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Paperback)
밀란 쿤데라 지음 / HarperPerennial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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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개가 웃어!“


우리 무명이를 보는 사람들의 낯설지 않은 반응이다.

무명이는 정말 웃는다. 


순수한 열정으로 테니스 공을 쫒아 달려가서는 내 앞에 툭, 떨구고 다시 던져달라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그 어처구니 없는 환한 미소에 완벽하게 무장해제된다.


마음껏 달릴 수 없는 집안에서는 공놀이 몇 번에 금방 시들해지곤 하지만, 경계 없는 잔디밭에선 풀어놓은 말처럼 뛸 때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 그대로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질 때까지 놀아도 지치지 않는다. 똑같이 웃는다. 바람에 실린 꽃향기를 맡느라 잠시 하늘을 향해 코를 킁킁 거리기도 하고, 애써 가져온 공을 친구가 뺏어가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너무 뛰어서 숨이 찰 때는 잠시 혀를 내밀고 숨을 고르기도 하지만, 공놀이만큼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아, 있다. 고기. 고기라면 공 따위는 던져버리고 고기 앞으로 가, 가 되는구나. 하지만 고기 조차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람이다. 함께 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고기 따위도 안중에 없다. 한창 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자신도 놀아야 하는 우리 무명이는 고기로 유인해도 꿈쩍하지 않는다. 고기보다 좋은 게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거라나? 순서로 치면 공 > 고기 > 사람인 셈이다. 정확히 말하면 함께하고 싶은 사람. 무명이는 그렇게 견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대로 행동한다. 


인간만이 사랑의 의미를 두고 갑론일박을 벌인다.


그리고 저들의 생각으로 동물의 생각을 읽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철학자와 늑대>의 저자 마크 롤랜즈는 인간은 시간을 직선으로 파악하고 개(또는 늑대)는 일직선이 아닌 원을 그린다고 추측한다. 우리는 시간의 화살에 매이길 거부하며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며 행복을 바라지만 늑대는 각 순간들이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본다고 가정한다. 브레닌(그가 개인 줄 알고 입양한 늑대)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그저 관찰한 것으로 추론할 뿐이다. 거기에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이 등장하고, 니체의 영원회귀를 소설의 도입부에 떡 하니 가져다 놓은 쿤데라가 연결된다. 그리고 쿤데라에게 명성과 부를 안겨준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마지막 장은 ‘카레닌의 미소’다. (카레닌은 남자 주인공 토마스가 자신에 대한 사랑 또는 집착을 희석시킬 요량으로 테레사에게 선물한 개. 테레사는 그에게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때 그녀가 들고 있던 책 <안나 카레니나>의 ‘카레니나’에서 따온 이름을 붙이고 싶어하지만 토마스는 그렇게 생긴 개에게, 여자 이름을 붙일 수 없다며 카레니나의 남편 성을 따라 ‘카레닌’으로 명명할 것을 주장한다.) 


자신의 약함으로 자신보다 강한 토마스를 길들이고, 테레사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감정을 감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생각했던 토마스는 끊임없이 다른 여자와 관계한다. 네 명의 남녀가 사랑을 둘러싼 끊없는 모험을 펼치고 난 후 그들은 카레닌과 똑같이 평등하게 맞이하는 건 결국 죽음이다. 그리고 그들이 펼친 사랑이라는 모험은 테레사와 카레닌, 정확히 말하면 카레닌이 테레사를 향한 사랑 앞에서 다들 조금씩 모자라 보인다. 결국 완전한 사랑이란 복잡한 감정과 생각, 계산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개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가. 나는 모른다. 카레닌에게 물어보지 않았으니. 다만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서도 테레사를 보고 미소지을 수 있는 카레닌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질 뿐이다. 


“브레닌은 나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계산이 실패할 때 남는 내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좌절되고, 거짓으로 지껄이던 말들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을 때 말이다. 결국 끝에 가서는 철저하게 운만 남는다. 그리고 신들은 운을 주었을 때처럼 언제든지 앗아 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운마저도 다했을 때 남겨질 나 자신이다.”

