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분노(憤怒);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 또는 그렇게 내는 성" 관련 어휘로는 노발대발, 노여움, 격분, 진노, 노기, 울화, 의분 등이 나열되어 있는 사전적 의미를 볼 수 있습니다. 얼핏 사전적으로 단순하게 '분노' 에 대해서 정의하게 되면 발산적인 의미 즉 내가 아닌 상대가 있어 그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능동태적인 의미로 다가오죠. 실상 흔히들 우리가 겪는 부분 역시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드러내는 감정으로 이해되는게 맞을지 모릅니다. '분노' 라는 감정은 사전적인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화' 나 '열받음' 수준이 아닌 상당한 그레이드를 갖고 있는 초 극상의 감정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러한 초극상의 단계에 도달하지 않도록 성문화된 법률의 형태나 불문화된 도덕적 관념의 자제심을 끌어들어 초극상의 단계에서 하나 둘씩 저점으로 그레이드를 낮추고 있죠.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우리에게 이러한 등급조절은 당연시 되는 부분이고요. 그렇지만 이러한 조절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일명하여 '분노조절장애' 라는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쩌면 이러한 조절장애는 굳이 '분노' 라는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서설이 길어졌는데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악인』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분노> 라는 작품을 대면하면서 새삼 '분노' 라는 감정과 그에 얽힌 여러가지 상념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네요. 작품의 제목만 놓고 봐도 많은 상념들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요시다 슈이치의 이번 작품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시작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특히나 작품의 제목이 넌즈시 던져주는 의미만으로도 이번 작품은 왠지 핏빛 낭자하고 속도감이 가득한 스릴러장르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증폭시키죠. 작품은 초반부터 의문의 부부 살인사건 그것도 상당히 충격적인 그러니까 작품 제목과 잘 어울리는 사건을 시발점으로 출발합니다. 여기에 아예 초장에 범인을 공개하고 추적에 들어가는 구조를 가진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의 형태를 답습합니다. 무엇보다 사건 현장에 피해자들의 피로 쓰여진 '분노' 라는 두 글자가 일파만파 퍼져 가면서 다양한 범행동기를 추측하는 연결고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자 그런데 말이죠 초장의 강력한 임펙트와는 사뭇 다르게 내러티브가 상당히 요상한 방향으로 진행을 하죠. 성소수자(게이), 철딱서니 없는 엄마와 세상의 풍파를 초연한 딸 그리고 애지중지한던 딸에게 다가서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그 딸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 여기에서 독자들은 상당한 당혹감에 휩싸이게 되는데요 초반의 설정이나 서술과는 180도 다른 방향의 전개와 각각의 인간군상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인간관계가 서로 맞지 않는 퍼즐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대면하게 되는데요. 갑자기 범죄 스릴러에서 인간본연의 심성을 다루는 휴면드라마계열로 급반전하게 되죠. 물론 범인의 추적이라는 추리스릴러의 일환으로 세 남자중에 하나가 범인일 수 밖에 없을 거라는 뻔하디 뻔한 설정을 인지하면서도 작가가 설정해 놓은 덪에 걸려서 허우적 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진범의 범행동기에 대한 다소 이야미스적인 면도 보이기는 하지만 큰 줄기의 내러티브에서 범인의 역활은 내면의 배신을 촉발하는 촉매제 정도의 역활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릴듯 하네요.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범인의 색출은 금새 잊어 버리고 세남자 각각이 가지고 있는 포지션에 매료되어 버린다는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여기에 등장하는 범죄 용의자 3명의 삶과 그들과 엮여 있는 사람들의 삶이 보편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요시다 슈이치의 근본적인 사유의 틀에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분노' 라는 감정의 이해에서 새삼 새로운 발견을 하게된다는 점이 돋보이는데요. 서두에서 설명했지만 '분노' 라는 감정은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전달되고 표출되는 감정으로 인지되는게 일반적인 현상인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분노' 라는 감정의 대상이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속에 숨어있는 내면의 어둠에 대한 감정의 형태라는 점에 절로 공감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산산히 조각나는 시점에서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믿지 못하는 감정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을 향해 울부짖는 형태가 바로 '분노' 라는 다소 아이러니한 그런 감정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동 빈곤층, 성적 소수자, 오키나와 미군 문제, 불법 금융의 패혜등 현대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를 골고루 다루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들을 마치 정치사회학적인 주장을 통해서 어필하기보다는 '분노' 로 대표되는 감정을 통해서 인간성 본질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고무적인 기획 의도였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가장 저변에 깔려있는 우리의 본성과 그 본성에 관한 무거운 담론을 딱딱한 순수문학의 형태가 아닌 부담없이 소화할 수 있는 엔터테이먼트적인 장르로 끌어간다는 점에서 요시다 슈이치의 필력을 느낄수도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은 '분노', '배신', '믿음', '상처' 등 인간의 깊숙한 내면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들어내면서도 전혀 삭막한 느낌을 주지않는 따뜻한 인간적인 배려의 시선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할까요. 물론 작가인 요시다 슈이치는 온전한 감정의 이해등 활자화적이고 정형적인 그런 배려의 시선을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본연의 깊숙한 심성에 대해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단지 그 불완전성을 민낮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인을 믿고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갈수 있는 시발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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