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종말
존 호건 / 까치 / 199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내용을 과학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가 본 최초의 과학철학서가 되겠다. 절대 ‘철학’과는 친하지 않지만, 흔히들 하는 표현으로 나무에서 벗어나 숲을 한번 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또는 어쩔 수 없이, 나무만 잔뜩 챙겨오고 말았다. 익히 들은 적이 있는 과학자들의 업적과 그 이론 설명 부분에다만 밑줄을 쫙쫙 긋고는 (일부러 더), 그것들로부터 저자가 끌어내고자 했던 철학적(?) 논의 부분은 대충 눈길만 한번 주고는 휙 건너 뛰고 말았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양 화들 짝 놀라서는... 스스로가 속한 영역에 대한 아집 때문이거나 또는 외부에서 그 영역을 바라보는 낯설은 시선 때문이었을까? 더군다나, 제목부터가 ‘종말’이니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이 종말에 이르렀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서 기인한다. 핵심적인 문제들은 이미 모두 대답된 것 아닌가? (100년 전에도 이런 질문이 있긴 했지만), 궁극적인 ‘만물의 이론’은 존재하는가? 그 답을 찾을 수 있는가? 답이 구해진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음 세대에도 대발견이 있을 것인가? 오늘날 과학은 하찮은 문제 해결과 기존 이론에 세부 사항만 추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과학은 스스로에게 한계를 지우고 있다. 특수상대성 이론은 속도에, 양자역학은 미시영역의 확실성에, 카오스 이론은 예측 가능성에, 괴델 불완전성의 정리는 완전한 수학적 기술에, 그리고 진화생물학은 우리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생물학자 건서 스텐트 [황금기의 도래 : 진보의 종말에 대한 고찰, 1969], 생물학자 벤틀리 글래스 [과학 : 끝없는 지평선 또는 황금기?, 1971], 물리학자 레오 카다노프 [힘든 시기, 1992]로 이어지는 이러한 고찰을 주제로 40명 이상의 석학들과 기꺼이 싸움을 벌인다. 그 분야도 철학, 물리학, 우주론, 진화생물학, 사회과학, 신경과학, 케이오플렉서티, 한계론, 과학적 신학, 기계과학에까지 이른다. 그 과정에 저자 본인의 도덕적 판단, 논쟁, 개인적 입장을 스스럼없이 추가한다 (저자 서론에서 밝혔듯이, 지식의 한계에 대한 단정들의 근저에는 결국 개인 특유의 판단이 개재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마지막엔 물리학자 프랭크 티플러의 ‘오메가 포인트’와 관련하여 ‘신의 공포’라는 저자 개인의 가설까지 제안한다.

이 숲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긴 했지만, 그 시선을 일부러 못 본 척하고 애써 무시하고 싶어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미 벌써 그 논지에 세뇌(?)당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뭐라도 반박 논리를 찾아야 한다는 어쭙잖은 의무감을 느낀다.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과학 이외 다양한 영역에서의 비판과 비난 그 자체도, 역시 사색적이고 탈경험적인 방식으로 제자리 돌기를 한다는 점에서 저자가 말하는 ‘반어적 과학 ironic science’과 마찬가지 형편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반대로 던져 보면 어떨까? 음... 이건 비판을 위한 비판 수준밖에 안되겠다. 논리가 안 만들어지면 다짜고짜 우기는 게 장땡이다..^^; 물리학 대부 파인먼이 한 말에 무작정 기대어 본다. “They are 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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