- <철학자와 늑대> 중에서 


자발적 실종을 선택한 작가 쿤데라의 영면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다. 29년생, 94세가 훌쩍 넘은 나이일텐데, 건강과 안부가 궁금하다. 평생 도청과 감시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선택한 망명,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으나 비교적 최근에 이뤄진 국적 회복, 프랑스 문화 권력과 애증의 관계, 작은 언어를 쓰는 나라의 사람으로써 큰 언어를 쓰는 나라의 언어로 세계 독자와 만난 그가 보여주었던 거대한 문학의 세계.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을 독일어로 썼다. 쿤데라는 체코어로 쓰다가 나중에는 프랑스어로 발표하기도 했다.(그것이 화근이 되긴 했지만) 그리고 자신의 검수를 거치지 않은 번역본에 대해 선을 그었다. 번역에 의해 그의 문체는 장중한 바로크체에서 간결한 미니멀리즘을 오고갔기 때문이다. 


그런 우여곡절 많은 그의 글을 영어로 읽었다. 체코어나 프랑스어를 읽고 쓰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솔직히 수십 년 전 읽었던 한글본과 너무 다른 소설이었다. (내가 달라진 건가?) 영어가 가진 간결함이 그의 문체와 제법 어울리는 듯했다. 뭔가 말단 부분이 깎여나간 메타 언어로서의 번역 언어가 주는 중간지대 느낌이 오히려 편했다고 할까. 과연 내가 과거에 읽은 그 책이 이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몰입해서, 열광하면서, 무릎을 치며 읽었다. (읽기 쉬워서 그랬나?) 프랑스어로 읽으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영어공부도 힘든데 프랑스어까지는 좀… 작작하라며 스스로를 말렸다. 잠깐만…. 영어 좀 수월해지고 나면, 그러고도 힘이 남아있으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궁금해지면 그때 만나자. 


오늘 아침 신나게 공놀이하고 온 무명이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천사처럼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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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To Wigan Pier (Paperback)
George Orwell / Repro Books Limited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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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계급에서 태어나 노동자 계급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조지 오웰이 탄광촌의 실상 취재 청탁을 받아 시작한 글이다. 5년 동안 식민지에서 점령국의 경찰 생활을 하면서 (지독히도 싫어하는 일을 견디면서) 빼앗긴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각성은 영국 전체를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 계급의식, 다른 계급에 대한 적대감에 대해 더, 더 깊이 들어가도록 추동했던 모양이다. 뭐,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한 침대에 성인들이 구겨져 잠을 청하고, 임산부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매번 골목 끝까지 돌아서 가야 하는 집, 탐욕스러운 집주인들이 밑바닥 계급 사람들에게 내놓은 집을 구석구석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그의 모습에 ‘집요함’과 ‘근성’은 물론, 부랑자들이 머무는 숙소에 위장 잠입하면서 그들에게 두들겨 맞지 않을까 걱정했던 자신의 품에 술 취한 누군가 ‘차 한 잔’ 하라며 쓰러지는 모습에 무장해제당하는 모습은 지극히 연민이 가득한 ‘인간’으로 느껴진다.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적대감의 시작이 냄새에서 시작되고, 그 냄새의 원인을 주관적인 감상이 아니라 실체적인 근거를 찾기 위해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은 책상에 앉아 책으로 계급의식을 상상하고, 소파에 앉아 불평등 문제를 논하는 ‘Parlour Bolsheviks’들을 움찔하게 하는 힘이 있다.

If I want real contact with him, I have got to make an effort for which very likely I am unprepared. I have got to suppress not merely my private snobbishness, but most of my other tastes and prejudices as well.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광대한 이해력을 요구한다.
자아가 강하고, 가진 원칙이 강할수록,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지식과 뿌리 깊은 퍼셉션이 강할 수록,
그 벽을 깨고 나오기란 우주를 접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미처 자신이 준비되지도 않았다는 불안감과 의심마저 극복하면서,
발바닥으로, 손바닥으로, 온몸으로 한 줄 한 줄 남긴 그의 기록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건 티켓 검수원 얼굴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기차 여행을 거부하는 것처럼 얼척 없다고 하는 건 타고난 유머 감각인가?

