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어라운드 경영
사에구사 다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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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회사에서 팀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여 이 책으로 workshop 을 했는데, 느낀 바가 많아 전직원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회사가 직접 구입해서 각 개인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공짜로 책이 생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세상에 진정한 공짜는 없는 법이다. 당연히 숙제가 있다. 소감문, workshop 실시, 실천방안 도출 등...

마침 생산본부 담당 임원이 소속 전직원을 대상으로 vision 설명회를 실시했다. 상반기의 실적을 평가하고 하반기 목표와 전망 등, 회사 전반적인 vision 을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할까?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동안 내내 느낀 것은 이 책의 시퀀스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동안 왜 ‘지는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전략이 수립되고 목표가 정해지면, 죽어라 도전해서 성취해내고, 결국 ‘선순환’이 시작되면서 가속을 받아 확고한 1위 업체로 자리잡는 다는 것 (담당 임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경쟁사를 아예 ‘박살’내자!!! 가히 전투적인데, 경영이란 원래가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란다). 빠질 수 없는 것이, 결국 직원 한명 한명의 시간과 열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당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말 목표가 성취되면, 과감한 incentive 나 stock option 을 계획하고 있다까지.

그런데, 그 동안은 몰라서 못했냐고? 글쎄, 굳이 차이를 들자면 위 임원이 이 책의 이가라시처럼 외부 인사라는 점. 거기다가 구로이와 본부장과 가와바타 사장같은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는 점... 그래서 믿음이 간다. 나 스스로의 이러한 변화도 이 책에서 말하는 ‘개혁저항자’가 ‘개혁추종자’로 바뀌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개혁선도자’도 있다. 거기까지는 아직...^^ 사족 하나, 혹 이 책의 파급효과를 노린 장본인이 바로 이 임원이 아닐까?

그밖에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몇 가지 지엽적인 것도 언급하고 싶다. 부실기업의 50가지 증상 중, ‘지는 싸움’ 운운은 이미 얘기했고, 한 가지 더 꼽자면 ‘조직에 정치성이 만연해 있다’는 것. 호시 데쓰야가 그랬듯이, 조직의 정치성으로 이어지는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감정적 반응을 ‘옳으냐 옳지 않으냐’는 논리적 반응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일의 기준은 ‘논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 회사에서는 팀별로 workshop 이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 임하는 직원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우리 팀도 금주에 계획하고 있는데, 얼마나 적극적일지 무슨 반응들이 나올 지 궁금하다. 솔직히 나 자신이 ‘개혁선도자’라고는 못하겠다. 그저 담당 임원이 말한 대로, 내년에 우리가 목표하는 이만큼의 영업 이익을 낼 수 있는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것이라면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웃어야 할지 뿌듯해야 할지 망설였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만큼 적자를 보고 있는 회사가 손에 꼽을 실정이라...), vision 을 가져봄 직은 하다. 그래서 일단 딴 생각 안하고 열심히 할 테니까, 정말 연말에 컥 소리가 날 만큼 보너스 대박을 안겨달라고 하면 너무 솔직한 속내를 내보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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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자들
한상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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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위 처남이 빌려 준 책이다. 스스로가 느낀 것이 많았을 테고, 그래서 여동생의 남편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었을 게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이래로 돈에 대한 우리의 뿌리 깊고 모순적인 ‘선비 사상(?)’이 해방구를 찾았다. 그래서 관련된 재테크 서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뭔가 독특한 기획이 아니면 독자의 눈길을 끌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다른 나라도 아니고 바로 우리나라의 숨은 알부자 100인을 직접 취재하며 그 비법(?)을 공개한 X-file 이다. X-file 이란 표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 비법이라는 것이 적법과 위법 사이에서, 공감과 반감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은행원이 대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자를 한다든지, 원칙이라는 허명아래 악착같이 월세를 받아내는 건물주, 불필요한 지출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등등... 내가 아는 분 중에는, 크리넥스 휴지도 반씩 찢어서 쓰시는 분이 계시다. 솔직히 그 동안 무심코 보기만 했을 뿐이지, 나도 따라 해야 겠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이 기회에 새로이 느낀 것이 있다면, “작은 것을 아껴야 큰 것을 쓴다!!!”

