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전집 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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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에 대한 편차는 개인별마다 상당한 차이를 부여하고 있죠. 그러기에 문학작품에 대한 묘미가 있는 것이고 다양한 부류의 독자층이 생겨나는 것이겠죠. 그 동안 책좀 본다고 하면서도 사실 문학 작품에 대해선 상당히 아래로 보는 경향이 본의 아니게 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은것 같았습니다. 동서양고전이나 전문경제/인문서적을 보면서 이 아까운 시간에 왜 저런 문학작품에 매진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는데 막상 문학작품들을 대하면서 아 책읽기의 진수는 바로 문학작품에 있구나라는 사실 하나를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작가별로 판이하게 다른 사유와 담론을 내러티브에 서사하는 기술적인 방식에 이르기까지 그 세계는 갈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네요.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밀란 쿤데라가 제 가슴에 살짝이 불을 당기더라구요. 이 양반의 작품을 아직까지 많이 접해보질 못해서 딱히 '밀란 쿤데라 스타일' 이다라는 감을 제대로 잡을 순 없지만 그래도 한두 작품씩 읽어나가면서 막연하게나마 아! 이런것이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구나라는 막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웃음과 망각의 책> 을 접하면서 대략적인 밀란 쿤데라의 스타일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딱히 기호학적인 언어체계로 100% 표현할 수 없지만 이번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플롯이나 모티프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전반적으로 아우러 대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웃음과 망각의 책>소설과 에세이(그것도 상당히 무거운 에세이라고 해야할까요)의 경계선(경계선이라는 이름의 별도의 작품 수록되어 있기도 하죠) 을 묘하게 건너다니면서 독자들의 눈을 희롱하고 있죠. 여기에다 마치 단품을 모아 놓은 선집같은 구조를 보여주면서도 이거 막상 읽다보면 앞과 뒤가 연관되는 묘하디 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또 한번 독자들을 농락하죠. 뭐랄까 이번 작품에 수록되어 있는 '경계선'과 '엄마' 에서 볼 수 있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성애 장면을 보는듯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7편의 이야기가 밀란 쿤데라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혹은 전지적 작가시점과 뒤섞이면서 내러티브의 주제를 잡아 나가기가 곤혹스럽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아주 가뿐하게(단편들이라는 생각에 말이죠) 출발했건만 그리고 1부 '잃어버린 편지들' 을 끝낼때만 해도 정말 부담없이 생각했는데 이건 갈수록 태산이라고 나도 모르게 덩달아 작중인물들과 꼬여 버리는 느낌을 받게 하네요. 여기에 작중 화자인 밀란 쿤데라의 뜬금 없는 서사들이 덧대어 지면서 중수필을 읽고 있는 것 아닌가(뭐 문학쪽에 기초적인 지식이 없다보니 사실 어리둥절했습니다)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무엇보다 다시 한번 주목해지는 부분은(물론 저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지만 성애의 묘사 부분이 독특하다는 것죠. 솔직한 표현으로 쇼킹 그자체였지만요. 밀란 쿤데라의 이런 성애의 묘사는 상당히 은밀하고 농염스러운 에로시티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은 상상해 볼 수 있는 (뭐 이렇게 말하면 내 자신의 性정체성에 대한 이상한 발현일수도 있지만요)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뭐랄까요 내 머리속에 있는 씬들을 마치 스캔이라도 뜬듯이 보여주는 서사들이 들어낼 수 없는 속마음을 들킨것 같은 얼굴 화끈함을 느끼게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제일 이상한 것은 이런 성애의 표현과 설정들이 왜 그리 3류 에로비디오를 보면서 느끼는 저속함을 느낄수 없다는 것이죠. 그의 작품에 걸쳐 거의 모든 면에서 등장하는 이런 묘사들에 익숙해져서 그런것이지 아니면 밀란 쿤데라만의 뛰어난 화법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의 일환으로 보는게 맞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의 쟁점은 거의 모든 작품들속에 녹아져 있고 각각의 작품들을 감미하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조미료 같은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번 작품의 백미는 다름 아닌 '경계' 에 대한 담론의 서사들이라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계에 대한 담론과 웃음 그리고 망각(비록 제목이지만요 오히려 경계에 대한 강한 서사로 인해 묻혀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뭐 하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대담론은 맞습니다) 이 담론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해서 경계는 경계성대로 웃음은 웃음대로 망각은 망각대로 각각의 나래를 펼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죠. 또한 이 삼총사가 하나의 앙상블로서의 일체감을 강하게 돋보이게 하기도 하고요. 물론 애매모호한 배경음악(밀란 쿤데라의 목소리가 강하게 간섭하게 되죠)이 깔려 있어 더 모호성을 가중시키면서 작품 각각의 경계성을 허물어 버리는 서비스도 부여하고 있네요. 

단적으로 파세르의 장례식 풍경을 다룬 부분에서 예견치 못한 바람으로인해 날라간 모자때문에 장례식 본연의 모습을 사라지고 모자를 주으려는 클레비스나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모자나 이를 지켜보고는 사람들 모두가 경계와 웃음과 그리고 망각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 모든것은 우리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하나의 속박에 불구하고 그 경계선을 넘는데는 웃음과 망각이 필수요건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죠.

 

"경계 반복을 받아들일 만한 최대 용량, 경계는 반복의 결과가 아니다 반복은 경계를 눈에 보이기 만드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일뿐이다" , " 그래, 더 이상한 것은 저 모든 몸들이 아름답다는 거야. 봐봐, 늙은 몸조차 병든 몸조차 몸이 그저 몸이기 때문에, 옷을 벗은 몸이기 때문에 아름다워. 자연처럼 아름다워. 오래된 나무도 젊은 나무만큼이나 아름답고, 병든 사자도 여전히 동물의 왕이지, 인간의 추함은 옷의 추함이야". "몰이해 위에 세워진 경이로운 연대", "경계선이란 인간이 만든 문명이라는 감옥의 건너편" - 이 문구들이 이 책의 전반을 아우르는 밀란 쿤데라의 모든 담론이 함축되어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솔직한 표현으로 여태까지 얼마 읽어보질 못했지만 대면했던 밀란 쿤데라의 작품중에서 가장 난해하게 느껴졌고 한편으로 가장 강렬하게 밀란 쿤데라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구요, 작품전반에서 느껴지는 잔상이 참으로 오래토록 남을 작품인것 같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 이순간까지도 제목인 <웃음과 망각의 책> 이라는 제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니면 그토록 강조되고 있는 '경계' 에 대한 개념을 종잡을 수 없어서 그런지 멍한 상태로 마무리하게 되지만 어렴풋하게 나마 웃음과 망각 그리고 경계의 모호한 선상을 그리게 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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