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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 개정판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5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평점 :
일본 사회파 추리스릴러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현재를 있게한 작품이 바로 <모방범> 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모방범>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왜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가 존재하며 그녀의 작품속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어느정도의 해답도 구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야베 미유키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을 선택하라고 하면 많은 독자들이 주저없이 <모방범> 을 선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요. 작품의 분량적인 면에선 상당히 부담이 가는 외형적인 볼률감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한번 손에 들기 시작하면 하드웨어적인 무게감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품의 매력속에 빠져든다는 점, 또한 이러한 작품의 매력은 가히 미야베 미유키가 아니면 실현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전달하면서 작품속으로 빨려들게 되고 작중의 등장인물들에게 강한 연대감과 더불어 묘한 일체적 희열감이 자신도 모르게 스멀스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아 역시 미야베 미유키라는 감타사를 남발하게 됩니다.
<모방범> 은 전형적인 추리스릴러장르의 ABC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자 동시에 사건의 해결과 범인의 체포를 중점으로 둔 본격 추리스릴러와는 사뭇다른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 흔히들 사회파 추리스릴러라는 장르의 작품으로 보시면 될 듯합니다. 아마도 사회파추리스릴러라는 장르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이라는 작품을 기점으로해서 명명된 신종 장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사회파 추리스릴러의 교과서 같은 구조와 내러티브의 흐름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상하지 못할 연쇄살인사건과 이 연쇄살인사건과 하나 둘씩 연관되어지는 등장인물들 그리고 사건과 전혀 무관한 제3자의 등장인물들이 내러티브 전반에 등장하면서 사건의 해결과 범인의 추적(이미 작품의 서두에 범인의 실체가 들어나기 때문에 독자들에게는 별 의미없는 설정이 될 수 있지만 극중 등장인물들에게는 어찌보면 최대한의 관심사이기도 하죠. 이러한 설정 자체가 얼핏 보면 별것없이 보이지만 사실은 독자들과 극중 인물들을 동시에 함정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역활을 하기도 합니다.)이라는 극히 전형적인 추리스릴러계열의 구도를 벗어나서 사회전반이 공감할 수 있는 이슈 내지는 담론으로 재무장된 내러티브를 이끌어 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격 추리스릴러의 비정함과 휴먼드라마의 따뜻함이 동시에 작용 그것도 상호보완적으로 양측의 대변되는 장점만을 융합해서 절묘하게 독자들의 시선과 감성을 휘어잡고 있죠. 사건의 발생과 그 해결이 주가 될 수 있는 다소 드라이한 내러티브에 사건의 원인과 그 사건이 사회전반에 미치는 파동에 그 주안점을 두고서 풀어가는 내러티브는 감성적인 멜로를 보는듯한 착각마저 불러 오는데요. 명확하게 장르의 범주적 규정보다는 작품이 담고 있는 사유에 대한 접근과 그 패러다임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연쇄살인사건을 메인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살인사건의 행위나 목적보다는 피해자(남아있는 유족들)와 제3의 방관자(매스미디어을 포함한)의 심리묘사가 양분되어 있는 작품이랄까요 여기에 가해자인 피스(아미카와)와 히로미의 심리묘사까지 더해져서 살인사건의 해결이라는 기존의 추리스릴러와 다르게 심리묘사(PTSD,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피해자(유족들) 내지는 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의 심리상태 묘사 보다 반대적으로 방관자적일수밖에 없는 제3의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묘한 이질감을 주면서도 독자들의 감정을 충분히 후벼파내는 송곳 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는 것이 <모방범> 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 옵니다. 이미 죽어버린 자의 아픔과 남겨진 자들의 또 다른 슬픔에 그들의 곁을 잠시라도 스쳐간 모든 이들의 삶을 빠짐없이 촘촘하게 그려내는 스토리의 풍성함으로 인해 한편의 휴먼 드라마를 보는듯한 착시 현상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연쇄살인사건과 그 내막 그리고 사건의 실체을 파헤치는 일련의 스릴러같은 스킬들은 막상 이번 작품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들러리 역활에 한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을 아닐것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키워드는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먼저 이세상과 하직한 자들과 그러한 충격을 고스란히 안고서 살아남아야할 자들의 심정적인 트라우마 그리고 이들과 무관한 것 처럼 보여지지만 언제가 당사자의 지위로 빠져들수있을 모든 제3자들에게 일종의 심리치유 과정을 보여주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봐야할 듯 합니다.
<모방범> 은 엽기적인 연쇄살인살건을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의 형사들과 지역 경찰, 그리고 실종되어 살해당한 여인들의 피해가족, 실종과 살인사건을 공공연히 방송하는 거대 미디어 여기에 특종을 잡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여성르포작가 그리고 빼놓은 수 없는 예측 불허의 지능적 엽기살인마... 이렇게 보여줄 수 있는 비쥬얼이 총 동원되어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구성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작품이죠. 총 감독 미야베 미유키는 이러한 출연 배우들과 가장 근접하면서도 일치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하나로 묶어 독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이 더욱 더 돋보이는 것은 다름아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상을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에 독자들의 반응이 더 뜨거울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물질만능의 시대와 인간성 사실의 시대의 단면을 민낮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번 작품은 독자들 스스로에게 외면하고 싶어하는 진실에 대해서 상당한 부분 불편한 진실을 일깨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등장인물들과 일종의 암묵적인 거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시적인 각 개인들의 심리와 이를 근간으로 한 거시적인 사회전반적인 흐름이 정말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은 단 하나의 사유인 인간성 상실과 그 회복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 뒤끝이 아주 따뜻하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자 이번 작품을 총평하자면요... 완벽한 시나리오 대본에 등장인물들의 뛰어난 연기력 여기에 감독을 맡은 미야베 미유키의 철저한 계산이 하나로 융합되어 두고두고 회자될 드라마를 창출했다는 것입니다. 자칫 아주 단순하고 범죄스릴러의 장를로 흐를수 있는 스토리를 절묘하게 물꼬를 틀어 휴먼드라마로 변형시켯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이러한 방향의 전환은 다름아닌 등장인물들의 연기력인데요. 연쇄살인범역을 맡은 피스에서부터 제3의 방관자들까지 어쩜 그렇게 자기자신에게 주여진 역활을 비정하리만큼 연기해내는 심리묘사가 정말 압권으로 각인되는 작품입니다. 철저하게 나쁜놈으로 철저하게 방관자로 그리고 완벽하게 피해자로 표현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는 어쩌면 우리 내면속에 봉인되어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의 원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됩니다. 이번 작품을 읽지 않고 미야베 미유키를 논할 수 없을듯 하고요, 지금의 미야베 미유키를 존재케하는 작품이 바로 <모방범> 이라는 단정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