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공간
미치오 가쿠 / 김영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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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이론물리 분야의 대중 과학서로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와 쌍벽을 이루겠다. <엘러건트...>가 축소론적 접근법으로 우주 만물과 힘을 구현하는 작은 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반면, <초공간>은 전체론적 접근법을 택해, 가시적인 우주로부터 출발해서 어떻게 물리법칙들이 고차원에서 간단해지는가 하는 개념을 기본 주제로 삼는다. 초점은 소립자의 성질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 즉 기하학과 시공간의 세계를 탐구한다.

우리의 뿌리 깊은 상식으로는, 3차원(시간까지 포함시켜서 4차원)이면 우주의 모든 사건을 기록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4차원을 넘어 다른 차원이 존재하며 이 추가 차원에 의해 모든 물리법칙이 간단해지고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초공간 이론(칼루자-클라인 이론 → 초중력 이론 → 초끈 이론)이다. 사실, 차원을 높인다는 것이 수학적으로는 리만의 계량 텐서에 행과 열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로 인해 충분한 ‘방’이 제공되면서 중력의 아인쉬타인 장, 전자기력의 맥스웰 장, 그리고 약력과 강력의 양-밀스 장이 단번에 하나로 통일되는 괴력을 발휘한다. 결국 아원자 영역의 아름다운 대칭성도 이러한 고차원 공간으로부터 유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물리학자들만의 언어이고, 도대체 5차원, 10차원에 대해 감이 오지 않을 일반인들을 위해 저자는, 연못 속의 잉어와 고대 이집트인의 비유, 대리석(힘)과 나무(물질)의 비유 등으로 우리를 차근히 초공간의 세계로 인도해준다. 계절의 변화가 신비할 수 밖에 없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약 우주공간에서 (차원을 뛰어 올라) 지구를 내려 본다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명백해졌을 테지. 한편, 아인슈타인의 꿈은 대리석, 즉 순수기하학으로만 우주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나무(물질)는 단지 시공간의 꼬임이나 진동일 뿐이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자들은 정반대로 생각했다. 대리석은 나무로 변할 수 있다고, 즉, 아인슈타인의 계량 텐서는 중력을 전달하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인 중력자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초끈 이론이 바로 나무와 대리석을 잇는 ‘잃어버린 연결고리’가 된다는 게지.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릴 일반 독자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도록, 3,4부에는 소설같이 재미있는 우주물리 이론이 소개된다. 공간은 과연 극단적인 상황에서 찢어질 정도로 늘어날 수도 있는지? 그게 바로 이웃 우주로 들어가는 벌레 구멍이다. 초공간에 의해 시공간을 관통하는 수단이 제공되는 것이다. 초공간 이론이 옳고 언제간 우리가 전 은하계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다면? 지금 4차원의 우주가 다시 짜브라지는 그 순간(big crunch)에 우리는 반대로 확장되는 6차원으로 달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쓰여진 1994년 상황에서, 초끈 이론은 ‘우연히 20세기에 떨어진 21세기 물리학’ 취급(?)을 받고 있었다. 도저히 실험으로 검증될 수 없는 초에너지 영역의 이론이기 때문이다. 또 끈 이론은 그 수학적 복잡성 때문에 매우 다양한 수학 분야와 연결되지만, 정작 끈 이론 저변에 깔려 있는 물리적 원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왜 끈이론이 풀리지 않는가 하는 이유는 아직 21세기 수학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5년 초끈 이론의 제2혁명기를 겪으면서 본 책의 저자가 기대했던 돌파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비섭동론적 방법, 11차원-초중력 이론, 헤테로틱 끈 이외에 4개의 추가 끈이론과 그 모두를 아우르는 M-이론, p-브레인 이론 등. 지적 호기심이 솟구쳐 오른다면, <엘러건트...>, <호두껍질 속의 우주>에서 이러한 내용들을 확인해 보시길...

ps) 근데, 왜 하필 10차원이지? 라마누잔의 모듈함수가 10이라는 숫자를 요구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여전히 왜 이러한 특정한 숫자가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 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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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기들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엮음 / 서울문화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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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종이가 어떻게 그 멀리까지 날아 가냐며 FAX를 너무 신기해 하는 와이프에게, 복사기+전화기로 생각하면 되지 않냐고 대충 얼버무리면서 잘난 척 했었는데, 나도 잘 몰랐다는 걸 인정하고 이번 참에 제대로 설명해줘야겠다. 핵심만 요약된 글과 눈에 확 들어오는 삼차원 해부도면 이해하는 데 충분하겠지? 더 거부하려나?

