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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양식의 과학 ㅣ 경문수학산책 8
케이스 데블린 지음, 허민 외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1996년 8월
평점 :
품절
제목 얘기부터 해야겠다. 기하학의 그리스 시대 이래로 19C 수학은 수, 형태, 운동, 변화, 공간 등에 대한 연구와 그 도구에 대한 연구로 발전된다. 현재 수학의 정의는 어떤 ‘양식patterns’에 대한 연구로 의견일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추상화’쯤 되겠다. 수학의 토대를 형성하는 수, 점, 선, 평면, 곡면, 기하학적 도형, 함수 등 그 어떤 것도 물리적 실재가 아닌 인간의 정신에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글쎄~
책 내용은 정통 교과서적的이다. 어설픈 비유나 수학자 주변 잡기 등으로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나간다. 그래서 이미 중고등학교 수학에서 봤던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다만 그것들에 이런 제목이 있었는지를 몰랐던 게다. 명제/술어 논리학, 칸토어 집합론, 카발리에리 불가분량의 연속 기하학, 복소 계수 방정식에 관한 대수학의 기본정리, 유클리드 기하학, 테카르트 좌표 기하학, 대칭 변환 등등. 물론, 이것으로 끝이면 섭섭하다. 한 단계를 높여서 공부가 계속된다. 소수 판정과 소인수 분해가 암호와 연결되는 과정 [제1장 셈], 공리 체계에 대한 형식주의를 의도했던 힐베르트 계획과 그 꿈을 깨뜨린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제2장 추론과 전달],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그리고 복소 해석학까지 [제3장 운동과 변화]. 특히 3장에선 제논의 수수께끼 (화살, 아킬레스의 역설) 같이 심오하면서도 흥미거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와 자연수→미적분→무한→복소함수→자연수로 돌고 도는 수학 역사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아직 아니다. 이제부터가 알짜다. 쌍곡 기하학과 구면 기하학의 무모순성은 우리의 직관을 넘어 당혹케 한다. 게다가 차원을 기하학이 아니라 자유도로 간주하면 상상의 나래엔 끝이 없다 [제4장 형태]. 대칭 변환의 결합법칙, 항등원/역원의 존재가 갈루아의 군론과 연결되어, 주어진 방정식이 근호에 의해 풀릴 지를 판정할 수 있게 한다. 브라베 14격자에서 발전된 리치 24차원 격자는 디지털 통신 기술에서도 응용된다 [제5장 대칭성과 규칙성]. 위상 수학 (모서리 개수, 가향성, 오일러 표수), 클라인 병, 리만의 다양체, 프앵카레 대수적 위상 수학, 매듭이론에서 위튼의 위상적 양자장 이론 (초끈이론, 이 책에선 초줄로 번역, 이젠 물리와 수학의 짬뽕이다) 까지의 이야기는 숨가쁘다 [제6장 위치]. 여기까지 오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증명할 수 있다. 1993년 와일즈가 발표했지만 오류가 발견되어 1995년 재출판한다. 이 책이 쓰여진 것은 1994년이라 앞 부분 얘기만 나온다.
저자는, 수학의 전반적인 구조를 ‘단순화→양식의 발견→공리화→추상화→공식화와 증명→타영역과의 관계’ 단계로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과정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또한, 수학의 추상적 개념들이 미처 의도하지 않았던 물리, 화학이나 디지털 공학등에서 전용轉用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저자는 이것을, 수학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앞서 선도하는 예라 자부한다. 아닌 게 아니라 동시대에 자신의 업적이 실재에 응용되는 것을 보는 수학자의 기분은 짜릿하겠지? 동시대라는 조건이 한계가 되겠지만! 그런 면에서 뉴턴은 직접 수학을 만들고 물리에 써 먹었으니 참 대단한 양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