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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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학 관련 대중적인 책들을 보면, 저자는 환자의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긴박한 순간에 마치 신의 계시 같은 느낌(?)으로 결정을 내려서 결국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는 식의 자랑 아닌 자랑을 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다르다. 그 동안 멋모르고 결정을 내려왔음을 솔직히 고백하며, 그 이유는 단순한 무지 때문일 수도, 의학자체의 불확실성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신의 계시 따위는 없으며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괘씸하다고? 하지만 이런 내막을 너무 잘 알고 있을 그조차도 어린 딸이 위중한 상황에서는 그저 담당 의사들이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는 대목에서, 욕은커녕 오히려 인간적 연민마저 느껴진다. 내가 그 경우라면 어떨까? 의사인 저자도 그럴진대 나는 더 별 수 없지않을까? 그렇다고 그렇게 불확실한 의학에 어린 자식의 생명을 맡겨야만 한다는 것인가? 획기적인 대안은 없을까? 숄다이스 병원 (p59) 같은 전문화/기계화가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의학 진단이라는 것이 누구 말마따나 ‘요리’와 같아서 그런 일반화는 불가능하단다. 결국 불확실성으로 되돌아 왔다.

‘나는 고백한다...’는 한글 제목이 꽤나 자극적이라 TV의 무슨 시사 고발 프로그램 같은 인상을 받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래서 구입했다), 그런 류의 호들갑은 없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의료 현장의 예기치 않은 곡절이나, 그 바닥의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딜레마에 대한 우려를 담아낸다. 그래서 원제도 ‘Complications’이다. 솔직히 적당한 번역을 찾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고백한다...’는 상업적 제목 이상 또는 이하도 아니었을 듯 하다.

무슨 책이든 첫 장을 넘길 때는 설레이게 마련이다. 그러다가는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내일로 미루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잘 시간을 놓쳐가며 내쳐 읽게 되는 책이 있다. 제목이 어땠던지 간에 이 책은 분명 단 한번에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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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식물학
마이클 폴란 지음, 이창신 옮김 / 서울문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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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화두는, ‘과연 인간이 식물을 길들인 것인가, 식물이 인간을 길들인 것인가?’이다. 즉, 사과는 인간의 입맛에 감미로움을 제공함으로써, 튤립은 아름다움을, 마리화나는 도취를, 감자는 인간이 식물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만족감을 얻게 함으로써, 그 자신들의 영속성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이게 진실이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고 ‘공진화共進化’나 ‘인위선택’ 개념을 상대편 입장에서 한번 보자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여느 두 종의 공진화에 대해서는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인간 스스로가 한 대상이 되면 꼭 자기가 ‘주체’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하니까 말이다.

의도는 거창했지만 입장을 바꿔본 들, ‘바꿔서 보니 식물이 그랬다고 볼 수도 있네.’ 면 끝이고, 별 덧붙일 말이 없을 것이다. 이 책도 그 수준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러니 저자가 재치 있는 문장과 박식한 지식으로 생물학, 역사학, 철학, 문학, 생명공학을 넘나들고, 발품이며 손품까지 판 이야기를 침 튀겨가며 펼쳐 놓은들, 이 모든 것이 사족처럼 느껴질 법하다. ‘식물 관점에서 보기’라는 의도와 별 연결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족처럼 느껴질 이야기들도 뒤로 가면서는 힘이 실린다. 처음 사과 편은 기행문 정도, 튤립 편은 역사서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마리화나, 감자 편에서는 저자 앞마당의 정원과 유럽/미국 전국을 헤집고 다닌 경험이 아우러지며 제법 멋진 구도가 완성된다. 특히 감자 편에서 언급되는 생명 공학에 대한 논의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절실히 와 닿는다 (한 감자 샐러드에서 유전자 조작 뉴리프 감자와 농약에 절은 러시트 감자 맛을 다 보았으니...).