이렇게 첨단 기기에 대해 심각한 거부감이 없고 어느 정도는 그 원리와 내부 구조에 호기심이 많은 독자라면 (또는 그런 질문을 쉴새 없이 해대는 아이들의 부모라면), 딱 안성맞춤이겠다. 도시 하부 구조와 가정기기, 통신 및 전자 기술, 교통, 범죄와 보안, 에너지와 산업, 의학과 첨단 과학, 우주에 걸쳐 총 116개의 주제에 대해 딱 2 page씩 할당되어 있다. 글 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총 천연색 그림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물론, 제록스社 직원이 본다면 복사기에 대한 2 page짜리 설명은 영 부족하다고 느끼겠지만, 그가 만물박사가 아닌 다음에야, 나머지 100여 개 주제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못할걸? 그래도 2 page가 너무 짧다고 느낀다면, appendix에 제법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과학/공학 원리 설명과 용어 해설을 참조하면 되겠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도 잘 정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본문 중에 많은 그림 - 본문 내용과는 상관없이 화려하기만한 비쥬얼 그래픽이 아닌 진짜 실속 있는 - 이 있고 appendix로 색인과 인용이 잘 정리된 책에는 무조건 점수를 더 주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색인에 그치지 않고 용어 설명까지 있으면 무조건 별 하나 추가다.

단, 비쥬얼과 편집으로 승부를 거는 이런 책에서 몇 개의 오자와 오류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p.239 액체수소 화살표 방향, p.226 마지막 설명은 SEM이 아니라 STM, p.194 주파수를 갔는 → 갖는. 앞쪽 page에도 서너 개 더 있었는데, 다시 못 찾겠다). 책 표지에 버젓이 들어있는 수많은 감수 위원들의 사진과 약력이 민망하다.

그런데 오자와 오류는 제쳐두고라도, 이만한 내용에 이정도 가격이라면 과연 망설임 없이 구입할 수 있을까? 'NCND'이다!!! 저요? 상품권으로 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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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 과학이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5
존 카스티 지음, 김동광 외 옮김 / 까치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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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카오스’나 ‘복잡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것은, 그 유명한 <나비 효과> ; 여기서 나비가 펄럭이면 저기에 태풍이 분다. 이게 아마 ‘초기조건 민감성’을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 또 많이 알려지기로는 <프랙탈>도 있겠다. 이건, 구름, 해안선, 나뭇잎 등 자연현상의 불규칙한 패턴이 ‘자기유사성’인가 뭔가를 갖고 있다는 얘기였던 것 같고. <창발성 emergence> ; 뇌처럼 그 구성 요소인 뉴런을 한데 모은 것 이상의 새로운 특성을 나타내는 것. <인공생명 artificial life> ; 생명체처럼 스스로 복제, 성장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인데 연구자들은 이걸 진짜 생명으로 생각한다더군. 하여튼, 너무 수박 겉 핥기 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알라딘 SalesPoint가 76점 밖에 안 되는 것이 좀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고 나니까 224점으로 올랐네?) 과감하게 이 책을 구입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 책 역시 과감하게도(?)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 교양서는 아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짐작컨대 저자는 일반인을 위해 일상적인 언어만을 사용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기꺼이 전문 용어(영어)들을 사용했고 그것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미처 널리 합의되지 않은 용어(한국어)들이 선택되었을 것이다. 내 수준에서 파악된 예로는, ‘직렬-병렬’을 ‘시리즈-병행’으로 번역한 것이 있다 (p.35). 전공자라도 자기 전공관련 원서를 볼 때보다 낯선 우리말 용어가 사용된 번역서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는데, 하물며 비전공자라면 이미 전공자간에 합의된 전공 용어의 깊은 의미 조차도 모르는 판에 두 말할 나위도 없겠다.

먹음직스레 생긴 수박 속 시뻘건 알맹이가 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챙겨 먹질 못해서 계속 투덜거리고 있는데, 그래도 수박 껍질 안쪽 희멀건한 맛은 본 듯하니 껍질만 핥은 것보다는 낫다고 위안한다. 희멀건한 맛? 이런 것들이다. 논리적 혼란의 메커니즘에 의해 자기언급을 포함한 역설적 결론이 나오니 놀랍다. 마찬가지로 파국에 의해 원할함으로부터의 불연속성이, 카오스에 의해 결정론적 무작위성이, 계산불가능성에 의해 규칙을 초월하는 출력(무법칙성)이, 환원불가능성에 의해 부분으로 분해될 수 없는 움직임이, 창발성에 의해 자기-조직적인 패턴이 생성된다. 저자는 이를 놀라움-생성 메커니즘으로 분류하고 있다. 음... 다시 봐도 여전히 묽은 맛이다.

다른 책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사실 복잡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단다. 자연에서 복잡성을 관찰하는 것과 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는 만델브로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열광주의자들은 복잡적응계의 통일이론이 자연에 대한 ‘통찰’과 실세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동시에 이루어 낼 것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극단적인 환원주의자들은 좀더 복잡한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공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일부에선 복잡성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면서 선전가치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기도 한다. 복잡성 자체의 정의만 31가지나 되더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저자도 이를 의식했는지, 복잡성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를 들면서, 단순계와 복잡계를 그 특징으로 구별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는 주관적, 비형식적에 머무르고 있는 복잡성을 형식화, 객관화 과정을 거쳐 과학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외한의 입장에서야 그저, 이런 싸움판(?)이 흥미로울 뿐이다. 과연 복잡성이 ‘공학’으로 격하되지 않고, 이론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진정한 ‘과학’이 될 것인가? 하여튼, 관심은 계속 갈 듯하고, 별도로 제대로 된 수박 맛도 계속 찾아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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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듀어런스 -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김세중 옮김, 프랭크 헐리 사진 / 뜨인돌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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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룹웨어 공지사항 게시판에서 책 소개를 본 적이 있다. 리더쉽 팀에서 요약이라기엔 좀 긴 내용으로 줄거리를 올렸고, 마침 별 일도 없던 차라 무심결에 그걸 읽다가는 가슴이 찡~해지는 걸 느꼈었다 (이게 바로 그 팀에서 노렸던 게 아닐까? 순진하게도 나는...).

