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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그릇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미 국내독자들에겐 더 이상 낮설지 않는 작가죠. 그들의 유려한 스토리텔링 기법이나 기존의 본격 추리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중심의 추리전개로 인해 사회파 미스테리라는 영역을 대중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대표적인 작가로 출간 되는 작품마다 거의 매번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고 있는 작가들입니다. 이 두 작가의 공통점은 전문작가를 본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도 있겠지만 다양한 사회전반의 이슈들과 이러한 이슈들이 인간 심성 본연에 미치는 영향을 등을 최대한 작품의 태제로 삼아 추리스릴러장르를 휴먼드라마계열로 치환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이 있는 작가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실은 이 두 작가의 오마주는 다른 곳에 있었더라구요.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인데요.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미야베 미유키나 하기시노 게이고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던 작가입니다. 가정형편상 막노동판에서 출발한 그는 출판사의 직원으로 탐정소서에 눈을 뜨게 되는 계기가 되었듯이 전문적인 작가 수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점등이 그의 작품에서 국한된 소재가 아니라 다양한 인생살이의 제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을 쏟아내는 이력을 가진 작가입니다. 무엇보다 일본내에서 거의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파 미스테리라는 장르의 원조이자 시원으로 추앙받는 작가라는 거죠. 시대상 미야베나 히가시노보다 상당히 앞선 시대이기에 약간의 시대상에 대한 고전적인 추리기법내지는 여백의 박진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가지고 작품을 대면하게 되는 설레임도 작용하고요.
<모래 그릇> 는 작품의 제목만 얼핏보게 되면 왠지 허무한 인생살이 내지는 가장 기초적인 인간관계의 부재에서 오는 사상누각 같은 공허감이라는 느낌마저 자아내면서 왠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을 언뜻 떠올리게 합니다. 이번 작품은 사회파 미스테리의 시원을 연 작품으로 평가되면서 기존의 본격 추리작품과는 사뭇 다른 정말 다른 느낌의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는데요. 작품의 배경은 1960년대 일본의 도약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을 통한 고속 성장기에 접어든 일본사회와 그로인한 신구세대의 갈등... 이런 거대 담론이 작품 기저에 깔려있고 여기에 인간 본성의 탐구하는 테제가 양념을 가해 한판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연륜을 감안하여 대해야할 작품으로 현대 사회파 미스테리의 작품들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다소 실망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속도감이나 서스펜스 그리고 다양하게 설정된 트릭이나 결말의 대반전 같은 극적인 요서 내지는 엔터테이먼트같은 효과는 눈이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인데요. 그야말로 전원적인 풍의 잔잔한 내러티브의 속도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마치 여행 에세이를 대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올만큼 고요하고 심적인 부담감 없이 내러티브가 일관되게 전게되는 점입니다. 처음 작품을 대하면서는 이해가는 부분이지만 결말부분으로 칫닫게 되면 달라지겠지라는 생각마저 여지 없이 무시하고 시종일관 소프트하게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점이 눈에 들어오죠. 기존의 추리스릴러(현대의 추리스릴러라고 해야 더 맞겠죠)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드라이한 맛과 상당히 다른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고 할까요. 아주 인간적이면서 목가적인 분위기와 맛을 느끼게 하여 정작 추리스릴러장르일까라는 의아심마저 갖게 하는데요. 사실 사건과 관련된 내용들만 제거하면 한편의 목가적인 휴먼드라마에 가깝다고 해도 무방할 듯이 작품 전반에서 풍기는 뉘양스는 정말 부드럽게 다가온다는 거죠. 여기에 이마니시라는 사건 해결사의 특징 또한 유니크한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기존의 사건해결사와 완전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냉철한 판단력과 스마트한 추리력 그리고 작품 전반을 사로잡는 카리스마 여기에 외모적으로도 봐도 독특한 주인공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여기에 등장하는 이마니시는 이러한 사건해결사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흔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동네 순경아저씨같은 느낌, 오지랖이 넓으면서도 그다지 스마트하지 않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식사는 해야하는 인물, 출장갈때 출장비를 걱정해야 하고 하이쿠를 읊조리기도 하고 아내와 아들에 대한 평범한 걱정과 배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평범한 회사원을 보는듯한 캐릭터 설정을 보게 됩니다. 이게 바로 이번 작품에서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듯 한데요. 이런 평범한 회사원의 이미지를 가진 이마니시가 사건을 풀어가면서 작품 전반이 마치 그와 딱 맞아 떨어지는 속도감(물론 시대적 배경이 그렇다보니 급행열차를 타고 전차를 타고 편지로 정보를 공유하는등 속도감 자체가 떨어질수 밖에 없겠지만요 오히려 이러한 부분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더 애달게 하고 있다는 것죠. 대충 갈무리해도 무방할텐데 굳이 이렇게 미주알 고주알 나열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지 말입니다) 과 더불어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완벽한 조화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만에 하나 여기서 이마니시가 아닌 다른 인물(좀더 스마트하고 빠릿한 인물이라면)을 주인공을 등장시켰다면 이번 작품은 그 빛이 반감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마저 갖게 하죠. 그만큼 마쓰모토 세이초는 작품이라는 커다란 그림에 딱 알맞는 속도와 그 속도를 줄곧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을 적절하게 배치했다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품의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면 큰 오산 입니다. 추리 스릴러가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은 다 두루두루 겸비한 작품으로 그 설정이나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결말부에 이르러 윤곽을 들어내는 범인의 실체만 보게 되더라도 절로 독자들의 고개를 수긍해할 정도로 스토리의 짜임새가 탄탄하게 직조되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범인의 실체는 가히 압권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듯합니다. 생각지 못한 또 다른 범인의 등장을 통해 왜 잔잔하게 추리를 해나갔을까란느 물음에 해답을 찾게 되기도 하고요. 여기에 작가는 정말 다방면의 지식(음악, 과학, 미술등)을 통해 사건의 추리와 트릭설정등 현대적인 미스테리물에 결코 뒤처지지않을 수 많은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는 것이죠. 현 시점에서 잘나가는 추리작가의 작품이라도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산재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추리의 즐거움과 여행에세이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의 스트럭쳐에 이마니시 같은 사건해결사의 등장으로 작품 전반이 아주 맛깔스러운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거장의 힘이지 않을까 싶네요.
무엇보다 사회파 미스테리의 근원으로 당시 시대상의 냉철한 비판과 인간 본성에 대한 반성등이 등장인물 개개인의 특성에 녹아나 있다는 점이 특이한 부분인데요. 뭐 특별하게 하나의 태제를 선정하여 부각시키는 기법이 아니라 그냥 작품전반에 등장하는 인물들 하나하나의 특성에 맞추어 당시의 사회문제와 그로인한 인간관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미야베 미유키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평하면서 범행의 동기와 사회적 배경이라는 새로운 시점을 도입했다는 찬사를 보냈죠. 이 말처럼 그의 작품속에는 사건의 동기와 그 사건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들이 마치 인과관계처럼 방사형으로 펼쳐져 있고, 그러한 태제에 대한 추리적인 접근으로 인해 사회파미스테리라는 새로운 영역을 열고 있습니다) 이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들이 시대를 뛰어넘어 작금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가지게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