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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세트 - 전3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이번에 드디어 러시아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작품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뭐 이렇게 말하니 본인의 무지함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꼴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이제야 말로만 들어 왔고 학창시절 방학숙제로 줄거리만 요약된 부록에서 보아왔던 이 양반 작품을 대하고 나니까 면피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톨스토이에 대해선 워낙 알려진 바도 많고 확고 부동한 매니아층도 많을 뿐더러 문학도나 왠만한 작가 그리고 문학 비평가들에게는 바이블 같은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러다 보니까 솔직히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한 서평을 올리기가 두려울 정도이네요. 이거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는 뭇매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무지한 사람이 문학 작품도 못 알아 본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뭐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몇자 올려봅니다.(뭐 서평이란것이 언제까지나 책을 읽은 본인만의 느낌이라는 전제니까요)
우선 처음 책을 접하면서 제목 자체나 표지만 어필보게 되면 여성 취향적(물론 성을 호도하는 표현은 절대 아닙니다)인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밀려 왔던게 사실이고요. 뭐 초장에서 부터 시작되는 안나 집안의 이야기등에서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하면서 왠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더라' 라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책을 접었다가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을 먼저 대해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워낙 고상한 양반이니 한번 주파해 보자는 심정으로 읽어나갔던게 정확한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이는 아마도 그 동안 머리속에 부지불식간에 남아 있었던 '대문호' 라는 타이틀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 그리고 학창시절에 써머리로 대충 읽었던 통속적인 연애소설 정도라는 선입관으로 인해 이러한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1부 부터 시작되는 스티바와 안나의 가계를 중심으로한 내러티브에서 이러한 느낌은 크게 진전이 없었던 것은 역시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달리 대문호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구심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레빈(사실 그래서 더 애착가는 인물이기도 하고 실상 숨겨진 주인공으로 생각되기도 하죠)이 등장하는 서사에서 부터 서서히 톨스토이의 진가가 발휘하는 것 같더라구요. 안나와 그녀를 둘러싼 러시아 귀족계급의 결혼과 연애 그리고 당시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들의 삶과 고뇌를 재치있게 융화시켜 나가면서 삼류 통속적인 연애소설의 내러티브로 흐를 수 있는 물길을 급속도로 잡아챘다는 점에서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합니다. 여기에 어렴풋하게나마 당시 제정 러시아의 시대상을 언급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발끝에서 머리까지 스캔하는 듯한 세세한 묘사는 절로 안나라는 미지의 여인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는점, 또한 여타 인물들의 심리적인 흐름까지도 독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성에 걸맞다는 느낌이 가지게 합니다. 사교모임이나 다툼등을 통해서 주고 받은 대화(안나와 브론시키가 다투는 장면은 자칫하면 여성대 남성이라는 양분법적인 논쟁으로 비하될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읽다가 왠지 안나를 확 한대 뭐 이런 감정이 들었으니까요 반대로 여성들 입장에선 블론스키의 면상에 오선지를 그리고 싶어지겠죠. 그 만큼 톨스토이의 묘사는 흡인력이 강하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입니다)는 충분히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신뢰감을 더해주고 있는 것 같아 내러티브의 징검다리 역활을 톡톡히 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경마 레이스와 레빈과 스티바의 새 사냥의 묘사는 상당히 주목받을 장면으로 보이더라구요. 특히 레빈의 충실한 사냥개 라스카의 섬세한 움직임 하나 하나를 의인화한 기법은 가히 압권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것 입니다. 눈 앞에 광활한 러시아의 개활지가 펼쳐지고 여기 저기서 울려퍼지는 총성과 매콤한 화약냄새가 절로 풍겨지는 듯한 현장감을 더해 주는 것 같아 일품이었습니다.
음 다만 아쉬운점이라면 너무 귀족생활 일변도의 그림을 그리고 있어 실상 당시 민중들의 삶에 대한 심도 깊은 사유가 엿보이지 않는 다는게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비견한 예를 들어 동시대를 살았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과 비교한다면 너무 귀족적이지 않나라는 생각 지울수 없게 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느낌들이 볼세비키 혁명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왜 이부분을 톨스토이는 외면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배어 나오더라구요. 물론 중간 중간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의 핍팍한 삶을 언급하고 있지만 왠지 강 건너 불구경하기 같은 텃치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뭐랄까 산업혁명과 농노해방으로 촉발된 근대화가 러시아 농촌을 강타하는 과정에서 이를 수용하는 층과 거부하는 층의 묘사부분를 태생적 구조문제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등이 개인적으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좀 더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면 이러한 귀족들 중심의 서사들이 왠지 걱정거리가 없어(일반 러시아 민중의 시각에서 본다면요) 걱정거리를 만든다는 느낌이 들면서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의 시각에서 봐서 이런 감정이 들었지만요. 그렇더라도 당시 시대상으로 볼때 역시 그들만의 리그이지 않을까라는 의구심 지울수 없게 하네요. 바로 이점이 옥에 티였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러한 아쉬운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원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 레빈를 집중적으로 포카스하면서 진행되는 삶과 종교에 대한 서사 부분을 마무리로 돌리면서 그 동안 가볍게 느껴졌던 내러티브를 사정없이 가라앉게 하는 효과를 표출하게 됩니다. 물론 작중에 레빈을 중심으로 쏟아 내는 사유들이 상당히 무게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이 '아프로디테 판데모스'(지상의 관능적 사랑) vs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육체적 욕망이 없는 지고한 사랑) 이나 '연애 끝에 하는 결혼'과 '이성에 따른 결혼', '쾌락이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진리의 탐구에 있다' 라는 부유한 사유거리였다면 결말 부분의 레빈의 사유는 모든이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톨스토이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하는 서사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종교를 야만적 부류의 국민들을 위한 굴레라고 여기는 유쾌하면서 핏속에 흐르는 자유주의자 스티바에 대한 톨스토이이 시각이 전 개인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하게만 비쳐지지만 한편으로 보면 가장 남성들의 심정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 이가 바로 스티바이지 않나라는 얄팍한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전반적으로 고전중에 고전을(특히 톨스토이 작품을 완독했다는 점에서 이제 어디가서 무식하다는 소린 듣지 않게죠) 독파했다는 나름 안도감을 갖게 되고요, 자칫 안나를 중심으로한 지리멸멸한 연애소설로 흐를수 있는 내러티브를 마치 작정이라도 한듯 종교와 인간의 삶의 근원적인 문제로 유인하면서 톨스토이의 진가를 발휘한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일변도로 흐를수 있는 내러티브에 인간적인 삶(물론 귀족적인 시각이 강하게 묘사되어 있지만요)의 고뇌와 종교적 선택의 갈등 등의 사유를 깔아 놓으므로서 그 품격을 한차원 업그레이드 했다는 점이 톨스토이가 아니면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가지게 합니다. 먼저 선택한 작품이 다소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면이 강하다 보니 톨스토이 작품세계에 대한 몰이해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향후 다른 작품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