얼마 전 태어난 첫딸의 이름을 지으면서, ‘선친의 음덕으로 많은 유산도 받아 기반이 견고하며...’ 라는 해설이 붙은 이름으로 냉큼 결정한 걸 보면, 나도 선비 사상 운운할 처지가 못 된다. 딸의 이름에만 기댈 것이 아니다. X-file 도 확보했겠다, 우선 크리넥스 휴지부터 잘라 쓰자~~~ 그런데, 찜닭 개업 신문 광고를 혼자만 봤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큰 오산이라는 데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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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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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과학철학이나 과학사 분야에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동어반복의 말놀이’ (p.156 저자가 직접 쓴 말이다. 물론 철학에다가 쓴 말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이 에세이 자체도 크게 다를 것 없다) 같은 이 책의 논의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비비 꼬는 저자의 논조와 우리말 같지 않은 역자의 번역 속에서 핵심을 잡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도대체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땐 기죽을 것 없이 일단 번역을 의심하라고 했던가?

그래도 '역자 해설'의 도움을 빌어, 핵심을 집어 내면 이렇다. 정상과학 → 퍼즐 풀이 → 이상현상 → 위기 → 새로운 패러다임/세계관 (과학 혁명). 써놓고 보니까 책의 목차 그대로이다. 여하튼, 결국 제목처럼 과학은 타 분야와는 다르게 혁명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지식이 차근히 누적되면서 점차로 발전하는 과정, 즉, 선형적이나 축적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쿤 이전에는 지배하던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부정한 것이다. 일견 결론은 간단해 보이지만, 이을 이끌어 내는 논의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실험 데이터로 가설이 증명 또는 반증되는 과학이 아니기에 그럴까? 오로지 사고와 언어로써만 이끌어 내는 결론이기에 그럴까? 원래 철학이 그런 것인가?

그만 투덜대고 내가 뭘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좀 더 세부 사항에서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들어보자.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에 합의하여 비판 없이 세부적인 문제풀이 활동을 한다. 즉, 정상 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퍼즐 풀이자일 뿐, 패러다임의 검증가는 아니다. 이건 와 닿는다. 바로 나도 그랬으니까. 과학 교과서는 그런 당대 정상 과학 전통에 기반을 둔 결과만을 말한다. 그래서 교과서는 매 혁명마다 바뀌어야 한다. 과학 입문도들에게 옛 패러다임은 필요 없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오늘의 교과서를 믿어야 할지 걱정도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하나 더 꼽자면,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주장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패러다임은 동일 표준에서 서로 비교 불가능하고, 그러기에 패러다임의 선택은 과학자 사회의 개인적, 주관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칼 세이건의 책에서는 ‘과학의 객관성, 다른 가능성의 인정, 자체 오류 수정 기재’ 등의 주장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이 놓고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자, 정리하자. 다치바나가 그의 책에서 주장하길,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서 독자층을 계속 유지하는 것만이 진짜라고 했겠다. 전공자들에게 물어봐야 겠지만, 이 책도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여기서 조금 논의를 바꾸어 보자. 저자도 말했지만, 과학을 혁명적이라 하는 것은, 일단 패러다임이 바뀌면 더 이상 지난 패러다임에 연연하는 과학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에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학파가 있다. 그래서 철학, 사회과학의 과학성에 대한 의심이 있다. 이 대목에서 처음 질문을 바꾼다. 이 책이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과학이 아닌 분야라서,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전은 아닌지?

ps) 별점을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괜히 선무당이 사람 잡네, 무식하면 용감하네 등등에 찔려서 그리고 저자의 명성에 기가 죽어서 하나 덜 깎고 타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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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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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이 ‘악의 축(?)’에 선전포고를 던졌다.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 악의 축은 사이비과학, 미신, 신비주의, 종교 등이며, 그가 내세운 가공할 만한 최첨단 무기는 ‘과학적 사고 방식 – 비판적 사고와 탐구 방법’이다. 괜한 자극적 선동은 이제 그만하고 차분히 책 내용을 들여 다 보자.

