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나는 과학철학이나 과학사 분야에는 문외한이다. 그래서 ‘동어반복의 말놀이’ (p.156 저자가 직접 쓴 말이다. 물론 철학에다가 쓴 말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이 에세이 자체도 크게 다를 것 없다) 같은 이 책의 논의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비비 꼬는 저자의 논조와 우리말 같지 않은 역자의 번역 속에서 핵심을 잡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도대체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을 땐 기죽을 것 없이 일단 번역을 의심하라고 했던가?

그래도 '역자 해설'의 도움을 빌어, 핵심을 집어 내면 이렇다. 정상과학 → 퍼즐 풀이 → 이상현상 → 위기 → 새로운 패러다임/세계관 (과학 혁명). 써놓고 보니까 책의 목차 그대로이다. 여하튼, 결국 제목처럼 과학은 타 분야와는 다르게 혁명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지식이 차근히 누적되면서 점차로 발전하는 과정, 즉, 선형적이나 축적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쿤 이전에는 지배하던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부정한 것이다. 일견 결론은 간단해 보이지만, 이을 이끌어 내는 논의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실험 데이터로 가설이 증명 또는 반증되는 과학이 아니기에 그럴까? 오로지 사고와 언어로써만 이끌어 내는 결론이기에 그럴까? 원래 철학이 그런 것인가?

그만 투덜대고 내가 뭘 몰라서 그러려니 하고, 좀 더 세부 사항에서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들어보자.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과학은 하나의 패러다임에 합의하여 비판 없이 세부적인 문제풀이 활동을 한다. 즉, 정상 과학에 종사하고 있는 한, 연구자는 퍼즐 풀이자일 뿐, 패러다임의 검증가는 아니다. 이건 와 닿는다. 바로 나도 그랬으니까. 과학 교과서는 그런 당대 정상 과학 전통에 기반을 둔 결과만을 말한다. 그래서 교과서는 매 혁명마다 바뀌어야 한다. 과학 입문도들에게 옛 패러다임은 필요 없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오늘의 교과서를 믿어야 할지 걱정도 된다 (조금 과장하자면...).

하나 더 꼽자면,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주장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패러다임은 동일 표준에서 서로 비교 불가능하고, 그러기에 패러다임의 선택은 과학자 사회의 개인적, 주관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칼 세이건의 책에서는 ‘과학의 객관성, 다른 가능성의 인정, 자체 오류 수정 기재’ 등의 주장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과 같이 놓고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자, 정리하자. 다치바나가 그의 책에서 주장하길, 고전은 시대를 초월해서 독자층을 계속 유지하는 것만이 진짜라고 했겠다. 전공자들에게 물어봐야 겠지만, 이 책도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여기서 조금 논의를 바꾸어 보자. 저자도 말했지만, 과학을 혁명적이라 하는 것은, 일단 패러다임이 바뀌면 더 이상 지난 패러다임에 연연하는 과학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에는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 학파가 있다. 그래서 철학, 사회과학의 과학성에 대한 의심이 있다. 이 대목에서 처음 질문을 바꾼다. 이 책이 ‘고전’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과학이 아닌 분야라서,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전은 아닌지?

ps) 별점을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괜히 선무당이 사람 잡네, 무식하면 용감하네 등등에 찔려서 그리고 저자의 명성에 기가 죽어서 하나 덜 깎고 타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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