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397' 무슨 숫자냐고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CM멘트도 있지만 이렇게 눈 앞의 숫자로 보니 많긴 많네요. 다름아닌 메르타 안데르손을 비롯한 소위 '노인 강도단' 이라는 국적불명의 단체를 조직하여 스웨덴의 국보급 그림을 슬쩍했던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에 등장하는 다섯명의 주요인물들 나이를 합한 숫자입니다. 거의 4백살에 가까운 세월의 축적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라는 아우라가 느껴질 정도의 숫자이기도 하죠.  이 숫자는 인간의 생물학적 신체지수 (몸) 를 나타내는 숫자이지만 (즉 다시말해서 노후화가 되어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할 세월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죠) 반면에 그만큼 세월의 인내와 지혜 그리고 인생의 축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하죠. 인간에게 몸이라는 형이하학적 (하드웨어적) 이라는 실체는 아주 중요한 삶의 근원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매번 몸이라는 하드웨어에 집착아닌 집착을 할 수 밖에는 없는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를 부정하는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고요. 고령화라는 용어가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는 지금, 우리에게 온전한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이런한 하드웨어를 온전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시기다 대두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소프트웨어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작품이 바로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메리타 할머니 시리즈이고요, 우리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진정한 하드웨어 즉 몸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는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의 버전 두번째 작품입니다. 버전1 에서 독자들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친근한 케릭터들을 대면하게 되죠. 메르타 안데르손 (79세) : 노인 강도단의 리더. 합창단을 함께하던 친구들과 요양소를 벗어나 노인 강도단을 만든다. 오스카르 크루프 (78세) : 닉네임 <천재>.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타고난 발명가. 기계를 조립하고 개조하는 취미가 있다. 비록 지금은 전동 휠체어를 개조하는 신세지만 젊은 시절 탔던 오토바이를 그리워한다. 사실상 노인 강도단의 브레인 역활을 한다. 안나그레타 비엘케 (81세) : 전직 은행원이자 암산의 여왕. 웃을 때 말 울음소리를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베르틸 엥스트룀 (82세) : 닉네임 <갈퀴>. 정원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한때 선원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서 스티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스티나 오케르블롬 (77세) : 노인 강도단의 막내. 항상 차림새에 신경을 쓰며 뛰어난 수채화 솜씨를 가지고 있다. 문학 작품이나 속담, 명언을 자주 인용한다. 여성과 노인은 차이가 없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한다. 이렇듯 메르타 할머니와 그의 조력자들은 나이라는 숫자와는 정말 딴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듯이 종행무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련의 행위들과 감칠맛 나는 멘트를 쏟아냅니다. 각자의 개성에 정말 너무도 어울리면서 거의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서사 그 자체만으로도 흥민진진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않을 재간이 없어지죠.


         1탄에 이어 이번에도 메르타 할머니 일당은 그야말로 보통 사람으로는 짐작할 수 도 없을 만큼의 기상천외한 발상을 시도 하죠. (달리 보면 메르타 할머니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기상천외한 상상을 사정없이 실천으로 옮긴다는 그 자체입니다. 생물학적인 나이로 보더라도 이들 노인네들보다 창창하다는 젊은것들도 감히 상상에만 만족하는 것들을 이들은 그야말로 질러버린다는 설정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동안 사랑방 뒤켠의 한 자리만 잡고 있고 다소 고지식하면서 불통의 대상 정도로만 인식되었던 노인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180도 뒤 흔드는 그 자체이면서도, 왜 이들처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에 대한 명쾌한 해석으로 봐도 틀리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나스 요나슨의 <창문넘어 도망간 100세 노인> 이라는 작품을 시초로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장르로 자리매김한 노인모험소설 장르는 아마도 전세계적인 고령화 열풍이라는 새태와 맞물려 그 인기가 더해지는 현상이지만 굳이 고령화라는 패러다임을 제거하더라도 어느 시대인건 충분히 어필될 수있는 소재와 사회적인 이슈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장르라는 뒤늦은 발견을 하게 되죠.  


          무엇보다 '다이아몬드' 와 '라스베이거스' 라는 부와 명예 그리고 양극화의 상징을 대두시키면서 작가는 이번 작품 내러티브의 근간을 어렴풋이 독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출발합니다. '다이아몬드' 는 예로부터 부의 상징으로 인류에게 많은 환상을 심어주었던 근원적인 심볼이고 이에 반에 '라스베이거스' 는 아메리카드림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인지되어 있죠. 작가는 다름 아닌 이 두가지의 거대한 심볼을 마치 하찮은면서도 손쉬운 분리수거처럼 격하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드웨어의 년식이 거의 4백살가까이 된 노인들에게 취급되는 소소한 일상의 소일거리처럼 전락시키므로서 부의 상징이자 양극화의 표본에 대한 정면 도전을 실행합니다. 이러한 설정과 스트럭쳐는 이번 작품 역시 작가의 사유가 기초공사에서 만큼은 확실히 다져지고 있고 충분히 그 힘이 내제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작가는 이러한 사회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인생의 선배 격인 나이 든 노인들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고 이와 동시에 인간은 하드웨어 즉 몸 이라는 고착화된 개념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판 홍길동을 연상케할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풀어가는 포복절도할 설정들과 서사들 여기에 이보다 안성맞춤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장인물의 캐스팅 그리고 이를 마치 실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왠지모를 설득력과 이를 기반으로 둔 내러티브의 매끄러움이 독자들을 웃겼다 울렸다 하면서 대리만족의 기쁨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복지' 와 '분배' 라는 다소 무겁지만 거역할 수 없는 담론이 기저에 깔리면서 단지 노인모험소설이라는 어드벤쳐 같은 스피드와 스릴러를 선사함과 동시에 정말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단지 고령화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더불어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거리를 독자들 스스로 찾아가게끔 하는 기저가 있는 일종의 사회고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몸이라는 하드웨어의 년식이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에 대한 일종의 도발이자 그 하드웨어의 년식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속편은 원판보다 떨어진다는 속설을 무색케 하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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