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에쿠니 가오리 지음, 소담출판사 펴냄, 2004).
처음 제목과 마주 대했을 때 어떤 의미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주말이 몇 개라고 묻다니. 일주일에 한번 있는 주말도 감지덕지, 부둥켜안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마당에, 몇 개냐니, 몇 개냐니. 놀리냐, 놀리냐, 이렇게 되레 묻고 싶다. 물론, 에쿠니 가오리의 주말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인다.

우연히 받은 선물이다.
선물 준 사람은 가벼운 책을 골랐단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건조함’을 좋아하는 나로선, 나쁘지 않다. 아니, 감지덕지. 아~싸 가오리~ 외쳐야 할 판이다. 더구나 처음 접하는 가오리의 에세이. 어떨까? 소설과 다른가? 그 건조함은 여전해? 에세이 주제가 결혼생활 행간이라. 그의 소설 속 결혼은 당최 환상이라곤 없었으니. 이른바 ‘정상성’이라는 그닥 동의하지 않는 통념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내가 접한) 가오리 소설 속 결혼이야기. 다른 사람의 결혼(사)생활엔 관심 없지만, 괜한 호기심이 일더라. 그의 결혼(이야기)는 뭔가 다르리라? 자신의 결혼생활은 소설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론은 아니. 별 차이 없다.
최소한 그가 내뱉은 결혼의 일상은 (내가 아는) 여느 결혼과 그닥 다르지 않더라. 다만 그는 명쾌하면서도, 답이 없다. 그가 말하는 결혼은 ‘옳다 그르다’도 아니고, ‘좋다 나쁘다’도 아냐. 그저 일상에서 길어 올린 감정을 덤덤하게, 혹은 건조한 문체 속에서도 애끓도록 묘사하더라. 왔다리 갔다리. 그는 수시로 변덕을 오간다. “결혼하고서 생활에 색이 입혀졌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결혼은 야만” 혹은 “결혼은 struggle”이라고 툭 내던진다. 그래, 그게 사람살이지. 그래서, 냉정과 열정사이.

이거 정신병 아냐?
그래, 그는 툭 내던진다. “애정이란 병의 한 종류라고 생각한다. 애정이 있기에 모든 것이 골치 아파진다.” 역시 병이다. 그는 결혼이 아닌, 한 남자에 대한 애정(병)을 담는다. 물론 자기애를 기반으로 한. 그 애정이 일상과 뒤섞인 ‘결혼’이란 어떤 형태. 제도보다는 약간 친근한. 반짝반짝 빛나는. 그러면서도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결혼을 않은(못한?) 나로선,
(결혼에 대한) 환상 또한 거의 없다고 내뱉곤 하는 나로선, 그의 결혼 감상기가 흥미롭다. ‘외간 여자’도, ‘외간 남자’도 아니다. ‘외간 결혼’을 만나본 셈이랄까. 하지만, 난 결혼도 안(못)했는 걸.^^; 그는 결혼에 대해,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뭐 당연하다. 그저 담담한 감상을 흩뿌린 에세이니까. 그러면서도 위험하다. 이 에세이는 심기도 하고, 깨기도 한다. 결혼에 대한 환상을. 한마디로, 외줄타기. 결혼은, 미친 짓일 수도 있고, 행복한 짓일 수도 있지. 어쩌면 광우병 위험 부위 같은 것이거나 유기농 음식 같은 것. 마음의 작용, 그리고 일상과의 접목. 일곱 빛깔 사랑.

나는 어쨌든, ‘풍경’이란 챕터의 이야기들이 인상 깊다.
다른 풍경이기에 더욱 좋다는. 십분 공감할만하지. 그건 사람살이에 대한 일종의 통찰이지.
“그 렇게 오늘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나는 남편을 타인으로 의식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바로, 웨하스 의자.

부부가 ‘일심동체’라거나,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한다’,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나는 믿지도 않거니와,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변치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 맹세도 탐탁찮고. 물론 한 순간만큼은 진심임을 믿지만.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 서로의 세계를 넓히면 것으로 충분하지, 무슨. 이심이체, 빙고. 세계는 그런 이해와 오해의 과정 혹은 정반합을 거치면서 넓어진다. 나의 작은 새.

가을이다.
결혼하기 좋은 계절? 진짜? 난 몰라. 그건 당사자 입장에서 내뱉은 말일 테고. 하객은 축의금 뺏기는 계절. 그래도 당신이 즐겁다면 기꺼이 내 줄 순 있지. 대신 밥이나 잘 내주쇼. 그리고, 결혼식장과 피로연이 끝나고 나오면, 낙하하는 저녁.

알코올 중독자의 알코올처럼,
알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음식물을, ‘devil food’라고 알려주던 가오리는 결국 “남편은 아마도 나의 ‘devil person’이리라”고 전한다. 흠, 그것도 재밌네. 나쁜 걸 알면서도 멀리할 수 없는 사람? 아니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악마의 유혹?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해!

에쿠니는, 나는, 묻는다.
당신에게 ‘devil person’은 누구지?
아니면, 당신의 ‘devil person’은 몇 명입니까?
완전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지만, ‘devil person’은 프라다를 입을까?

그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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