그래서 결론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비유로 마무리된다. 이 비유는 책 전체에 걸쳐 자주 인용되고 있는데, 아폴론은 지배 혹은 재배를, 디오니소스는 야생 혹은 다양성을 의미한다. 어느쪽이든 결국은 인간과 식물이 각각의 욕망이 어우러진 춤판의 배우로서 참여하게 되고 (공진화), 서로 주고 받는 과정에 의해 가장 필요한 것이 살아 남겠지만 (생존의 법칙), 여기에 어떤 의도라거나 의식따위는 필요치 않다 (진화는 우연의 법칙).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식물이 이런 의도로 우리 인간을 조정해왔다 이거지?’ 따위의 오해는 필요 없다는 말씀. 모든 것은 우연일 뿐!!! 하지만 이 책의 신선한 시각에는 기꺼이 점수를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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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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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인기를 틈타 이제 출판되었지만, 일본에서는 꽤 오래된 책이다 (1983년). 오래되었다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그 후 20년간 유인 우주 비행은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오히려 그 회수가 많지 않다. 저자는 역시 그 답게 발로 쓰는 글의 진수를 보여준다. 깡통 머리만 굴려 미사여구만 나열한 잡동사니 글은 쓰레기 통에 처박을 지어라...

170만년 동안 대부분의 인류 중 누구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속과 마음 속을 훔쳐 다 보는 것은 자극적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이미 많이 나왔을 판에 밖은 듯한 경험담과는 괘를 달리하겠다니 더욱 솔깃하다. 그러나 솔직히, 그들이 겪었던 의식의 변화와 그 후 인생 행로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이런 것은 다치바나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찾아내서 쓸 수 있다. 다치바나만이 쓸 수 있는 우주여행의 디테일에서 오히려 심장이 벌렁거림을 느낄 수 있다.

고도와 산소 분압의 관계, 우주선 각 부분의 역할과 원리, 우주에서의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 (발사후 countdown), 지구가 손톱 크기에서 시선 좌우 양끝 크기로 커지는 데 불과 수 분밖에 걸리는 않는다는 그 속도감, 지구 궤도와 달 궤도를 이용한 우주 여행 원리, 이를 이용한 아폴로 13호의 귀환 사투, 우주 반딧불, 정체 불명의 번쩍임, 생사를 좌우하는 대기권 진입 각, 등등... 이런 리얼리티가 현실감을 더 주고 오히려 상상을 자극한다.

화려하게 채색된 지구, 우주 공간의 사진은 눈만 현혹할 뿐이다 (가시 광선 망원경은 물론이고, 우리 눈이 보지 못하는 전자기파로 찍은 사진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볼 수 있는 색채를 입히고 보정해야 한다. 좀 비약하자면 우리가 감탄하는 것은 조작된 사진일 뿐이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이런 디테일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은 점이다. 독자층을 감안한 타협이었으리라. 다치바나!!! 좀 더 밀어 붙이시지 그랬어요? 그래서 별점을 하나 깎습니다...

자, 이제 결론!!! 저자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에서는 아무런 정리도 결론도 내리지 않겠단다. 독자 스스로 느끼라는 것이지만, 내가 여기에서 ‘신’을 논하고, ‘지구 공동체의 운명’ 운운하는 것은 억지이고 꼴값이다. 나는 낯선 곳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특히나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은 질색이다 (예비군 훈련장, 휴가철 유원지, 세일중인 백화점... ). 이런 나에게 우주 여행은 짜릿한 자극을 전달한다. 뇌간이 흥분하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쏟아져서 심장이 터질 듯 해진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느낀 소박한 결론이다. 자이로드롭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그 순간에, 무슨 개똥철학이 필요하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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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구멍
K.C.콜 지음, 김희봉 옮김 / 해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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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왈 ; 재기 발랄한 문장, 말장난, 농담 어쩌구 저쩌구... 모 신문 리뷰 ; 시적인 표현, 유머러스한 문체, 알아 듣기 쉬운 예증 어쩌구 저쩌구... 다 맞다. 짧은 문장과 기상천외한 비유로 읽는 재미도 있고 이해도 쉽다. 그러나 정성적인 감을 잡긴 좋겠지만, 마치 종교 교리서와 같은 애매함이 물리학을 오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다. 솔직해지자. 이건 괜한 시비고 (어떻게 물리학 책을 쓰면서 이런 문장을 생각해 냈는지에 감탄과 심통이 생겨서...), 몇 가지 예를 직접 보자.

