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딴에는 진보적인 사고와 더불어 열린 취향(다양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졌다고나 할까요)의 소유자라고 자부하고 있는 저이지만도 막상 김혜나의 <정크> 를 읽고 난 첫 느낌은 다소 당황스럽다는 점을 애써 무시할 수 없네요. 물론 동성애에 대한 근본적인 몰이해와 더불어 항상 이성간의 섹스가 극히 정상적인 절차이거나 다윈의 진화론을 거론해가면서 충분히 가능한 다양성의 한 방편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머리속의 상념들이 어디까지나 하나의 일률 단편적인 자기방어적인 개념이 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 어쩔수 없나 봅니다. 특히 <정크> 에서 서사된 동성간의 성애 묘사부분은 더욱 더 감정적 격함을 떠나서 혼란스럽게 다가 온다고 굳이 부인하지 못하겠다는 말이죠.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작가의 묘사가 그 만큼 리얼리티 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고요. 하여튼 이래저래 이번 작품은 설왕설래가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요즘 한국 문학의 또 다른 돌파구로 루저문학 장르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세계문학상 후보작으로 오른 작품들도 대세가 루저문학계열이라는 보도가 있었듯이 아무래도 현 시대의 고달픔이 현실를 부정하지 못하게 하는점과 몇몇 이들이 보여주는 현실 세계의 괴리감이 더욱 더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겠죠. 이런 측면에서 이번 작품을 바라보면 왠지 뒤가 씁쓸함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분야 역시 독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돌파구라는 차원에서는 눈여겨 볼 만한 사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다 알면서도 들추기 민망한 부분을 속 시원하게 풀어 놓았다는 점에서 독자들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2010년 오늘의 작가상 <제리> 로 데뷔한 김혜나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 <정크> 는 바로 이런 루저들의 삶을 서사하고 있는 믿고 싶지 않는 소설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태를 인지하면서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적합하겠네요. 왜 나만은 그런 루저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자위감이라고 해야할까요. 전작에서도 언급된 루저보다 이번 작품은 루저라는 개념을 훌쩍 뛰어넘어 한 단계 더 위라는 개념의 정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색입니다. 루저도 감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열악한 요소들(서자에 동성애자등)의 주인공 '성재' 를 통해서 정말 제대로된 루저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이부분이 저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들어오더라구요. 그러니까 어설픈 서사들이 아닌 정말 제대로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서사들을 통해서 밑바닥 인생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죠. 아마도 성재와 민서 형, 성재와 주아간의 성애 묘사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에로틱하거나 혹은 역겹거나 하는 그런 일체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상당히 주목받을 만한 작품으로 인식됩니다.

 

  뭐 이런 느낌 있죠. 대충 루저들의 피폐한 삶과 그들의 가치관등을 대충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의 언어를 동원해서 갈무리하는 그런 방식이 아닌 정말 이들의 삶을 바로 문전앞에서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있는 서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네요. 특히 세 가지 화두인 화장(메이크업)과 동성애 그리고 약물(마약) 을 소재를 루저들의 삶과 연결 시키면서 당연하게끔 받아들이게 만드는 내러티브의 구성이 상당히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 주인공 성재에게 있어 이 세가지는 다음 아닌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자 자신을 정크속으로 계속 끌어들이는 악과 같은 존재입니다. 좀 더 사유적인 면으로 보자면 이들 세가지 트로이카는 성재 자신의 실체를 감추고 두려움을 들어내지 않으므로써 즉 생존을 위하여 남성성을 버리고 여성성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면죄부로 작용하는 것이죠. 작중 " 죽지 않고 살아서,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생을 이어가지 위해 화장을 하는 남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 라는 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밑바닥의 루저인생에서 남은 마지막 자산인 몸의 性정체성 마져도 스스로 구축할 수 없는 서글픔을 보여주는 상당히 쇼킹한 서사들이 많이 산재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번 작품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면이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머리속으로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펼쳐진 서사에 대한 일종의 거부랄까 뭐 이율배반적인 제 자신을 보면서 일차적으로 당혹했고 그러면서도 작품속으로 자꾸 빨려 들어가는 흡인력에 스스로 놀라게 하는 작품입니다. 상당히 단순한 내러티브이지만 사유만큼은 오래토록 잔상에 남을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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