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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1 ㅣ 소설 조선왕조실록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TV드라마, 역사평설, 그리고 문학작품 이렇게 삼위일체로 어느 특정인물을 다루는 경우는 특별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드문 현상입니다. 그것도 지금 한창 언론매체등에 오르내려 많은 대중이 알고 있는 유명세를 타는 사람도 아니고 수백년전에 살다간 한 인간을 조명한다는 그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그 이유일 것입니다. 다름아닌 그 키워드는 '정도전' 입니다. '정도전' 사실 이 인물이 대중들에게 급속도로 알려진 계기 역시 어느 공중파 TV방송의 드라마를 통해서 일반 대중에게 알려졌죠. 그 이전만 하더라도 조선의 개국 = 이성계 라는 등식이 머리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지만 비록 드라마이지만 이 방송을 계기로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재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정도전은 조선개국의 일등 공신이지만 조선 내내 금기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조선개국의 가장 걸림돌이었던 정몽주 마저도 짧은 시간내에 신원되고 급기야는 문묘에 배향까지 되었지만 정도전의 경우 고종2년 그러니까 조선이라는 배가 침몰하기 일보직전에야 신원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는 조선사 아닌 한국사를 통틀어 가장 유니크한 인물중에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가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자리에 있으면서 창제하고 기획안 조선의 법과 기틀은 고스란히 승계, 보완되어 조선의 전 역사를 관통하였지만 유독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터부시되었을까라는 의문점이 드는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이 그러한 이유를 재상정치라고 알고 있는게 대부분입니다. 왕은 언제든지 빗나갈수 있고 만약 폐주같은 왕의 등장으로 종묘사직이 나아가 국가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경우 이를 제자리로 바로잡은 사람이 없다는 측면에서 뛰어난 재상이 정치전반을 챙겨야 한다는 사고 그 자체가 군주국가에서 쉽사리 받아들일수 없는 가이 혁명적인 발상이었기에 조선 내내 정도전의 설 자리가 없었던게 자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정치적인 시스템을 떠나서 삼봉이 추구했던 세상은 '民 ' 즉 백성이라는 키워드에 맞쳐져 있었기에 쉬이 인정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할 것입니다. 물론 삼봉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民 ' 이라는 개념을 지금의 잣대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당시 여말선초의 시대적 상황에서 그가 생각했던 '民 ' 의 개념을 제대로 봐야 수긍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역사소설의 새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김탁환의 이번 작품 <혁명-광활한 인간 정도전> 는 그의 명성답게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컨셉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게의 역사소설이라함은 특정인물이나 특정기간 전체를 아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생에서 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여기에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다소 인위적인 추임새와 역사적 사실을 뛰어넘는 픽션들이 아우러져 한편의 작품을 구성하는게 통상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겐 역사소설이 거기서 거기라는 식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것도 사실이구요. 하지만 이번 작품은 기존의 정형적인 프레임을 가감하게 벗어버리고 18일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토대로 정도전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작가는 이미 전작인 <허균 최후의 19일> 에서 이런 기법을 선보였지만 이 작품은 다소 추리가 가미되고 시간을 역순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간다는 차원에서 역사소설의 뉘양스를 크게 못느끼게 했다는 면도 있죠.
무엇보다 18일이라는 짧은 시간대를 설정한다고 하면 보통 가장 극적인 과정을 연출할 수 있는 조선개국 전후나 아니면 왕자의 난 전후를 선택하지 않고 정몽주의 시해사건을 그 정점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이 이번 작품이 표방하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결국 작가의 역사관( '民 ' 이라고 봐야겠죠)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봐야할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이 혁명의 당위성 즉 왜 혁명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고 그 중심에 정도전이 있을수 밖에 없다는 설정과 맞아 떨어집니다. 여말선초 그 시간대에 정도전, 이성계, 정몽주 이 세사람중 한사람이라도 없어더라면 과연 조선이라는 국가가 탄생했을까 아니 혁명이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정도 이 세사람은 운명의 수레바퀴처럼 딱 맞아떨어져 각자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간적 설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조선의 건국이나 왕자의 난에는 세사람중 정몽주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대이기에 오히려 극중 긴장감이 반감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상당히 큰 역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역사소설같지 않는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다시한번 작가의 기발한 구상과 설정 그리고 내러티브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옵니다. 정도전의 독백과 정몽주와 이성계와 주고 받는 서간문 형식 그리고 역사적 팩트가 적절하게 가미되고 범벅이 되어 마치 리얼타임으로 생중계되는 방송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도 들게 합니다. 여기에 짧은 시간을 설정으로 하여 긴박감과 스릴감까지 더해지면서 숨가쁘게 독자들을 몰고 가고 있죠. 작가의 매력중에 하나인 고전을 대하는 듯하면서도 현대물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단어 문장들이 이번 작품속에서도 그 빛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독자들에겐 마냥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 시킵니다. 다시한번 역사소설이라는 작품이 이렇게 쓰여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면서, 작가가 기획한 조선사를 통틀어 훓어 내려가는 차기 작품들이 상당히 기대되게 하는 잔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