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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2
자크 스트라우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신예 작가 자크 스트라우스의 <구원> 은 굳이 장르로 말하자면 성장소설쪽에 들여놔야할 것 같습니다(저 개인적으론 100% 수긍할 수 없지만요). 사실 성장소설이라는 분야의 장르는 저 개인적으로는 그 다지 익숙치 않는 장르이고 약간의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뭐랄까 이도 저도 아닌 청소년들을 위한 일종의 본 게임에 들어가기전에 한 두번쯤 경험하게 하는 데모버전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해서 읽지도 않았고(아 참 물론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와 같은 해당사항이 없지만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구원> 이라는 작품도 성장소설이라는 자체를 모르고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뭐랄까요 왜 굳이 이 작품에 대해서 성장소설이라고 칭하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호밀밭의 파수꾼' 을 리바이벌 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인생의 쓴맛, 단맛, 쾌감, 죄책감, 스릴, 감추고 싶었던 욕망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한번쯤은 겪어봤을듯한 그런 일련의 사태들을 이처럼 농밀하게(열한살의 눈에는 더욱더 농밀하게 보였겠죠) 서사해 놓은 부분들이 절로 수긍가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우리에겐 다소 낯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배경이 접목 되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더해 간다는 것입니다. 우선 작가의 출신과 성장배경에서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희망봉, 아파르트헤이트와 넬슨 만데라 그리고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산출지로 알려진(아참 얼만전 개최되었던 월드컵도 있네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우리에겐 상당히 낯선 나라이죠. 아프리카 대륙에 자리하고 있지만 왠지 유럽(백인)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고 팽창 제국주의의 피해 산물로만 인식되고 있기에 가해자의 시선보다는 피해자인 아프리카 흑인들의 시선에 더 심정적으로 팔이 굽기 마련이죠. 그래서 책에 나오는 다소 모호한 표현이나 흑인 하녀들의 삶과 흑인에 대한 비하적인 용어들을 보면서 씁슬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킬레스건이 다름 아닌 이번 작품을 더 빛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작가인 자크 스트라우스의 솔직 담백한 서사들이 위로 차원이나 대충 넘어 갈려고 하는 그런 어슬픈 화해의 손짓이 아니라 정말 화해의 장으로 소설을 구상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주인공 '잭' 과 잭이 바라보는 또래와 성인들, 남성과 여성, 백인(영국계, 아프리카너계), 흑인, 종교, 죽음, 性, 가치관등 삶의 모든 면에서 부딛혀야 하는 쟁점들에 대한 서사들이 하나같이 독자들 가슴속을 파고 든다는 것입니다. 특히 남성독자들이라면 잭과 같은 사춘기를 자연스럽게 회상하게 되면서 뭐 지금이야 입꼬리를 살짝 치켜 올리면서 웃음으로 마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세상 무엇보다 심각했던 그런 행동들에 대한 데자뷰를 맛보게 된다는 점이 또 다른 위안거리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음 공식적으로 활자화된 문서를 통해서 면책을 받았다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죠. 또한 여기에 남아공 전반에 대한 역사까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죠. 뭐 보어인이나 아프리카너라는 친근하지 않는 용어와 인종적 갈등이나 종교적 갈등등에 대한 남아공 특유의 가치관이 오버 랩되면서 종합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장면을 대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점은 원작의 "dubious salvation" 라는 부분들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던 점입니다. 구원이면 구원이지 의심스러운 구원은 무엇일까 뭐 딱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나름의 느낌으론 작가의 일종의 면피성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흑인과의 갈등에 대한 나름의 사과와 화해의 장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피해자의 시선에서는 완벽하지 못한 뭐랄까 마지못해 아니면 떠밀려서 혹은 세계가 바라보는 따가운 눈총 때문에 ,,, 그리고 또는 사춘기의 돌발적인 사고나 행동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100% 면제부를 획득하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등 다양한 각도에서 완벽하게 단절된 느낌이 아닌 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개인들과 남아공의 현주소를 지칭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래서 더 솔직담백한 맛을 느끼게 하는 제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하면서도 무엇보다 돋보이는 점은 잭이라는 주인공을 통한 두 단계의 시선 처리라는 점입니다. 첫번째 단계는 정말 사춘기 소년의 시선으로 아기자기 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표현 기법들이 왠지 독자들을 과거속으로 끌고 가서 주져않혀 버린다는 것이죠.(할머니의 죽음, 페트뤼스와 19금의 그림책을 보는 광경, 무엇보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관게에 대한 서사는 가히 일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독자들은 마냥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그 옛날 철모르던 시절로 갑자기 돌아가 기분이고 '그랬지 나도' 하면서 절로 웃음짓게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두번째 단계는 다 자라서 엄마 아빠의 말이 법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를 확연히 알게 된 성인의 시선으로 무덤덤하게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아마 이러한 시선처리로 인해서 더욱 더 전체적으로 상당히 매력있는 아이템과 그런 아이템을 맛깔나는 필체로 서사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성장소설이라는 한계을 뛰어 넘어 세대간의 소통을 이끌어 내면서(물론 협소한 의미죠. 좀더 줌 다운하게 되면 세대간 및 계층간 그리고 인종간의 소통으로 봐야 하겠죠)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여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낯선나라에 대한 이해가 들면서요(이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이스라엘, 일본등과 더불어 세계 3대 惡으로만 생각했던 나라였는데요 이부분이 많이 완화되었습니다)굳이 성장소설이라는 현판을 걸어야 할 이유를 찾아볼 수 없을만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보기 드문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차기작이 더 기대되게 하는 작가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