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생물학이다
에른스트 마이어 지음, 최재천.고인석 외 옮김 / 몸과마음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이 생물학이다> 라는 제목을 보면, 노학자의 오만하다고 할 만큼의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책을 읽다 보면 군데군데 내용에서도 완고한 고집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오만과 고집에 큰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저자의 명성에 이미 기가 죽고 들어갔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잠간 저자 서문을 들여 다 볼까요?

“전통적인 과학철학에 기초를 제공한 전통적인 물리과학은 본질주의, 결정론, 일반론, 환원주의 등 유기체의 연구에는 부적절한 일련의 개념들로 가득 차 있다. 생물학은 사실 개체군적 사고, 확률, 우연성, 다원주의, 창발성, 역사적 담론들로 이뤄져 있다. 생물학과 물리학을 비롯하여 모든 과학 분야의 연구 방법들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철학이 필요했다” p.19.

스케일이 느껴지십니까? 그래서 이 책에서는, 박쥐가 헌혈을 한다는 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엽적인 얘기들은 없습니다. 대신 주제는 생물 철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입니다. 생물학에서의 ‘무엇’, ‘어떻게’, ‘왜’라는 질문과 그 대답에 대한 논의들이 펼쳐집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일 것입니다. 답은 ‘진화’입니다. 박쥐가 헌혈을 하는 이유도 진화에 의해 형성된 포괄적응도/호혜성 이타주의의 결과인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시키면 인간 윤리규범과 행동들마저도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과정에 어떤 목적론이나 진보성은 없습니다. 그저 변이와 선택이라는 단순한 다윈적 원리의 필수불가결한 결과일 뿐입니다. 저자 가라사대; 진화는 이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이다.

이 대목에서 왠지 진화론 자체도 또 하나의 결정론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비록 작용 기제가 우연과 확률이긴 하지만, 변이와 선택이라는 엄연한 나름의 법칙을 갖고 있으니까요. 단지 그 결과가 예측이 안 된다는 것 뿐이지요. 인간성은 신이 준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자연신학 시절이 차라리 속 편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엉뚱한 시비 한번 해봤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역자 대표로 나선 최재천 교수가 친절히 설명해 준 바와 같이, 진화발생생물학이라는 통합생물학이 있다고 합니다. 생물학은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달리 근본적으로 위계구조를 지닌 학문이기에 언제까지나 환원주의적 분석으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ex. 다면발현성 유전자). 이 책 전반의 관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중적 원인/다중 해답이라고 저자가 잠간 언급했고 책 전체에 걸쳐 계속 강조하고 하고 있습니다만, 유기체의 각 현상과 과정들은 근접(기능적인) 원인과 궁극(진화적인) 원인이라 불리는 두 분리된 원인의 결과입니다.

유전자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화적 설명이 필요하고 (‘왜’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단백질과 지방질, 그리고 다른 거대 분자들로 이루어진 표현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능적 설명이 필요한 것이지요 (‘어떻게’의 대답). 이게 바로 현대 생물학의 이원론입니다. 예전 기계론적이며 이원론적 결정론과는 다르지요. 그래서 답도 여러 가지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진화생물학에서 철저한 일반화는 거의 틀리는 수가 많다는 것 p.322. 어떻게 보면 답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내 손발의 생김새, 머리 속에 든 가치관과 많은 생각들이 우연의 결과였습니다. 즉, 다윈의 공통유래 이론은 자연에서의 인간의 독보적인 지위를 박탈한 것입니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자연 현상들에서 모든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문득 허탈하기도 하고, 겸허해 지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싫어했던 주사위가 조금만 다르게 굴렀다면, 지금의 나는 E.T. 같은 모습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물론 당신도, 우리 모두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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