페러데이가 빈 공간을 접어서 물질과 힘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것을 서로 연결하는 주름으로 만들었다는 것 (p.100). 진공이 선반에 얹혀 있는지도 모른다 (진공의 에너지 관점에서, p.123). 힉스 마당이 걸리적거리네, 이 걸리적 거림이 질량이네, 이는 입자들이 끌고 다녀야 하는 십자가와 같은 것 (p.131). 중력 ‘접착제’ 따위는 없네, 우리가 지구에 잡혀 있는 이유는 공간 자체가 휘어 있기 때문일 뿐 (p.140). 무법적인 양자 시공간의 ‘거품’마저, 알고 보면 진동하는 끈이 목쉰 소리로 부르는 노래이다 (p.179).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반중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기 나는 총’ (p.249)

재미는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겉치레일 뿐이고, 우리는 그 속을 들여 다 보아야 한다. 무無, 없음. 0 에 대해 여러 가지 재료를 먹음직스레 버무려 놓았지만, 결국 주제는 ‘진공’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진공 펌프를 이용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진공에도 사실은 많은 원자들이 여전히 들어있다. 우주로 나가면 물론 더 적은 수이겠지만 여전히 몇 개는 있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진공’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무無, 즉 상상의 세계를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종교나 철학으로 오해 받기 딱 좋다. 정확히 말하면 수학적/이론적 가정으로서의 무無라고 해야겠다. 이 개념은 고전 에테르 개념으로부터 시작해서 장, 우주 상수, 제5원소, 힉스 마당 등으로 변해오고 있다.

진공에 대해 저자의 입담을 좀 더 자세히 들어 보자. 장이 가장 조용한 상태가 곧 진공인데, 여기에 에너지를 주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야말로 빈 공간에서) 입자-반입자가 생성된다. 즉, 진공이 요동하면서 입자와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바탕에 지나지 않았던 시공간이 휘어서 중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편, 진공도 에너지에 따라 여러 상태가 있는데, 태초엔 (이렇게 말하면, 또 종교 비슷한 오해를 받겠지만) ‘녹은 진공’이 있나니, 이는 최소한의 구조도 성질도 없는 오로지 에너지만 있는 진공이다. 이 상태에서 시공간 마저 녹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모든 잠재성이 사라지고, 무의 진정한 출발점이 될까? (p.303을 보시라).

아시다시피 우주는 팽창한다. 그런데 그 팽창은 가속적이다. 빈 공간 자체에서 반발력이 생긴다는 역설이다. 여기엔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우리가 매우 특별한 시기에 살고 있다는 것; 즉 지금이 ‘웃기는’ 반발력 에너지와 보통의 중력 에너지가 기가 막히게 균형을 이루려는 때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반발력은 우주 역사를 통틀어 일정하지가 않았다 (이것은, ‘우주 나이 130억년, 가장 오래된 별 150억년’ 이라는 역설의 답이기도 하다). 정말 그야말로 무의 거대한 가속 사이의 짧은 막간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p.255).

