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기다림 민음사 모던 클래식 63
나딤 아슬람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슬람'과 '무슬림'은 우리에겐 아직도 낯선 영역에 자리잡고 있는 근접하기 힘든 과제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살만 루시디나 오르한 파묵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그네들의 사유와 가치관에 대해선 충분한 이해보다는 확대 포장된 선입관이 뇌리 깊숙히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9.11 사태로 한 쪽의 주장만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구조적 모순에서 더욱 더 이슬람은 테러리즘과 더불어 '악의 축'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러다 보니 이슬람권 문학에 대한 시각 역시 이러한 선입관들에게 자유로울수 없는 것 역시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영향들로 인해 이슬람권 출신 작가들의 작품은 왠지 과격할 것이다라는 느낌도 들게 마련이고 이러한 선입관들이 같은 문학작품을 대하는 느낌 자체를 180도 다르게 보게 하기도 하죠. 그 동안 우리는 오르한 파묵이라는 걸출한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슬람문학에 대한 감을 잡긴 했지만 사실 터키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이슬람권을 매조진다는 느낌은 가질수 없다는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기도 했죠.

 

   우선 이번 작품을 평하기 전에 모던 클래식에서 먼저 선보였던 두 작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두 작품을 먼저 언급하고 이번 작품을 평하는 것이 오히려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와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를 통해서 한 발자국 나아간 이슬람 정통문학의 맛을 봤습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해서 이슬람권 전반에 흐르는 가치관과 사유 그리고 서구세력에 대한 의식등을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깊이 있게 인식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그 동안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제대로 정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번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 을 읽기 전에 먼저 이 두 작품을 접해보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네요. <헛된 기다림> 은 앞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된 두 작품과 비교해서 읽게 되면 한 차원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우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는 파키스탄 출신에 작품 배경도 파키스탄이고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는 이란출신 작가에 이란을 작품배경으로 되어 있는 이슬람의 본 고향 작품들입니다. 이번 <헛된 기다림> 역시 아프카니스탄출신의 작가에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파키스탄이 작품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된 이슬람 문학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는 정치적인 색체가 상당히 강하게 칠해져 있고 상당히 자기주장적인 작품(물론 이 표현은 그리스도교 서구세력의 시각에선 그리 보일 것입니다만)이었다면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는 남녀간의 사랑을 주된 내용으로 이슬람문화와 사회전반을 자조하는 사적인 영역의 작품으로 볼 수 있어 두 작품이 대조를 이루면서 독자들에게 다양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이번 나딤 아슬람의 <헛된 기다림> 는 앞의 두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동시에 아우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가 다소 되바라지게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는 유화적으로 돌려서 표현하고 있다면 <헛되 기다림> 이 두 가지의 기법을 모두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랄까요 양떼를 몰들이 숨가쁘게 몰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확 놓아버리는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해버리는 방식이라고 할까요.(이 점은 등장인물들의 언행를 보게 되면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영국과 미국,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의 국적(강자와 약자,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도를 내포하고 있죠)을 가진 남녀노소(개인적인 영역에서 또 다른 강자와 약자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시사합니다)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흔을 확인하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가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현재와 과거(회상)를 오가면서 각자가 현재 이자리에 어떻게 서 있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추리적 기법과 사건 나열적인 서술방법을 구도로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변하지 않는 공간속에서 시간의 갭만 느끼게 하는 설정이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전제는 상호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치유한다고 하지만 막상 등장인물들(마커스를 제외하고는) 은 자신에 주어진 역활만을 충실하게 수행 한다는점(정말 말리고 싶을 정도로 충실하게 수행하죠)과 각자의 스토리가 정점을 향해 치닫가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듯이 슬그머니 덮어 버리는 구도가 이번 작품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방식은 나름의 많은 점을 시사한다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띄입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쯤에서 그만하지 혹은 넘지 않아야 할 것만 같은 선을 사정없이 넘어버리는 등장인물들의 과감성과 뻔뻔함을 그리고 그렇게 넘어버린 선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발을 빼드시 흐지무지 갈무리하는 점들이 다소 위태롭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설정이 작가의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하네요. 나딤 아슬람은 이러한 외줄타기식의 서사를 통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 내면 저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상흔을 다 끄집어 내서 알려야 하고 이를 이해의 기본 전제로 삼아야 제대로된 치유가 되고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행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피빛 물든 장면들도 서스럼 없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장면들도 과감없이 작품에 뿌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다소 파토스적인 서사들이 독자들의 호흡과 맥박수를 사정없이 끌어올리지만 작품 요소요소에 산재하고 있는 나이브한 서사들을 만나면서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러한 기법도 양립할 수 없는 양측을 보듬을때 진정한 화해와 치유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작가의 사유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카사와 데이비드의 죽음은 바로 상호간의 반목과 상흔을 승화시키는 화해의 메세지로 독자들에게 다가갑니다. 죽음이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대두시킴으로써 작가는 화해와 치유의 어려움과 더불어 그 절박성을 호소하고 있기도 하죠. 작중 "약자들의 용서는 당신들 강자들이 들어마시는 공기 같은 거, 약자들의 용서가 있어야 당신들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자기네 나라의 건물 두 채가 무너진 일로 그들은 세상의 어둠을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얼마나 안전하지 못한 곳인지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한다" 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고, 치유와 화해로 어떻게 다가가야하는가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정말 제대로 된 이슬람 문학을 만났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앞의 두 작품이 에피타이저였다면 이번 <헛된 기다림> 이야말로 메인 매뉴에 해당 한다고 보여 집니다. 여기에 작품 곳곳에 묻어나고 있는 가히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은 서정적인 서사들이 작품을 돋보이게 하고 독자들에게 더 어필하게 한다는 점입니다. 번역가도 작품해설 첫 마디에 언급했던 'Beautifully written' 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내러티브 전반에 흐르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체가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서사들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시공간과 맞물리면서 한층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요. 이슬람과 비이슬람(주로 그리스도교의 서구세계)이라는 운명적인 만남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과 이 공간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슬림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균형감 있는 시각으로(상당히 이부분이 쉽지 않는데 작가는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상흔을 다 어루만져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무에진의 낮은 울림은 잔잔하게 울려 퍼질것이고 그 울림속에서 치유와 화해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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