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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난아 지음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내 이름은 빨강> 그리고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잘 알려진 오르한 파묵은 터키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특히 이슬람문화권의 작가로는 드물게 국내에도 많은 메니아층(저도 여기에 합류했습니다)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죠. 얼마전 출간된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로 그의 모든 작품이 출간될 정도로 국내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죠(사실 이러한 출간 자체만으로도 그 위상이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거니까요). 이러한 주목은 단지 그가 우리에게는 낯선 이슬람문화권의 작가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유명세로 인한 후광이 아니라 그의 작품속에 담겨져 있는 동서양 문화충돌에 관한 사유(대표적인 오브제이자 파토스죠.오르한 파묵의 동서양 문화에 대한 담론들이 돋보이는 이유는 어느 한쪽의 자잘못을 지적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한발자국 물러서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거죠. 몇몇 이슬람권 작가들의 서사는 다소 격하고 동적인면이 강하다면 이에 반해 오르한 파묵의 서사들은 정적인 것 같지만 그 힘의 파장은 어느 동력보다 오래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합니다)들이 독자들과 소통이라는 형식으로 공감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하고요, 터키라는 나라가 우리에겐 상당히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것도 약간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 자체에 대한 독자들의 느낌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기에 이역만리 떨어진 작가의 작품에 많은 공감을 느낄수 있지 이유이지 않을까 싶네요.
오르한 파묵의 전담 번역가 이난아씨가 이번에 오르한 파묵의 작품세계를 고찰한 책을 출간 했습니다. 제목도 아주 단순하게 <오르한 파묵> 으로 정해졌고 그야말로 오르한 파묵과 그의 작품에 관한 모든 것을 대할 수 있다는점에서 오르한 파묵의 팬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오르한 파묵에 대해선 국내 어느 누구보다도 전문가인 이난아의 작품해설과 원작가와 번역가의 이색적인 만남등 독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뒤담화까지 곁들여서 오르한 파묵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자료들이 많다는 점에서 더 반갑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르한 파묵의 출생에서 성장배경 작가로의 변신 과정등 그의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와 이러한 삶이 그의 문학세계에 어떠한 형태로 투영되었는지,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집필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르한 파묵 특유의 기획력과 고집스러운 집착등 작품 이면에서 깔려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끽할 수 있다는 자체가 보기 드문 기획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대했던 독자들이라면 약간은 의아해했던 점들을 속시원하게(?) 풀어준다는 점에서 이번 책은 눈에 띄네요. 오르한 파묵은 작품을 집필하면서 차기작에 대한 연관성을 미리 염두해 두고 등장인물과 설정들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그린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네요.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 <고요한 집> -> <하얀 성> 이런식으로 연계되고 데자뷰된다는 점, 그리고 등장인물들과 내러티브의 플롯이 오르한 파묵과 연관된 실존하는 인물들, 그리고 자신 가족사등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등 많은 부분에서 이번 책을 통해서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재정립하고 새롭게 정리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르한 파묵을 좋아하고 그의 작품 매력에 빠져있는 독자들에게 호흥이 크게 오리라 여겨집니다. 전 개인적으로 '같은 스토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스타일' 이라는 평이 오르한 파묵의 작품 세계를 적확하게 평가한다고 보여지네요. 특히 <내이름의 빨강> 이라는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관점은 포크너식의 관점을 뛰어넘어 오르한 파묵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여기에 <순수 박물관> 출간 이후 한 인터뷰에서 언급한 사랑의 정의가 기막히게 뇌리에 꽂히네요. "사랑은 교통사고입니다" 아마도 사랑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묘사하는 문장은 없을듯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 동안 읽어던 작품들과 저자가 바라보는 오르한 파묵의 작품평을 냉정하게 한번 비교해 볼 기회도 가져보게 되었구요. 그나마 큰 범주 범위내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도 내쉬게 되었습니다. 참 그리고 팁으로 출간예정 작품의 제목이 <내 머릿속의 기묘함> 이라고 소개되는데 제목만 봐도 잔뜩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서 빨리 국내에도 선보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짧은 소견이지만 걱정되는 점이 있기는 하네요. 저자인 이난아의 너무 소상하고 리얼리티한 작품 해설로 인해 출판사의 매출에 지장이 오지나 않을까라는 짧은 생각과 더불어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대면했고 그의 작품매력에 빠져 있는 독자라면 무관하겠지만 처음으로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에겐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문학작품이라는 특수성은 인문사회계열의 서적과는 상당히 다른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개인(독자)별 편차가 오차 범위를 넘어설 수 밖에 없고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사유의 강도 역시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역자의 의견이나 작품평들이 이런면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 올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다양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오르한 파묵의 작품들이 일정한 꼭지점을 향해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대면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는 선뜻 권하고 싶지 않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대면했던 독자들에게는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네요. 물론 일독을 하더라도 전제 조건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하나 하나 끝내고 나서 봤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경우도 나의 느낌과 생각을 비교해 본다는 차원에 국한해서죠. 굳이 상이한 느낌을 받더라도 내가 잘못 느꼈나? 라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말했듯이 문학작품의 편차는 클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게 정상이라는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이번 책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세계를 한층 더 이해하고 자신의 느낌과 비교해 볼 수 있는 흔치 않는 좋은 기회의 장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전반적으로 오르한 파묵에 대해서 궁금점이 많았던 부분들이 해소되었다고 할까요. 오르한 파묵만의 기획과 집필과정을 통해서 독자들과 소통할수 있을수 밖에 없는 작품이 탄생한다는 생각도 들구요. 이러한 작품을 번역하면서 단순하게 터키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게 아니라 작가의 출생,성장배경과 그의 사유 및 집필의도등을 공감하고 원작가와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고 수렴해 나가면서 번역에 임했던 이난아씨의 노력이 있었기에 작품이 더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지울수 없습니다. '번역도 또 다른 창작이다' 라는 말 100%로 수긍하게 하네요.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밀양을 선택했다는 점, <제브데트씨와 아들들> 에 등장하는 손자 아흐메트가 실존하는 화가이면서 자신의 책 표지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점, 순수박물관의 건립과정을 담은 뒷담화 등 여러모로 작품외적인 부분에서까지 오르한 파묵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