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을 읽다가 전율이 오는 경우는 

최근 나오미 클레인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이후에 처음이다.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영어로 된 한 문장을 읽고 감전된 것처럼 무릎을 치다가,

의미가 좀 모호할 때는 번역된 문장을 보고,

번역된 문장으로 몇 줄 읽다가 다시 영어로 된 문장을 찾아보고,

한 단락이나 한 페이지가 끝날 즈음에는 

다시 오더블(audible)을 켜고 기개 넘치는 내레이터와 입을 맞춰

큰 소리로 낭독을 한다.


문장 하나에 소환된 나의 옛 기억들은

다시 또 다른 글쓰기의 소재로 공책 한 바닥을 메우고,

스크리브너(Scrivener) 도큐먼트에 쌓이고,

오늘 아침 골목길에서 광속으로 질주하며

길을 건너는 내게 쌍욕을 퍼부은 낯선 남자에 대한 단상에 주석을 추가한다.


끝을 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나의 역사, 나의 경험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통해 내가 가닿을 지점인 것 같다.


옮긴이 이정순은 보부아르가 ‘나에게 여자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사적 고백록’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여성 조건’의 연구하는 것으로 전환된 것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그녀의 엄청난 노작에 감사하면서도

보부아르의 사적 고백도 이 정도의 깊이라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보부아르는 말한다. 어떤 편견 없이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자신이 택한 관점을 먼저 밝힌다. 실존주의 윤리관.

이를 통해 여자라는 사실이 우리의 삶의 어떤 면에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가능성이 부여되었고, 어떤 가능성이 거부되었는지, 우리 다음 세대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어떤 방향을 가리켜야 하는지.


How will the fact of being women have affected our lives? What precise opportunities have been given us, and which ones have been denied? What destiny awaits our younger sisters, and in which direction should we point them? But it is no doubt impossible to approach any human problem without partiality.


The perspective we have adopted is one of existentialist morality.

Every subject posits itself as a transcendence concretely, through projects; it accomplishes its freedom only by perpetual surpassing toward other freedoms; there is no other justification for present existence than its expansion toward an indefinitely open future.


Every time transcendence lapses into immanence, there is degradation of existence into “in-itself,” of freedom into facticity; this fall is a moral fault if the subject consents to it; if this fall is inflicted on the subject, it takes the form of frustration and oppression; in both cases it is an absolute evil. Every individual concerned with justifying his existence experience his existence as an indefinite need to transcend himself.


Woman’s drama lies in this conflict between the fundamental claim of every subject, which always posit itself as essential, and the demands of a situation that constitutes her as inessential.


그간 남성들이 쓴 과거에 기반해 여성들이 열등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유대인이나 흑인처럼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착취 당했는지, 

어떻게 그런 ‘공모’가 가능했는지 남은 900여 페이지에서 밝힐 것이다.


그녀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What is a woman?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쪼갰다.

How, in the feminine condition, can a human being accomplish herself? 

What path are open to her? Which ones lead to dead ends? 

How can she find independence within dependence? 

What circumstances limit women’s freedom and can she overcome them?


위대한 질문은 위대한 여정을 출발시킨다. 

얼마나 걸릴지 모를 출항을 시작한다.



여성, 시몬 드 보부아르,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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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0-04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항해가 될 것입니다. 즐기소서!

나뭇잎처럼 2021-10-04 20:52   좋아요 1 | URL
멋진 항해에 즐거운 벗이 되어 주시길 ^^ 공쟝쟝님 리뷰 읽고 벌써 반했지만요. ㅎㅎ

다락방 2021-10-04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영어본과 함께 하시는군요!!! >.<

막시무스 2021-10-04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발부터 파도가 만만치 않은것 같지만 끝까지 함께 완독하시죠!ㅎ 응원할께요!ㅎ

나뭇잎처럼 2021-10-04 22: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느낌이 드니까 좀 힘이 납니다. 다 다락방님 덕분이죠 ㅎㅎ 저도 막시무스님 응원할게요. 서문에서부터 뭔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죠? 막시무스님 글에서 딱 느꼈어요. 그거, 바로 그거! 하면서요. ㅎㅎㅎ

막시무스 2021-10-04 22:07   좋아요 0 | URL
한글로 한번, 영어로 한번! 두번이나 맞았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