To recoil from Socialism because so many individual socialists are inferior people is as absurd as refusing to travel by train because you dislike the ticket-collector’s face.

기계화의 함정을 알면서도 기계화를 거부하는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보았던 그의 생각에서
기술사회에 대한 생각의 단초를 얻는다. 좀 대충 읽었던 <1984>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직 읽지 않은 <멋진 신세계>를 찬찬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HE LIKED WIGAN VERY MUCH - THE PEOPLE, NOT THE SCENERY.

가장 맘에 들었던 문장.





노동자, 사회주의,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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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3-01-01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펭귄보다 표지가 더 주제를 잘 드러내는 느낌이에요. ㅎㅎㅎ

나뭇잎처럼 2023-01-01 17:41   좋아요 1 | URL
아 새해 맞아 잘해보려고 서재 정리하다가 리베카 솔닛 관련 글을 실수로 모두 삭제하고 말았어요. 이건 원복하는 방법 없겠쥬? ㅜㅜ 하.. 예전에 그냥 생각 없이 읽었던 책, 마치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드는 책, 읽으려고 벼르다가 결국 못 읽고 만 책... 올해는 고런 책들 위주로 함 읽어보려고요. ^^ 글게요. 저도 저 선명한 빨간색에 끌려서 뽑았다지 말입니다. 풍경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행. 아아주 먼 기억처럼 느껴지네요. 덕분에 잉글랜드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느낌이 들었답니다. 퍼르소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ersona 2023-01-01 17:42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ersona 2023-01-01 17:43   좋아요 1 | URL
아고 아까워서 어째요. ㅠㅠ

나뭇잎처럼 2023-01-01 19:31   좋아요 1 | URL
새해가 되었으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라는 뜻으로 삼으려고요. ㅋㅋ ㅜㅜ 새해에도 열독하시길요^^

persona 2023-01-01 20:04   좋아요 1 | URL
파이팅이요! 새해에는 그만큼, 아니 더 좋은 글들 많이 쓰실 거에요! 기다릴게요! 좋은 책들 많이 만나세요!
 
싯다르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3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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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월요일

일주일에 한 번 사우나가 쉬는 날이다.

새로 산 목욕바구니 달랑거리며 갔다가 헛걸음치고 와서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병이 있어

욕조 안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두께의 책을 찾다가

여러 번 이사에도 방출당하지 않고 남아있던 <싯다르타>를 발견하곤 

이거다 싶어 반갑게 들고 들어갔다.


헤세 책은 남은 게 하나도 없는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 때 문예반 모집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이런 저런 걸 묻는 면접에서 <데미안>을 읽었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읽었다고 (중학교 1학년 때) 대답했고,

몇 번 읽었냐는 물음에 (네?)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게 결격 사유였다.


아. 그런 책은 세 번 이상 읽어야 문예반에 들어가는구나.


흥,칫,뽕


뭐 그리 대단한 책도 아닌데.

중학교 때나 읽지 대학교 와서 헤세 읽는 사람은 못 봤던 것 같고.

더구나 성인이 되어서 헤세를 읽는 건 별로 상상을 하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어느 날 우연히 정말 충동적으로 구매한 후에,

첫 장 한 장 들춰보지 않고 몇 년을 책장에서 묵었던 책이다.

늘 새로운 책들이 쏟아졌고,

읽는 속도는 사는 속도를 결코 이긴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사놓고 손도 대지 않고 주기적 방출에 실려나간 책이 어디 한 둘인가.


하지만 욕조에서 손에 쥐기 좋다는 이유로

어찌어찌하여 살아남은 <싯다르타>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출근하지 않게 된 이후로

마음의 공허감이 메워지지 않았던 탓일까.

삶의 쳇바퀴 아래서 미뤄두고 나중을 기약하며 외면했던 문제들이

이제사 마음껏 물을 만난 고기처럼 퍼덕거리는 까닭일까.

