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 / 비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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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뭐 뜸들이지 말고 바로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책장뒤에 나열되어 있는 유명 리뷰어들의 현란한 찬사를 믿지 않는 편입니다. 그 리뷰어들의 찬사는 왠지 사막한가운데의 개미무덤처럼 뻔히 알고도 당하는 유혹일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그런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에 접한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는 아! 개미무덤이 아니고 오아시스일수도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봉 잡았다고 해야하나요. 영국 옵저버지는 "흠 없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어도 좋다" 라는 짧막한 촌평을 게재했는데요. 그야말로 이번 작품을 제대로 표현한 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아무리 미사어구와 스펙타클한 임펙트를 가한 문구로 표현을 해도 이보다 작품 전반을 제대로 표현한 말은 없을듯 하니까요. 그야말로 정말 흠 잡을데 없이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결론을 짓게 합니다. 전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마치 프로방스의 밀발길에 서서 서쪽에서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과 더불어 초원의 향기가 진하게 온몸에 스며드는것 같고 발길을 옮길때마다 절로 미소짖게 하는것 같은 착각, 빽빽하게 양옆으로 메세타콰이어가 줄지어 서있고 그 사이로 촘촘하면서 간간이 비쳐드는 햇살을 만끽하면서 두서없이 걸어가는 전남 담양의 가로수길 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 정말이지 그냥 그런 길을 하루종일 한번 걸어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네요. 많은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잡고 싶은 모든 것들을 걸어가는 그 순간만은 모두 내려놓고 그냥 그 길을 걷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듯이 바로 <이런 이야기>가 그런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움베르토 에코의 영향으로 인해 이태리문학이라면 섬세하고 논리정연하면서도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는 선입관을 가졌는데 이번 작품은 그런 선입관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기고 합니다. 남성인 제가 읽어봐도 이처럼 아름답게 서술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내러티브 전반의 앙상블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참 즐겁게 작품을 대면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알레산드로 바리코라는 생소한 작가의 작품이라 처음엔 다소 망설이면서 작품을 대했죠. 에코의 영향으로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왠지 모를 막연함 이거 끝까지 독파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등등... 근데 역시나 초반은 그런 선입관들이 살짝 밀려옵니다. 복합 화자의 시각과 왠지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레이싱 이야기들을 비롯하여 내러티브의 도입부는 약간(솔직히 상당히) 지루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뭐 사실 처음에 이 작품을 대면하서 초장에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든요. 그 만큼 그 동안 상당히 임팩트가 강한 자극적인 씬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러티브가 살짝 탄력을 받으면서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예열되는 구식 엔진처럼요. 특히 자동차와 레이싱을 묘사해나가는 부분이 가히 일품으로 다가오는데요(사실은 내러티브가 도입부에 자칫 잘못하면 상당히 지루하고 이게 뭔소리인지 하는 삼천포로 빠질 소지가 다분이 있는데요. 바로 이부분에서부터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요즘 FI 레이싱처럼 속도감 있는 현장을 어떻게 저렇게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정말 기가막힌 묘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작품을 조금만 더 읽게 되면 바로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는 점에서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묘사력은 상당히 인상에 남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양반의 작품은 난생 처음 접해봤지만 왠지 느낌이 오는 작가라는 생각도 들면서 주변상황이나 인물들의 묘사 그리고 상황의 묘사에 이르기까지 한편의 세밀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 한순간 한순간을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러한 묘사가 그냥 어느 형상을 터럭하나 놓치지 않고 전사하는 그런 세밀함이라기 보다는 왠지 그 묘사속에 살아있는 감정과 풍경 그리고 시대적 상황을 풍기고 있다는 점이 이 양반의 장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네요. 구체적으로 당시 일반인들에게 자동차는 상당히 진기한 물건이었고 이런 진기한 물건이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자체가 거의 이벤트에 가까울정도로 희귀했는데요. 알레산드로는 이런 일련의 묘사를 마치 당시 그 시대의 인물이 처음으로 자동차를 접했을때나 가질수 있는 감정을 그대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묘사력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사의 디테일을 살펴보자면 대표적으로 카포레토 전투의 회상부분을 들수있는데요. 저 개인적으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이후 가장 사실적이고도 사유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전쟁씬의 묘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레산드르 바리코의 서사는 참으로 가슴에 와닿다는 거죠. 우리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느꼈던 감정들 마치 현장에서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연상케 하듯이 알레산드르 바리코는 카포레토 전투의 장면들을 생중계하듯이 리얼타임으로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포탄의 비명소리와 자욱한 화약냄새, 군인들의 숨소리 심지어 그네들의 눈동자 돌아가는 소리마저 체감케 하는 듯한 묘사는 작품을 읽는 독자들을 포화속으로 끌어 당겨버립니다. 