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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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정재승 박사가 올해(2002)의 책으로 꼽은 세 권 중 한 권이 이 책이었다. 그 후 그 세 권이 모두 알라딘 과학기술 베스트셀러 5위 안에 진입 되는 기염을 토했다. 2002년 11월에는, 개그맨 MC가 진행하는 또 다른 TV프로에서 소개된 책들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제외하겠다는 한국출판인회의 등의 발표도 있었다. TV라는 매체의 광범위한 대중성 때문에 도서 편식증이 초래되고 진정한 베스트셀러의 개념이 왜곡된다는 비판이다. 여하간에, 거기도 나름대로 고민을 해서 선정했을 테고, 그 책의 수준이 나쁘지만 않다면야 문제될 것은 없겠다. 문제는, 과연 얼마나 널리 객관성을 인정 받느냐 인데...

저자는, 에르되스-레니의 무작위 네트워크 이론에서 출발하여 와츠-스트로가츠의 클러스터링 네트워크 모델 (좁은 세상), 저자 자신의 척도 없는 네트워크 모델 (허브, 파레토 80/20 법칙, 멱함수 법칙) 그리고 적합성 모델 (경쟁과 성장, 승자 독식) 등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이야기거리를 늘려나간다. 각 단계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는 일품이다. 간결하고 알아 먹기 쉽게 이 만큼 얘기하기도 쉽지 않겠다. 번역과 편집도 깔끔하다.

척도 없는 네트워크를 도출 시키는 것은 자기 조직화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우리 실생활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단다. 생물체 단백질 상호작용의 네트워크, 세포 내에서의 신진 대사망, 인터넷과 월드와이드웹, 할리우드 영화 배우들 간의 네트워크, 과학자들 간의 공동 저자 네트워크, 논문의 인용 관계를 통한 사회적 네트워크 등등. 사실 저자의 멱급수 법칙을 포함하여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정재승 박사의 <과학 콘서트>에서 간략하게나마 이미 소개된 바 있다.

저자가 말하길, 네트워크는 그 성격상 복잡계를 구성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상호 연관성을 기술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노드와 링크는 복잡계의 상호의존성을 기술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스무 살을 갓 넘은 ‘복잡성 과학’이 자신을 더 잘 묘사하기 위해 ‘네트워크 과학’을 탄생시켰고 그 아이가 이제 겨우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한 상황이다. 가까스로 자연과 사회 현상을 묘사할 수 있는 수학 법칙을 비슷하게나마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네트워크 과학의 응용 예로 들고 있는 많은 경우에서 뭔가가 빠지고 엉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연한 얘기들만 자꾸 반복해서 우기고 있다는 느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저자의 변辯도 있는데, 이 책에서는 오직 노드와 링크만으로 복잡계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자 했단다. 그래서 다음 할 일은 내면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 즉, 그 위상 구조를 벗어나 링크를 따라 전개되는 동역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것이다. 모르지. 근 100년 전 ‘상대성 이론’이 태동했을 때도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었는데, 앞으로 100년쯤 지나면 ‘네트워크 과학’도 오늘의 ‘상대성 이론’ 만큼의 위치에 올라가 있을 지도... 어쩌면 지금이 ‘패러다임 시프트’가 정말 시작되어야 할 시점인지도... 확실한 것 하나는, ‘환원주의’는 나름대로 그 역할을 다했고 이제는 새로운 정권(?)이 필요하다는 것.

사족 하나 더, 도대체 이 책의 내용이 물리학인지 사회학인지 애매했다. 역자 후기까지 읽고 보니, 네트워크 과학이 그 어떤 기존 학문 분야의 전유물도 아니란다. 번역도 물리학자와 사회학자의 합작품이었다. 바야흐로 분과 학문간의 경계 허물기라는 또 다른 패러다임이 시작되고 있나 보다.

자, 이제 결론!! 책장을 넘길수록 아쉬워지는 책이 있고,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 마지못해 책장을 넘기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네트워크 이론을 설명한 앞부분에는 힘이 넘치다가, 그 응용 예를 든 뒷부분에서는 힘이 좍 빠졌다. 과연 TV의 선택은 널리 객관성을 인정 받을 수 있을까? 차라리 알라딘처럼 편집부의 ‘내 맘대로 좋은 책 (11월)’이라고 안전판을 달고 소개하는 게 솔직하고 괜한 시비거리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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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林火山 2008-12-19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Naver Opencast의 "風林火山의 분야별 대표 도서 소개"(http://opencast.naver.com/BK175)라는 캐스트의 캐스터 風林火山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제 캐스트에 발행했는데, 혹시라도 발행을 원치 않으시면 '캐스터에게 한마디'에 적어주시거나, itmedusa@gmail.com으로 메일 주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