자꾸만 예전에 잘 보지 않던 책들이 손에 잡힌다.


음식이 그러하듯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이 보약이듯

내가 원할 때 찾게 되는 책이 결국은 인생책이 되기 마련이다.

읽어야 해서 읽는 책만큼 재미없는 책이 있던가.

봐야 해서 봐야 하는 영화만큼 고역인 게 있던가.


작년인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왈칵 눈물이 났다.

그 책이 나온 이십여 년 전 그 책을 읽었더라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느 순간 우연을 가장한 운명처럼 내게 오는 책이 있다.

이번엔 <싯다르타>가 그랬던 것 같다.


그는 고타마에게 부처, 그분의 보화와 신비는 가르침이 아니라 그가 깨달음의 순간에 체험한 형언할 수 없고 가르칠 수 없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 바로 그것을 체험하고자 그는 길을 떠났으며, 막 그것을 체험하기 시작한 터였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을 체험해야 했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이 아트만이며, 브라만과 똑같이 영원한 본질에서 생겨났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유의 그물로 자신을 붙잡으려 했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육신도 분명 자기 자신이 아니었고 감각의 유희도 자기 자신이 아니었으며, 마찬가지로 사색, 오성, 습득한 지혜, 결론을 도출하고 이미 생각한 것에서 다른 생각을 자아내는 학습된 능력 역시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그렇다. 이 사색의 세계 또한 여전히 차안의 세계에 있었고, 감각이라는 우연적인 자아를 죽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유와 학습이라는 우연적인 자아를 살찌운다 한들 얻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감각과 사유, 이 두 가지는 모두 좋은 것이었으며 그 배후에는 궁극적인 의미가 숨어 있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모두 귀기울여 들어볼 가치가 있고, 함께 작용해야 했으며, 그 어느 것도 경시되어서는 안 되고 과대평가되어서도 안 되며, 두 가지 모두에게서 가장 내밀한 진리의 비밀스러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깨달음은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하고 있다.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불성에 닿는 일은 자신이라는 재료, 인생이라는 시간, 경험이라는 통로를 통해 자각, 스스로 깨우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걸. 


새로 시작하면서 스스로 다짐한 몇 가지가 있다.


- 남들이 일해라, 절해라 하는 걸 귀담아 듣지 않기

- 몸의 감각을 우선할 것. 책으로 먼저 배우지 말 것

- 안다고 느껴지는 느낌을 경계할 것. 아는 것 같은 착각에 쉽게 굴복하지 말 것.

- 다.시.는. (안다고 떠드는 이들한테) 말리지 말 것.

- 무턱대고 따라하지 말 것.

- 내면의 불안을 응시할 것.

- 막막해지는 순간을 기꺼이 껴안을 것.

- 기쁨으로 넘실거리는 일에 몰두할 것.

- 해야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할 것. 

- 적당히 읽을 것.


인생은 두 번 살게 되는 것 같다.

한 번은 배운대로. 한 번은 살고 싶은 대로.


싯다르타도 사문이 되기 위해 집을 나서지만 늙은 스승 밑에서 배우다가

결국 자신의 길을 떠나고, 고타마를 만나지만 그의 밑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온전히 던져 배우는 길을 택한다.


욕망과 탐욕과 환희를 모두 경험한 후에야 

도반이자 스승이자 벗인 뱃사공을 만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는다.

그리고 강물을 통해 배우고 경험하고 깨닫는다.


싯다르트가 말했다. "어쩌면 당신은 깨달음을 구하는 데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요? 구도에 너무 전념한 나머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째서 그렇다는 건가요?" 고빈다가 물었다.

"구도하는 사람이 흔히 겪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의 눈은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되고, 그래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며 아무것도 마음속에 들이지 못하는 법이죠. 늘 자신이 축구하는 것만 생각하고, 하나의 목표를 정해놓고는 그 목표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찾아낸다는 것은 자유로운 상태, 열린 상태, 어떤 목표도 갖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깨달음도 달성해야 하는 목표처럼 습관처럼 달려들면 요원하단 얘기다. 그저 뱃사공처럼 강물을 오래 바라보고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러듯이 자신의 온 감각에 목적성을 두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운동삼아 했던 일들을 멈추고 오늘부터 크리야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난다>를 읽고 크리야요가가 대체 뭔가 알아봤는데 우리나라에는 정식으로 크리아요가를 가르치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어찌어찌하여 알게 된 분으로부터 크리야요가를 위한 호흡법을 배웠고, 크리야요가 명상법 같은 걸 알게 되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I am not the mind. I am not even the mind.

