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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지혜
셔윈 널랜드 지음, 김학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한 달이 넘게 코가 심하게 막혀 고생하다가 큰 맘 먹고 병원에 갔더니, 비염이라며 간단한 처치와 주사, 약 처방을 해주었다. 그 다음날 아침 코에서 큼직한 피딱지가 나오더니만 시원하게 뚫려 버렸다. 이 책에서 얻은 짧은 지식으로 추정컨대, 약간의 외부 도움을 시발점으로 해서 히스타민에 의한 모세혈관 팽창, 백혈구의 대식작용, 피브리노겐의 혈액응고 과정, 섬유아세포 유입에 따른 반흔조직 형성 등 일련의 염증 반응과 자가 치료가 진행된 것일 게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몸의 지혜’이다.
비염 정도는 약과이다. 거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몸도 적당한 처치가 제때에 이루어지면 놀라운 항상성을 이루어낸다. 저자는 외과 의사답게 그 생생한 응급 현장을 손에 땀을 쥘 만큼 생생히 서술해낸다. 그리고는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의학지식을 알려준다. 무슨무슨 호르몬, 신경계, 무슨 조직 등등. 의과생들도 질려 하는 그 많은 의학 용어들을 우리가 굳이 외울 필요도 없고 버겁기만 할 테지만, 내 몸 안의 일을 어느 정도는 과학적으로 감을 잡아 볼 수 있겠다. 계속해서, 저자 자신의 관점과 철학을 설파한다 - 이런 추상적이고 줄줄이 늘어지는 만연체의 문장을 깔끔하게 번역하기가 쉽지않다는 것은 인정해주자. 각 장마다 생생한 현장, 전문 지식, 개인적 사상,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몸’에 대한 저자의 인식을 좀더 들여 다 보자. 결국은 75조나 되는 세포들이 여러 신호 분자에 의해 행동하고 반응함으로써 우리 몸의 근본적인 항상성과 풍부한 탐색이 유지된다. 매혹적이고 신비하겠지만 이는 그저 원자, 분자, 에너지의 교환이라는 물리/화학의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고 환원주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고, 생물학적인 부분들의 총합 이상의 아직 발견되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또 그렇다고 구닥다리 생기론生氣論을 다시 꺼내 드는 것도 아니다.
틀림없이 저자는 기계론적인 관점에 서 있지만, 그 다양한 물리화학적 현상의 기원과 통합을 보면, 각 기관 부분 부분이 조정되어 전체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을 보면, 분자 상호 작용의 결과이지만 그 자체를 뛰어 넘어선 ‘마음’이란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오랜 논쟁의 역사처럼 저자도 중간의 애매한 입장인 듯 하다.
여하간에 나로서는 그저 코가 시원하게 뚫린 것이 신날 뿐이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연하면서도 참 신비한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