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4
윌리엄 골딩 지음, 안지현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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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 수상자 윌리엄 골딩은 이미 <파리대왕> 이라는 작품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인간 본성의 야만성과 도덕성 문제를 실랄하게 다루면서 작품성까지 겸비한 사회풍자소설의 백미를 보여준 작가입니다. <피라미드> 그 후속작으로 영국사회 전반에 깊게 새겨져 있는 "계급" 이라는 또 하나의 성역에 대해서 풍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올리라는 주인공이 스틸본(물론 가상의 도시죠) 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영국사회 뿌리 깊게 각인되어 있는 "계급성" 과 그로 인한 인간 본성의 왜곡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이 <파리대왕> 이라는 작품 내지는 그의 또 다른 풍자소설작품들과 비견되는 것은 기존의 우화적인 기법이나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작품과는 달리 직접화법을 사용한 사실적인 기법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다는 점인데요. 뭐 달리 보면 자전적인 성장소설을 차용한 플롯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올리(올리버)의 성장과 옥스퍼드의 진학등이 골딩의 성장모습을 재현하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피라미드> 뭐 작품명에서도 얼핏 작품의 전반적인 핵심 스토리는 대충 나옵니다. "계급" 이라는 의미는 지금 현재에도 아니 오히려 지금 현재가 더 계급적인 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입니다. 인류가 집단생활 내지는 조직적인 생활을 감행하면서 필요불가분하게 동반하게된 모티브이고요, 물론 동물들 사회에서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담론입니다. 먹이사슬인 피라미드 구조 최상층에 위치하는 이들에게 "계급" 은 "질서" 와 거의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사회풍자소설들을 접햇고 이러한 작품들 역시 거의 대동소이할 정도의 컨셉트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결말적인 부분에 이르러 아! 하고 우리의 내면을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작품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골딩의 <피라미드> 라는 작품은 상당히 이색적이고 유니크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목을 무시하고 작품속으로 들어가면 어 이거 완전 성장소설 같은데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물론 작품 여기 저기에 상당히 강력하게 팁을 주고 있지만 첫번째 스토리는 그야말로 한적한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는 올리라는 소년의 성장소설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버리지 못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군데 군데 무거운 담론의 일부가 고개를 처들고 있지만 올리와 이비 그리고 바비 사이에서는 벌어지는 촌극은 성장통의 일환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첫 경험의 서사와 성애의 묘사가 신선한 느낌을 선사하면서 무거운 담론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게 하죠. 물론 두번째 스토리도 그렇고 세번째 스토리도 첫번째 스토리와는 대동소이한 느낌을 주는것이 사실입니다. 첫번째 스토리의 연장선으로 봐도 크게 무방하지 않을 정도로 이어지고 있고 마지막 바운스(돌리시부인)의 묘지에서의 회상부분 역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조적 패러다임을 벗어나지는 않는 작품인데요. 문제는 바로 이러한 스트럭쳐가 아주 그것도 상당히 교묘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인데요. <파리대왕> 의 경우 우화적 기법 내지는 신화적인 체체의 차용으로 내러티브를 한층 가열시키면서 끌어갔다면 이번 <피라미드> 정말 노멀한 분위기 그대로 나이브한 그 자체라고 해야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서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작품을 다 읽고 한번 더 리뷰해 보면 더 이말에 공감하게 될텐데요, 올리를 중심으로 스틸본 마을에서 벌어지는 하나 하나의 소사들이 심지어 인물들이 무심코 내뱉는 단어 하나 하나에 계급의 피라미드가 그대로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보이게 되면서 깔끔한 성장소설에서 상당히 무거운 담론을 품고 있는 작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죠. 근데 말이죠 오히려 이러한 기법이나 구조가 왠지 이번 작품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가장 특색은 바로 올리라는 주인공이 드러나지 않지만 정해진 계급이라는 틀속에서 성장하면서 주변의 환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소사들을 사실적인 분위기에서 한땀한땀 그려 낸다는 점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올리라는 인물 역시 그 계급적인 구조를 그대로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솔직한 담론으로 독자들에게 어필된다는 점입니다. 계급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영웅적인 내러티브나 그 피라미드속에서 어떻게 하던 발버둥 칠려고 하는 스토리를 내장한 작품(얼핏 계급적 갈등이라는 긴장감을 가지고 스릴러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작품) 이 아닌 계급이라는 거대한 피라미드 그 자체에 순응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자체가 상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컨셉트라는 느낌을 주고 있는 점입니다. 내러티브 전반에 걸쳐 그 어떠한 긴장감(올리가 이브를 꼬시는 초반부의 스토리는 상당한 긴장감을 불러오지만요) 이나 극적인 흐름을 자아내게 하는 스토리의 반전 같은 거 하나 없이 작품을 써내는것도 실상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정도로 속도가 나지 않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라미드> 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다름 아닌 같이 한번 현실을 사실적으로 음미해보자라는 참여성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계급이라는 거대한 담론에서 살아가면서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계급이라는 자체를 제대로 이해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그 진득한 맛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작품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피라미드> 가 계측의 구조를 형상화한 도형이 아니라 어쩌면 파라오의 무덤처럼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무덤이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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