그리고는 며칠 후, 손위 처남으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았는데 바로 이 책인 것이었다. 나는 예의 순진함 그대로, ‘이건 대단한 인연이고 계시야’ 하면서 그날 밤으로 다 읽어 버렸다. 아니, 봐 버렸다 (글만큼 사진도 많거든).

위대한 실패, 아름다운 실패, 성공한 실패, 그리고 낙관적인 리더쉽, 절망에서의 리더쉽 등등... 많은 미사여구가 이 책을 선전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가슴을 턱 막히게 했던 것은 바로 사진들이었다. 흑백의 단조로움과 그로부터 느껴지는 고즈넉함(이게 바로 대원들의 일상과 심정들 아니었을까?)을 담고 있는 수 많은 사진들이, 이미 줄거리를 알고 읽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더 알싸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니 오히려 처음보다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고 할까? (여전히 순진하다...)

결론은, ‘선물용(!?)’ 책으로는 딱이라는 것이다. 글과 사진도, 편집도, 그리고 가격도!!! (여전히 순진한 건지 아닌지...) 그래서 처남에게는 정말 고마울 뿐이다. 또 뭐 좋은 선물용 책 없을까? 사실, 처남과 내 생일은 하루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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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종말
존 호건 / 까치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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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을 과학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가 본 최초의 과학철학서가 되겠다. 절대 ‘철학’과는 친하지 않지만,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나무에서 벗어나 숲을 한번 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또는 어쩔 수 없이, 나무만 잔뜩 챙겨오고 말았다. 익히 들은 적이 있는 과학자들의 업적과 그 이론 설명 부분에다만 밑줄을 쫙쫙 긋고는 (일부러 더), 그것들로부터 저자가 끌어내고자 했던 철학적(?) 논의 부분은 대충 눈길만 한번 주고는 휙 건너 뛰고 말았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양 화들 짝 놀라서는... 스스로가 속한 영역에 대한 아집 때문이거나 또는 외부에서 그 영역을 바라보는 낯설은 시선 때문이었을까? 더군다나, 제목부터가 ‘종말’이니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이 종말에 이르렀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서 기인한다. 핵심적인 문제들은 이미 모두 대답된 것 아닌가? (100년 전에도 이런 질문이 있긴 했지만), 궁극적인 ‘만물의 이론’은 존재하는가? 그 답을 찾을 수 있는가? 답이 구해진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음 세대에도 대발견이 있을 것인가? 오늘날 과학은 하찮은 문제 해결과 기존 이론에 세부 사항만 추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과학은 스스로에게 한계를 지우고 있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속도에, 양자역학은 미시영역의 확실성에, 카오스 이론은 예측 가능성에, 괴델 불완전성의 정리는 완전한 수학적 기술에, 그리고 진화생물학은 우리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생물학자 건서 스텐트 [황금기의 도래 : 진보의 종말에 대한 고찰, 1969], 생물학자 벤틀리 글래스 [과학 : 끝없는 지평선 또는 황금기?, 1971], 물리학자 레오 카다노프 [힘든 시기, 1992]로 이어지는 이러한 고찰을 주제로 40명 이상의 석학들과 기꺼이 싸움을 벌인다. 그 분야도 철학, 물리학, 우주론, 진화생물학, 사회과학, 신경과학, 케이오플렉서티, 한계론, 과학적 신학, 기계과학에까지 이른다. 그 과정에 저자 본인의 도덕적 판단, 논쟁, 개인적 입장을 스스럼없이 추가한다 (저자 서론에서 밝혔듯이, 지식의 한계에 대한 단정들의 근저에는 결국 개인 특유의 판단이 개재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마지막엔 물리학자 프랭크 티플러의 ‘오메가 포인트’와 관련하여 ‘신의 공포’라는 저자 개인의 가설까지 제안한다.

이 숲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긴 했지만, 그 시선을 일부러 못 본 척하고 애써 무시하고 싶어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미 벌써 그 논지에 세뇌(?)당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뭐라도 반박 논리를 찾아야 한다는 어쭙잖은 의무감을 느낀다.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과학 이외 다양한 영역에서의 비판과 비난 그 자체도, 역시 사색적이고 탈경험적인 방식으로 제자리 돌기를 한다는 점에서 저자가 말하는 ‘반어적 과학 ironic science’과 마찬가지 형편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반대로 던져 보면 어떨까? 음... 이건 비판을 위한 비판 수준밖에 안되겠다. 논리가 안 만들어지면 다짜고짜 우기는 게 장땡이다..^^; 물리학 대부 파인먼이 한 말에 무작정 기대어 본다. “They are 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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