우선, 일반 대중의 과학적 문맹 상태를 한탄하면서 그 틈에 득세하고 있는 사이비과학, 신비주의의 폐해를 언급한다. 그리고는 그에 대조되는 과학의 특징을 하나하나 꼽는다. 과학적 사고 방식은 창의적이고 훈련된 사고 방식이다. 과학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가설에 무제한으로 개방적이며, 모든 것을 가장 엄격하게 회의적으로 검토한다. 스스로 오류 수정의 기제를 갖추고 있기에 과학은 성공할 수 있었다 등등.

책 전반에 걸쳐 깔려있는 중심 생각은, 이른바 과학적 회의주의skepticism이다. UFO에 열광하는 작태를 보면서 도대체 왜 증거를 찾아서 증명 또는 반증할 생각을 않는지, 저자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저 중고차를 살 때, 맥주 광고를 볼 때 정도의 회의주의만이라도 견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 경제, 종교, 사이비과학에는 회의론에 대한 경신 풍조가 만연해 있으며, 이에 대해 너무 자주 침묵으로 동의하는 것은 과학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세심한 균형이 필요한데, 회의주의 스스로도 너무 흑백논리로 빠지지 말고 사이비과학과 미신의 인간적인 뿌리를 인식해서 온건히 접근해야 널리 받아들여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한다.

계속해서, ‘엉터리 탐지’라는 논리적, 수사적 오류 기제를 언급한다.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들면, 거짓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반드시 참이라는 주장 – 특히 UFO, 수사학적 난관에 빠진 명제, 답변해야 하는 것을 가정, 작은 수의 통계, 확률의 오해, 전후 인과관계의 혼동,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혼동 등이다. 이런 것들이 특히 와 닿았던 이유는, 나 스스로도 일상 생활이나 일을 하면서 종종 저지르는 (심지어 인식조차 못한 채) 오류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뒷부분으로 가면서는, 과학의 대중화 방법론, 실용성이 아닌 호기심에 의한 과학 연구 지원 (맥스웰이 전자기 기초 방정식을 만들 때, 라디오, TV, 레이더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과학 공동체의 윤리 문제, 그리고 과학과 민주주의와의 관계까지, 저자만의 독특한 사색에 빠져볼 수 있다.

잠간 전쟁 통에서 빠져 나와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과학 만능주의 냄새가 너무 진하다고 볼멘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또 죄없는 민중까지 싸잡아 당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는 것이, 비양심적인 ‘악의 축’이 규칙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불완전성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기에, 반증조차 불가능한 교리로 무장한 채 말이다. 과학의 경쟁자인 자연은 자연의 비밀을 마지못해 넘겨주지만 공정하게는 싸운다 p.261.

ps) 얼마 전 종영된 TV프로그램 ‘도전 100만불 초능력 어쩌고’에서 흰 수염이 멋졌던 벽안의 할아버지를 기억하시는지? 제임스 랜디의 활약상을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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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최재천의 동물과 인간 이야기
최재천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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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책 말고 잠 자리에서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골랐지만, 잠을 아끼고 밤을 새워 가면서 다 읽고야 말았다. 도대체 책이 손을 놓아주질 않았기 때문인데, 그 만큼 재미있고 술술 잘 읽혔다고 볼 수 있겠다. 씨줄을 이루는 동물 얘기도 날줄을 이루는 사람 얘기도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고, 더 나아가 서로를 교묘히 넘나들기에 이야기가 탄탄해지고 흥미가 배가된다. 저자의 깔끔하고 유려한 글 솜씨도 한몫 단단히 한다.

동물과 사람 얘기가 서로 얽혀있고 언론 매체등에 담았던 글이라 시사성도 강하기에, 동물도 이러는 데 우리 사람도 이래야 하지 않냐는 식의 결론이 많다. 저자는 이것을 ‘자연주의적 오류’라 칭하며 되도록이면 피하려 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사과는 하지 않겠단다. 어떨 때는 정말 사람이 동물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란다.

자꾸 동물에 비교되는 것에 기분 나빠할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도 영장류일 뿐이며 영장류의 근본도 포유류이고 이런 식으로 따져 가면 결국은 하나의 근본에 도달할 뿐이다. 우리가, 인간과 98%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침팬치와 뭔가 다른 점을 주장하고 싶다면, 그 만큼 더 성숙한 면모를 보이도록 꽤나 노력해야만 할 것 같다. 결국 이것이 저자가 던지고 싶었던 화두話頭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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