이런 볼거리를 따라 가면 독자들은 마치 자석에 끌려가는 쇳덩이처럼 전쟁에 대한 확실한 사유앞에서 그저 입을 다물 수 없게 하기도 하고요. 특히 이번 작품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전쟁, 역사등의 거시적인 담론과 사랑, 父情등의 미시적인 담론이 참으로 절묘하게 한 작품속에 녹아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그저 녹아있는게 아니라 내러티브 전반을 관통하면서 시의적절한 곳에 등장하고 그 타이밍이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죠. 바로 이러한 기법이 알레산드로 바리코만의 능력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하구요. 이러한 디테일한 서사라는 작은 줄기가 한테 모여 인생과 그 인생을 걸어가는 우리라는 커다란 강줄기로 변해 가는 과정을 부담없으면서도 사유깊게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참 그리고 여기서 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은 바로 번역의 힘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합니다. 왠만한 독자들이라면 이세욱 번역가에 대해서 잘알고 있을것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몇작품 무엇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거의 모든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사실상 국내에 베르베르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한데요. 베르나르의 작품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생동감있고 있을수 있을법한 내러티브로 국내 독자들을 사로잡기도 했지만 우리말로 맛깔스럽게 번역해낸 번역가의 역활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번작품에서 이세욱의 힘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을 것 같네요. 문학작품을 그림 그리기로 비유해보면 알레산드로 바리코 화가라는의 단어 하나 하나는 붓놀림에 해당할 것이고 화가가 붓질을 한 번 또 한번 해 나가듯 알레산드로 바리코는 단어를 하나 또 하나 덧붙여 가면서 삶의 온갖 깊이와 생동감을 담아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인데요. 여기서 문장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알 수 있듯이 알레산드로 바리코는 그림이라는 작품을 완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레산드로 바리코는 작품전체에 대하여 채색이 아니라 솜씨좋게 소묘정도만 수행하고 있고 나머지 여백을 채울 실마리는 독자들의 몫으로 던저 주죠. 색깔, 명암, 질감등 장면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정보를 독자들의 판단에 일임합니다. 그리고 이런 독자들의 판단에 가장 결정적인 역활은 번역가의 우리말 번역이라는 것을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수긍할 것입니다. 원작자와 국내독자들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역활 이상으로 독자들에게 한단계 더 나아가 차원에서 작품을 보게 하는 메신저 역활을 하는 것이죠. 작품의 전체적의 내러티브와 일맥상통하는 번역은 국내 독자들에게 상당히 크게 어필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요 왜 그런 작품들 한두번 경험해봤을 것입니다. 뭔가 내러티브와 달리 우리말로 옮겨놓은 문장들 단어들이 상호 엇박자를 널띠면서 내러티브 자체를 상당화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 오르한 파묵의 전담 번역가 이난하는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세욱의 번역을 보게 되면 그 말의 뜻을 제대로 인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연가미연하다", "씨억씨억하면서 결연하게","진둥한둥","생급스럽다","중동무이","동","줄느런" (물론 덕분에 국어사전도 한번 더 들쳐보게 되고요^^)등 평소에 접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는 어휘들 약간은 어색하고 생뚱맞은것 같지만 유심히 음미해 보면 정말 이번 작품과 딱 궁합이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런 어휘들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속에 나열되어 있었다면 과연 어떤 느낌으로 <레미제라블>은 독자들을 찾아왔을까요? 올티모의 삶을 역 추적하면서 각기 다른 화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내러티브와 레이싱과 길이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삶에 투명시키는 내러티브 자체와 너무나 잘 버무러 져서 정말 맛깔나는 식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번역가 이세욱 자신의 말처럼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이 처럼 외국작품의 경우 번역을 누가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느낌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데요. 이런 면에서 이세욱의 <이런 이야기>이 번역은 알레산드로 바리코가 전달하고자 한 의미를 제데로 국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지않나 싶네요.

 

           "그 여자는 하나의 길과 같았어요. 생뚱맞은 굽이가 자꾸자꾸 나오는 길, 돌아올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광막한 벌판으로 내닫는 길,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고 달리는 길이었어요"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볼 만한 길, 그녀는 그런 길들 가운데 하나였어요" 이렇듯 이번 작품은 내러티브를 관통하면서 참으로 많은 주옥같은 의미의 문장과 단어의 파편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동안 일본추리스릴러나 핏빛과 엔터테이먼트 요소가 강렬한 작품들을 대면했던 독자들에게 한번쯤 문학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작품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습니다. 대단원을 향하면서 왠지 예기치 못한 대반전을 기다리기 보다는 결말의 끝부분이 뻔히 보이지만 왠지 그 결말로 칫닫고 있는 시간을 붑잡고 싶은 그런 작품이면서도 이국적인 비포장 밀밭길을 질주하는 자동차안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죠. 비포장도로 요철면의 진동이 그대로 자석에 전달되고 그런 흔들림이 그대로 온몸으로 전달되면 열어둔 창으로 들어오는 향긋한 꽃내음, 그리고 엔진의 굉음과 소버에 톡톡하고 튀는 조약돌의 충격음 백밀러 뒤쪽으로 뿌연 먼지들... 뭐 상상만해도 정말 그런 길을 드라이브하고 싶어지는 바로 그런 작품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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