이 대목에서 ‘그러니 우리는 ....... 이렇게 살아야 겠습니다’라는 철학/종교적 마무리는 유치하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고, 물리학이 여기까지 알아냈다는 것 뿐이지, 여기에 살을 붙이면 비약이다. 우주가 그렇지 않았다면, 왜 하필 이랬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사람도 없었다. 아예 존재 자체가 없었단 말씀!!! - 인류/인간 원리. 저자도 이런 식의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우주에서 꼭 필요한 비대칭으로서 ‘시간’과 무에 관한 관계로 마무리한다 (p.315). 그런데 이게 더 혼란스럽다... (야!! 니 리뷰가 더 혼란스럽다!! 아~ 정리 안된다.... 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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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물학이다
에른스트 마이어 지음, 최재천.고인석 외 옮김 / 몸과마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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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물학이다> 라는 제목을 보면, 노학자의 오만하다고 할 만큼의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책을 읽다 보면 군데군데 내용에서도 완고한 고집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오만과 고집에 큰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저자의 명성에 이미 기가 죽고 들어갔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잠간 저자 서문을 들여 다 볼까요?

“전통적인 과학철학에 기초를 제공한 전통적인 물리과학은 본질주의, 결정론, 일반론, 환원주의 등 유기체의 연구에는 부적절한 일련의 개념들로 가득 차 있다. 생물학은 사실 개체군적 사고, 확률, 우연성, 다원주의, 창발성, 역사적 담론들로 이뤄져 있다. 생물학과 물리학을 비롯하여 모든 과학 분야의 연구 방법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철학이 필요했다” p.19.

스케일이 느껴지십니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박쥐가 헌혈을 한다는 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엽적인 얘기들은 없습니다. 대신 주제는 생물 철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입니다. 생물학에서의 ‘무엇’, ‘어떻게’, ‘왜’라는 질문과 그 대답에 대한 논의들이 펼쳐집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일 것입니다. 답은 ‘진화’입니다. 박쥐가 헌혈을 하는 이유도 진화에 의해 형성된 포괄적응도/호혜성 이타주의의 결과인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시키면 인간 윤리규범과 행동들마저도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과정에 어떤 목적론이나 진보성은 없습니다. 그저 변이와 선택이라는 단순한 다윈적 원리의 필수불가결한 결과일 뿐입니다. 저자 가라사대; 진화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이다.

이 대목에서 왠지 진화론 자체도 또 하나의 결정론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비록 작용 기제가 우연과 확률이긴 하지만, 변이와 선택이라는 엄연한 나름의 법칙을 갖고 있으니까요. 단지 그 결과가 예측이 안 된다는 것 뿐이지요. 인간성은 신이 준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자연신학 시절이 차라리 속 편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엉뚱한 시비 한번 해봤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역자 대표로 나선 최재천 교수가 친절히 설명해 준 바와 같이, 진화발생생물학이라는 통합생물학이 있다고 합니다. 생물학은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달리 근본적으로 위계구조를 지닌 학문이기에 언제까지나 환원주의적 분석으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ex. 다면발현성 유전자). 이 책 전반의 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중적 원인/다중 해답이라고 저자가 잠간 언급했고 책 전체에 걸쳐 계속 강조하고 하고 있습니다만, 유기체의 각 현상과 과정들은 근접(기능적인) 원인과 궁극(진화적인) 원인이라 불리는 두 분리된 원인의 결과입니다.

유전자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적 설명이 필요하고 (‘왜’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단백질과 지방질, 그리고 다른 거대 분자들로 이루어진 표현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능적 설명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떻게’의 대답). 이게 바로 현대 생물학의 이원론입니다. 예전 기계론적이며 이원론적 결정론과는 다르지요. 그래서 답도 여러 가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진화생물학에서 철저한 일반화는 거의 틀리는 수가 많다는 것 p.322. 어떻게 보면 답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내 손발의 생김새, 머리 속에 든 가치관과 많은 생각들이 우연의 결과였습니다. 즉, 다윈의 공통유래 이론은 자연에서의 인간의 독보적인 지위를 박탈한 것입니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자연 현상들에서 모든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문득 허탈하기도 하고, 겸허해 지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싫어했던 주사위가 조금만 다르게 굴렀다면, 지금의 나는 E.T. 같은 모습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당신도, 우리 모두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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