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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스토리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11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에 상당히 당혹스러운 작품(솔직히 책 제목에 배신을 당했다는 느낌이 드네요)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작품의 스트럭쳐면에서 보더라도 연속되고 통일된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이라고 보기엔 왠지 2% 부족한(솔직히 2%가 아니라 더 하지만요) 느낌이 들고요. 오히려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29장 각각이 하나의 단편을 형성하고 있다는 뉘양스가 강하게 드는 아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진짜 복잡합니다 머리속을 혼란하게할 만큼요).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만큼 많은 등장인물들(저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을때 독서노트에 등장인물의 이름과 연관관계를 필기하는데 이번 작품은 중도하차하고 말았습니다)이 등장하면서 독자들은 일대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또한 어느 특정 인물에 대한 포커스가 전혀 없고 특색적인 스포트라이트도 비추고 있지 않아 내용자체가 뒤죽박죽 섞이면서 도통 내러티브를 이해하기가 난해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작품 전반을 흐르는 작가의 사유나 담론 뭐 이런 비슷한것를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독자들을 당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 는 이런 측면에서 디피컬트 스토리라고 명명하는게 더 어우릴 듯한 그런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오죠. 처음 이 작품을 접하면서 인물들에 대한 접근을 가지고 시작하는데(대게의 작품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주연과 조연 그리고 양념으로 뿌려 놓은 인물들의 성정과 그들이 끌어가는 내러티브의 감을 잡기 위해 시작하는데) 한 챕터가 끝나기 무섭게 이어지는 다른 장의 이야기에는 갑자기 그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앞 장의 스토리를 완전히 갈아 엎어버리고 마는 효과를 가져오죠. 작가도 너무 했나 싶어서 앞장의 인물을 어떠한 형태로간에 카메오처럼 등장을 시키지만 그 연결성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죠. 물론 작품의 중간부를 넘어서면 나름이 퍼즐을 끼워맞춰 나가는 일종의 재미 아닌 재미를 만끽하게 되지만 페이지를 앞으로 뒤로 몇번에 걸쳐 왕림해야 하는 번거스러움을 면할 길은 없습니다. 이렇듯 복잡한 미로속을 헤매이게 하는 작가의 의도된 장치의 중요성이 작품 후반부에 가서 그 빛을 발하게 되기도 합니다. 뒤죽박죽 얼히고 설힌 복잡한 인물들도 조금만 신경써서 보게되면 다양한 형태로의 관계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 현실의 우리를 대변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권터 그라스가 극찬을 했듯이 이번 작품은 독일이 통일과정과 그 이후 남게되는 후유증에 대해서 개인들이 삶을 가장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등장인물 하나 하나에 대한 의미 부여가 가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역설적으로 본다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할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역으로 개인들의 삶을 부각시기키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까요). 잉고 슐체는 <심플 스토리> 를 통해서 주인공이라던가 비중있는 인물에 대한 특별한 권능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주인공이나 특별한 관심이 쏠리는 인물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자체가 바로 통일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대한 일대의 반기를 든 작가의 사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구요. 이는 작품의 스토리를 29장이라는 독립된 별개의 이야기(사실 이 별개의 이야기 자체로도 무슨말인지 얼핏 이해하기가 그리 녹녹치 않죠. 그러면서도 왠지 하나의 단편소설같은 느낌을 많이 줍니다)로 진행하듯이 통일과 그 이후에 대한 일반 민중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전혀 메이컵하지 않는 민낯 그대로를 투영해 내고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인 작품이다는 생각입니다. 뭔가 강조하고 좋게 보여줄려는 서사보다 더 강하게 독자들의 뇌리속에 각인된다는 것을 보여 주네요.
"7에 대해서 물어요. 그럼 노인들은 4를 설명해주고, 내가 또 한번 물으면 6에 대해서, 그러곤 3에 대해서 설명하죠. 내가 포기할 때쯤 되면 노인들은 다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4더하기 6 빼기 3은 7이라고" 이 처럼 이번 <심플 스토리> 를 정확하게 표현한 문장은 없을 듯 합니다. 길게 설명할 필요없이 딱 이처럼 처음에 출발해서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되새겨보게 되면 아하! 하고 무릎팍을 탁 치면서 머리속이 명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작품이죠. 디피컬트하면서 컴플랙스하지만 다른 한편의 시각으로 보면 아주 심플한 그런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전체적으로 많이 상반된 형태를 띨 것으로 보입니다. 포스터모더니즘계열의 복잡다난한 구조를 가진 말 그대로 디피컬트한 스토리라는 평가도 충분히 이해갈 수 있는 부분이고요(사실 많은 독자들이 처음 대면하면서 느끼는 그런 평이지 않을까 싶네요 솔직한 표현으로 이번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절로 이해가 되었다고는 못할 정도로 전혀 심플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정말 단순한 테마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도 일리가 가는 부분일 것입니다. 통일된 직후 구동독의 아주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많은 사람들의 그들만의 이야기를 그저 나열하고 있는듯 하지만 그 각기 다른 인물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떠한 형태와 방법으로든 서로간의 관계성(혈육적이거나 사회적으로나)을 가지고 있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잉고 슐체는 이러한 무지건조하고 전혀 맛갈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양념으로 밑간을 하면서 오히려 이들간에 벌어지는 스토리에 진정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다 줍니다. 이러한 효과가 거대한 국가적인 이데올로기로 확대 포장된 통일과 그 후유증에 대한 다큐보다 훨씬더 생동감있고 사실감 있게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거죠. 통일이 되던 분단이 되던 간에 그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담론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임을 강조하는 거죠. 이러한 면은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왜 제목을 "심플 스토리" 로 정했을까라는 부분에 수긍이 많이 가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범국가적이고 범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독일의 통일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거대한 담론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자기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그저 그런 심플한 이야기일수밖에 없다는 반증이 한부분을 서사하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