들숨과 날숨에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되뇌이면 좋다고 하는 데 

무거운 머리가 몇분 동안의 명상만으로 에너지를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듯

그렇게 해서라도 잠시나마 자아를 소멸시키는 원리인지.


요가 관련 책을 탐독하는 것보다

짧게 나마 내 몸과 내 호흡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훨씬 좋다.

배우고 익히는 것은 좋으나 배움이라는 습관에 빠져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감각을 놓칠 때

쉽게 관성의 쳇바퀴에서 자유의 기쁨을 잃고 만다.


헤세는 이 책을 굉장히 고통스럽게 썼다고 전한다.

스스로 나락에 빠졌다가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체험'해야 했던 것일까.

평생 헤세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까. 

어쩌면 <싯다르타>는 그가 이루지 못한 마음의 평화를 역설적으로 상징하는 작품은 아닐까.

<싯다르타>는 과연 헤세의 작품일까.

오랫동안 윤회를 거듭하던 어느 중생이 헤세를 통해 간증한 이야기는 아닐까.


아. 다시 또 머리가 무거워진다.

다시 또 반신욕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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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5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번은 배운대로. 한 번은 살고 샆은 대로. 나뭇잎처럼님의 마음가짐이 느껴집니다.저도 그렇게 살고 싶네요

나뭇잎처럼 2021-11-16 09:12   좋아요 1 | URL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질 때가 있어요. 일단은 배운 걸 다 토해내야 할 거 같아요. ˝Unlearning˝ 이 요즘 제 화두입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들에 너무 휘둘리며 살아온 거 같아요. ˝OOO 하는 O가지 방법˝ 같은 리스티클이 왜 클릭률이 높을까 생각해보면 다들 쉽게 가려고... 빨리 해답을 얻고 싶어서...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얄팍한 접근이 아닌가 생각 들어요. 천천히 느긋하게. 책도 천천히 느긋하게 읽고, 천천히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 싯다르타가 강물을 통해서 배운 게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인생을 그렇게 서두르며 살 필요가 없는데 왜 그렇게 일분일초 아까워하며 서둘렀는지. 몸에 묵은 나쁜 습관들 해독하는 게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한 첫 번째 관문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1-11-15 2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는 것 같은 착각의 순간을 알아채고 경계하라는 내용의 말이 와닿네요. 저도 경계해야 된다고 평소 느끼는 말이에요. 님 리뷰 마지막 부분에서 어떤 작품은 작가가 쓴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쓰인 거 같다고 말한 브룬디쉬가 생각납니다. 정말 신내림하여 쓴 듯 말이죠.
앗 브룬디쉬는 누구냐고요? 영화 북샵에 나온
진지한 남자입니다 ^^ 그리고 기쁨으로 넘실거리는 일에 몰두할 것,도 공감해요.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다음에 크리야요가 하시는 이야기 좀 더 페이퍼 써 주세요 ^^

나뭇잎처럼 2021-11-16 09:19   좋아요 2 | URL
읽는 걸 아는 걸로 착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읽으면 왠지 아는 것 같잖아요. 선생님이 칠판에서 수학문제 푸는 거 보고 있으면 나도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읽는 거랑 아는 건 별로 상관 없더라고요. 오히려 읽어서 아는 척하게 되는 게 심각한 문제였던 거죠. 안다고 착각하고. 아예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는 것 같은데, 라고 느끼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죠. 겸손과 오만 사이 같은 크나큰 차이. 알고 싶은 욕망과 자신을 돌아보는 것 사이의 발란스를 찾지 못하면 어느 순간 배가 기우뚱하듯이 위태로워지는 것 같아요..
영화 북샵은 못봤는데 멋진 남자가 나오는 모양입니다. ㅎㅎ 어느 순간 쓰지 않으면 모두 사라지잖아요. 우주가 나를 통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제가 그 길을 제대로 열여주지 않으면 모두 먼지처럼 사라지죠. <빅 매직>에서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그걸 아주 멋지게 표현했더군요. 정말 기적 같은 일화를 소개하면서. 크리야요가 연속 100일 하기 2일차입니다. 느낌 좀 올라오면 유용한 얘기 들려드릴게요.^^

