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미디어의 해악은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기아와 빈곤을 부추기는 작자들과 다를 바도 없다. 부자 되는 법 설파를 멈추고, 빈곤한 자들의 아우성과 빈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주면 안될까. 하긴, 바보 같은 바람.

물론 그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나도 충분히 안다. 그러나, 학교도, 미디어도 이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건 아닐까. 빈곤이나 기아의 원인과 결과는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데, 왜 그들은 침묵할까. 미디어나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괴리된 인간애나 정서만 가질 뿐, 그 구조적인 원인과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아닐까. 당신들의 잘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이 빈곤을 심화시키고 세습시키는지, 대안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단 한사람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고민하게끔 만들면 좋지 않겠나. 빈곤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지만, 한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되새긴다.
'좌파 낭만의 스토리텔러' '결핍된 계급의식의 저격수', 켄 로치 감독의 일갈을.

   
  "희망은 없다. 정치가와 경제인은 대개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일자리를 뺏고, 헐값으로 대체 노동력을 산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아니 신봉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빈곤과 기아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활로. 장 지글러 역시 이에 동조한다.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빙고. 이 책의 미덕은, 마음의 기아로부터 우선 탈피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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