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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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인 <모방범> 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선보였지만 실상 많은 부분에서 후속작이라는 느낌이 거의 주고 있지 않는 작품입니다. <낙원> 은 전작 『모방범』 에서 출연했던 프리랜서 작가인 마에하타 시게코가 다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수년의 시간이 흘러지만 연쇄 살인범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마에하타 시게코의 심리적인 상태와 그로 인한 세상과의 담 쌓기등 일련의 『모방범』사건이후 마에하타 시게코에게 벌어졋던 에필로그 비슷한 이야기에서 출발하는데요. 원낙 전작인 『모방범』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지니고 있는 독자들의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겟지만 이번 작품 <낙원> 엄밀히 따져보게 되면 전혀 다른 범주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이코메트리' 라는 일종의 예지력 같은 존재가 단초가 되어 한 집안의 슬픈 죽음 이야기가 포커스가 되는 작품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사연과 그 사연을 둘러싸고 하나 둘씩 밝혀지는 또 다른 진실의 등장과 공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한데 뭉쳐져서 독자들을 작품세계로 맘껏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터치감과 등장인물의 현실성 있는 심리묘사 그리고 치밀한 사건들의 연관성과 그 해법을 맛보게 되는데요. 무엇보다 작중 화자이자 교통 정리자이기도 한 마에하타 시게코의 시각 (상당히 객관성을 담보하는 듯 하면서도 독자들의 울분을 적절하게 풀어주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으면서 전작 모방범에서 보여주었던 행동보다 상당히 성숙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으로 사건 전반을 바라보게 하는 탁월한 설정과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작인 『모방범』과는 사뭇 다른 비중과 접근법으로 등장하는 마에하타 시게코는 한번의 아픔을 겪은 경험으로 인해 이번에는 상당히 노련하고 원숙함을 보이면서도 사건 관계 당사자들의 들어내기 꺼려하는 상처마저도 어루만져 주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죠. 여기에 독자들의 답답함과 울분을 적절하게 해결해주는 멘트와 재치를 보여주면서 사뭇 답답하게 느껴질 사건 전개의 흐름을 상당히 완화시켜주는 역활도 자연스럽게 수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이한점은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메인 사건의 경우는 상당히 오랜시간 즉 범죄용어로 공소시효가 지난 이후 세상에 드러남으로써 사건의 해결에 많은 장애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건이죠. 그렇다보니 사이코메트리라는 결정적인 단초가 다소 현실적이지 않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어쩌면 의도된 설정으로 봐야할 듯 한데요. 이후 이 사건과 얽혀 있는 범인의 현재를 예단할 수 있는 또 다른 스모킹건의 역활을 하기 때문에 미야베 미유키 입장에서는 부득이한 선택이지 않았나 싶네요) 그 이후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은 반대로 극히 현실적인 느낌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15여년전의 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추적해 가면서 많은 주변인물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연관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통해서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는 재미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서두에 범인이 확정되어져서 범인의 색출을 위한 추리와 스릴감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역으로 왜 부모가 자식을 죽였을까? 라는 행위에 대한 접근이 전면으로 부각되면서 인간 본성과 그에 얽힌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하나 하나 체크해 나가는 방식이 왠만한 추리스릴러보다 더 스피드하고 긴장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서사성과 연관묘사등이 이런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있기에 가능하겠지만요. 전체적으로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 지향적인 서사방식에서 독자들 나름의 추리방식과 사건의 접근방식이 절묘하게 조화되는 일체감을 맛보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합니다. 작품 전체가 풍기는 뉘양스는 전작의 『모방범』 처럼 속도감 있는 스릴러라고는 볼 수 없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를 적절하게 서사함으로써 왠만한 스릴러작품의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한편으론 자식을 죽여야만 하는 부모의 심정, 그리고 정말 뻔뻔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인간들 내면의 심리상태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참 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할 수 있겠네요. 이번 작품 역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사회파적인 추리와 인간 본성에 내제되어 있은 근원적인 심리상태등을 적나라하게 표방하면서도 작품 전체가 갖고 있는 내러티브의 탄탄한 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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