새파랑 2021-11-15 2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헤세를 성인이 되어서 읽었는데 😅 싯타르타 읽고 와 감탄했던 기억이 있는데 한번 더 읽어봐야 될거 같아요 ㅋ 저도 깨달음을 좀 얻고 싶네요 ^^
뭐든지 지나치게 매달리는건 안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뭇잎처럼 2021-11-16 09:27   좋아요 3 | URL
일단 시작하면 뭐든 중독되는 성향이라 뭐든 지나치게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게 화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얻은 것도 있지만 그래서 잃은 것도 많거든요. 힘을 빼고 유유히 흘러가는 걸 배워야 할 거 같아요. (태극권?)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뭘 알고 헤세를 읽었을까 싶어요. 그때 읽었던 <부활>이 정말 부활일까. 고전은 성인이 되어야 읽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거 쓰느라 한 평생 걸렸을 텐데 우리도 얼마큼은 살아야 읽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예전에 읽었던, 혹은 읽다 말았던 고전 이제 다시 시작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ㅎㅎ

다락방 2021-12-07 1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크리야 요가는 나뭇입처럼 님의 글에서 처음 접하네요. 저도 프레이야 님 말씀처럼, 크리야 요가 이야기 좀 더 자주 써주시길 바랍니다.
:)

나뭇잎처럼 2021-12-09 11:33   좋아요 2 | URL
헤헤. 제가 뭐 그렇게 알려드릴 형편은 못되지만 일단 매일매일 해보고 말씀드릴게요. 매일하는 게 쉽지 않네요. 하면 좋은 걸 아는데 매일 하는 건 아직 인이 박히지 않은 일인입니다. 뭐가 되었든 잠시 숨을 고르고 가만히 침잠하는 거. 요즘 같은 세상에서 점점 희귀해지는 기술이죠. 가만히 가만히. 조용히 조용히.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늘숨과 날숨을 바라보며...

그레이스 2021-12-09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나뭇잎처럼 2021-12-10 09:29   좋아요 2 | URL
우앙. 너무 조으네요. ㅎㅎ 적립금도 주시고. 알차게 써야겠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mini74 2021-12-09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뭇잎처럼님 저도 축하드려요 *^^*

나뭇잎처럼 2021-12-10 09:30   좋아요 2 | URL
넘. 감사해요. 미니님처럼 부지런하지도 못했는데 앞으로 더 분주해지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ㅋㅋ

쎄인트saint 2021-12-09 1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나뭇잎처럼 2021-12-10 09:31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달인분의 축하를 받으니 더 황송하네요. ㅎㅎ

thkang1001 2021-12-09 18: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뭇잎처럼님! 이달의 리뷰에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뭇잎처럼 2021-12-10 09:3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살다보니 또 이런 날도 있네요 ㅋㅋ

서니데이 2021-12-09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나뭇잎처럼 2021-12-10 09:34   좋아요 3 | URL
하하. 책을 사랑하시는 분들의 축하를 들으니 더욱 기쁘네요. 점점 멸종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은 소수민족인으로서 기쁨으로 감사를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1-12-09 2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뭇잎처럼님 축하드립니다~!! 이 리뷰 재미있게 읽었어요 ^^

나뭇잎처럼 2021-12-10 09:35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이 추천해주셔서 선정되었나 보네요. ㅎㅎ 새파랑님 전작읽기 잘 되고 계시죠? 기쁨으로 책의 바다를 멋지게 항해하시기 바랄게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