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열린책들 세계문학 17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인가 꼭 읽어 본다라는 생각은 강하게 뇌리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지만(그리고 책도 오래전에 서가귀퉁에 고이 모셔 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지 오웰의 <1984> 입니다. 몇해전에 일본과 국내 독자층을 강타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를 접하면서(물론 제목만 비슷하지 내용은 다르지만요 그래도 하루키의 1Q84는 자연스럽게도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하던군요) 정말 이번에는 꼭 읽어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끝내 책장 한귀퉁에 방치해둔채로 외면했던 <1984> 를 이번에야 완독해 보게 되었네요. 물론 그동안 써머리나 여러 경로를 통해서 <1984> 에 대한 계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어지만 문학 작품이란게 더욱이 故人의 작품인 경우 정말 그 작품을 읽어 보지 않고는 섣부른 평가를 내릴수 없기 때문이겠죠. 여하튼 얼마 먹지 않았지만 이 나이에 <1984> 를 이제야 읽어봤다는 안도감에 우선은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 같습니다(책줄이나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책도 안보고 뭐했냐고 하는 말에 이제 핑계거리 하나 잡았다는 생각이 위안을 주네요^^)

 

          조지 오웰의 <1984> 는 한마디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불멸의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회자될 만한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춘 작품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네요(물론 이러한 간략한 평이 늘그막에 이 작품을 대해서 면피용 발언은 결코 아닙니다). 우선 조지 오웰의 시대인 1940-1950년대에는 미래의 암울한 상(특히 도버해협 건너편에서 히틀러와 그 아이들, 동쪽 유럽으론 스탈린과 그 패거리들 그리고 동아시아에선 천황무리들 이렇게 전체주의적 트라우마가 강하게 남아 있는 시대였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체주의에 대한 걱정이 앞설수 밖에 없는 시점이었습니다)을 조명한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으로 빼어난 내러티브를 가진 명작이자 정치 권력 형태에 강한 경종을 울리는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시간이 흘러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의 모든 규정을 결정했던 냉전시대에는 그야말로 전체주의의 악을 예견했고 그 실상을 폭로한 문제작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마치 예견된 종말의 끝을 본 것처럼요. 그리고 냉전시대가 끝나고 더 이상 어느 한쪽을 악의 축으로 규정지을 수 없게 되면서 조지 오웰의 <1984>는 서서히 그 향이 잊혀져 갔습니다.(이데올로기라는 개념자체가 희석되면서 새로운 끝없는 글로벌개념과 디지털 혁명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패러다임이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1984년 <동물농장>과 함께 수능의 논술대비용 가치나 그냥 서가의 고전으로서의 역활 변화를 맞게 되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기껏해야 SF뉘양스가 살짝 묻어나오는 흥미본위로 그 값어치가독자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져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하지만 지금처럼 全지구인이 리얼타임으로 시시각각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디지털 시대에 다시금 그의 작품이 다시 재조명 받는 현상이 일어나리라는 생각,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리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지면서 절로 공감하게 되었네요. 특히 냉전시대에 대한 그나마의 아련한 기억거리가 있는 독자들에겐 아마 저와 같은 느낌에 많이 공감하리가 여겨지네요. 이런면에서 조지 오웰의 <1984> 는 60여년이라는 세월을 관통하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해주는 작품으로 남을거이고 앞으로 미래상(당시대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미래상이기도 합니다)에 대해서 충분한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농장>에서 느꼈듯이 조지 오웰의 혜안에 그저 감복할 따름입니다.

 

          빅 브라더,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이중사고, 사상경찰, 신어, 활주로가 필요없는 비행기, 핵확산의 경고, 전쟁의 진정한 목적, 과거기록의 조작등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용어나 플롯 그 자체만 보더라도 섬뜩할 정도로 지금의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왠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보는듯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네요(물론 노스트라다무스는 굉장히 추상적이게 표현했지만 조지 오웰는 정말 꼼꼼하게 들어맞는 느낌을 주네요)비록 당시대엔(냉정시대를 포함해서) 전체주의에 대한 예견으로 여겨졌지만 오히려 지금처럼 고도로 발달해가고 있는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더 딱맞는 예견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항상 다양성을 상실한 조직이나 집단의 미래는 암울했던 것이 역사적으로도 판명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 많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개별적이면서 글로벌적이라고 자화자찬 하지만 리만사태나 유럽발 경제위기 뭐 가까이 선거때면 벌어지는 양대진영의 색깔전쟁등을 바라보면서 과연 다양성을 갖추 세상을 살아가고는 있는 것일까라는 강한 의구심이 절로 들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