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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행복한 탐정 시리즈" 2편인 <이름 없는 독> 을 대면했습니다. 워낙 수려한 스토리텔링기법을 갖추고 있는 작가라 이번 작품 역시 내러티브의 향연에 흠뻑 젖어서 작품을 끝냈던 것 같네요. 사실 이번 작품을 시작전까지 망설였던 부분이 많았는데요. 전작이었던 <누군가> 라는 작품에서 받은 뉘양스가 그다지 구미가 확 당기지 않았기에 더욱 더 주저하게 되었던 것 같네요. 특히나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주인공이 갖추고 있는 성격이나 설정등이 영 탐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사건해결사로의 스마트한 추리력이나 절제된 감정조절능력, 과감한 행동등 무엇하나 제대로된 점을 찾지 못하였기에 더욱 더 애착이 가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너무 임팩트가 약한 사건과 맞물려서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자들의 여념을 눈치라도 챈것인지 아니면 버전 1은 원래 이렇게 다소 소프트하게 출발할려고 했던 것인지 몰라도 미야베 미유키가 이번에 선보인 버전 2 <이름 없는 독> 은 제목자체에서 부터 다소 강한 뉘양스를 시사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막상 작품속으로 들어가면 전작에 비해 상당히 달라진 설정들과 스토리의 흐름에 다소 놀라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작품의 태제는 이미 제목에서 반이상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데요. 바로 '毒' 이라는 테제입니다. 우리는 '毒' 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떠올리때 자연스럽게 온몸의 감각이 한 곳으로 몰리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기 마련이죠. 그 만큼 '독' 이라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진화론적으로 자연스럽게 자기방어의 기제를 불러오는 객체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 많은 '독' 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버섯을 비롯한 식물들이 품고 있는 독, 살모사와 거미를 비롯한 동물들이 지니고 있는 독. 이렇게 '독' 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자연스러울 정도로 우리 주변에 널려 있고 우리는 인지하던 하지 않던간에 이러한 치명적인 '독' 들과 더불어 진화해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독' 을 지니고 있는 생명체를 유심히 보게되면 자연계 나름의 공통의 법칙과 운영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먹이 피라미드의 최하층에서도 부터 중간 포식자까지 절대 상위 포식자의 레벨에 이르지 못한 수많은 생명체들은 '독' 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옵션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위대한 자연은 형평이라는 전제를 위해 이들 약자에게 '독' 이라는 선물을 선사했는지도 모르죠. 뭐 이런 거창한 담론을 차치하더라도 '독' 이라는 아주 불량스러운 테제는 인간에게 어떠한 형태를 뛰더라도 위협스럽고 터부시되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毒' 이라는 것을 왜 우리 인간에게는 생성할 수 없도록 만들어 졌을까라는 의문도 살짝 들죠. 최상위 포식자급들이 사자나 호랑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거대한 근육이나 강철같은 이빨이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죠. 달리 생각하면 '毒' 이라는 존재는 해악을 끼치는 역활과 동시에 어떤 세계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역활도 수행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흔히 우리는 '독' 에 감염되었을때 해독제로 치료하게 됩니다. 물론 그 독의 정확한 정체를 알아야겠지만요. 그래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독은 나름의 치료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면에서 그다지 무섭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인간을 두렵게 하는 독은 다름아닌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독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달리 표현하자면 '독' 이라는 자체가 사람 그 자체를 지칭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 입니다. 이런의미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이번 작품 <이름 없는 독> 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이름으로 정의할 수 없는) 악의적인 본성을 터치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독에는 그 나름의 해독제가 존재하듯이 작가는 인간에 의해 상처받은 '독' 역시 인간의 마음 즉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다름아닌 해독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죠. 그 마음(해독제)의 크기는 상관없이 그 마음 씀씀이 자체가 사람의 독으로 상처 받은 이들에게는 즉효약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할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주인공 역활을 하는 사건 해결사 '스기무라 시부로' 라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애정을 갖게 한다는 점인데요. 전편 <누군가> 에서 보여주었던 한 없이 착한 이미지의 사건 해결사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사실 이번에도 한 없이 착하게 나오고 한단계 이상의 업그레이된 면모를 확인할 수 있죠) 사건해결사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행복한 탐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중요한 인물 역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면서 사건 해결사로 등장한다는 설정자체에서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이미 감지했겠지만 두 가지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지탱한다는 자체가 난센스일 수 있습니다. 대게의 사건 해결사들은 사건쪽에는 탁월한 촉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만 개인 사생활의 영역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밖에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기 때문이죠. 대표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가와교수나 가가형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충분히 공감이 가죠.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가 전면에 내세운 행복한 탐정 스기무라는 그야말로 두가지를 능숙하게 해처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능숙하다는 표현보다는 일반인이 보더라도 전혀 엇박자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왠지 그 엇박자들이 묘한 일체감과 조화를 이르고 있기에 더 애착이 가는 인물로 다가옵니다. 엄청나게 나이브한 면에서 우리는 동정과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고 어리숙한 추리나 행동에서 강한 현실감과 유대감을 절로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건 해결사라는 타이틀보다 친근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 다가오기에 더욱 더 '스기무라' 라는 인물에 대한 애착이 커지고 뇌리속에 깊게 각인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미야베 미유키는 작품의 전반적인 컨셉트와 가장 어울리는(아니 필연적으로 어울릴수밖에 없다고 봐야죠) 인물인 스기무라를 중심으로 작가가 표방하는 테제에 가장 조화된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