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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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쪽에 관심이 많다보니 이번에 이한우의 <왕의 하루> 라는 역사 평설이라는 책이 눈에 띄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부제인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하루 동안 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표현이 호기심을 자극하게 하던군요. 뭐 그 동안 많은 역사서와 평설을 접하면서 뭔가 새로운 분야를 거론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던 가장 큰 동기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솔직한 표현으로 이덕일소장을 비롯한 몇분의 저작을 빼고는 그 내용이 그 내용인 평설들이 대부분이고 일회용으로 반짝하는 우려먹기식의 편집들이 넘쳐났던 것도 사실이죠. 그러면에서 이한우의 <왕의 하루> 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특히 첫 번째 챕터에서 왕이 결정적인 하루를 회상하는 독백 부분이 왠지 기존의 평설과는 다른 분야를 거론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일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처럼...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초 기획했던 이러한 부제와는 다른 방향의 서사들이었다는 점에서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질 않네요. 결국 기존의 평설에서 크게 일도약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마지막 챕터처럼 왕과 관련된 특수성이 가미된 부분을 중심으로 풀어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합니다. 그래도 이러한 시도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고요 대충 몇가지 언급해야할 부분은 따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사관에 입각하여 서평을 올리는 것이니 저자나 다른 독자분들과 충돌되는 부분은 널리 양해를 바랍니다.   

 

▣ 눈에 띄는 서사들

무엇보다 이번 <왕의 하루> 에서 주목 받고 눈에 띄는 서사는 다름아닌 예종과 연산군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예종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군주였죠. 워낙 재임기간도 짧았고(물론 인종에 비한다면 길었지만요) 앞뒤로 쟁쟁한 군주틈에 끼이다 보니 태종태세문단세예성...으로 이어지는 암기의 대상으로만 남았습니다만 그가 아버지 세조가 이루지 못한 왕권강화를 추진하기 위하여 공신들과 힘겨루기를 했다는 점(그것도 그냥 밀어부치기식이 아닌 자기나름대로의 페이스를 갖고 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할만 하죠)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제대로 뜻을 피우지 못하고 의문사했다는점(이덕일은 '조선 왕 독살사건' 에서 독살로 규정하고 있죠)을 사서에 근거한 추론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논거를 서사하고 있어 새롭게 조명 받아야할 군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단순한 폭군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연산군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시각보다는 재임 초기의 왕권강화에 대한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있다는 점이 그 동안 왜곡된 사관을 어느 정도 바로잡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네요. 그리고 '문묘배향' 과정은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여기에 숨어있는 비밀을 소개했다는 점과 실록의 제작과정을 면면히 소개한점등은 실록과 사관이 미쳐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라는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다소 아쉬운 서사들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치세 그리고 인조반정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정조에 대한 평가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서사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요즘 부각되고 재조명 받고 있는 광해군의 중립외교 및 치세에 대해선 싸늘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근저에는 선조의 인물됨됨이와 인재발굴능력평가를 높이하면서 광해군의 인재정책을 폄하하죠. 특히 선조의 내성외왕(內聖外王)의 꿈을 아들 광해가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표현까지 하고 있습니다. 선조대에 조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재들이 활약했던 시기입니다. 이 말은 성종때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사림이라는 인재풀이 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하지만 이러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왕권의 정통성에 집착하면서 임란이라는 최대 위기를 자초했던 것은 선조의 무능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이러한 시각은 인조반정을 정당하게 보여질 수 있는 장을 열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광해군 치세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느낌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인해 양대호란이란 치욕을 겪으면서 조선은 그야말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불성설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다른 표현이 생각나질 않습니다.권력을 위해서 같은 당파라면 나라를 팔아먹던, 들어서 먹던, 곤경에 처하든 간에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형태가 결국 인조반정이라는 요상한 일이 발생되었고 소현세자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 무엇보다 영문도 모르는 일반 백성들만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당쟁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서사되었다면 오히려 설득력을 가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선조나 인조에 대한 재평가가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왠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정조에 대한 평가 역시 다소 노론지향적인 시각으로 보입니다. 공적인(영조에서 정조로 이어지는 왕통계승과 선왕의 정치성을 되물림하여 치세하여야 한다는 중론등) 치세보다 사적인(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부분들) 면에 너무 집착했다는 점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을 거론하면서 홍국영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정조치세 전반인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점철되었다는 뉘양스를 갖게 합니다.(하지만 정조의 치세기간이 닫혀있던 조선사회에 다양성을 열었다는 점에서보면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논조이죠) 결국 정조의 죽음 역시 이러한 점에 집착하다 자연사한 것이지 독사설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혜경궁 입장에서는 자신의 친정을 숙대밭을 만든 홍국영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 없을뿐더러 극히 친 노론적인 서사(가문 전체가 노론의 핵심세력들이었죠)라는 점을 거론해야 제대로된 인식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김조순과 사돈관계를 맺음으로서 세도정치라는 불행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라고 했지만 실상 정조가 의문사하지 않았다면 발생할 수 없었던 결과론적인 표현이라는 생각만 들게 합니다. 물론 역사는 결과를 놓고 평가한다면 달리 할말은 없지만요. 그래도 이러한 시각 자체가 일반대중들을 호도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습니다.

 

전반적으로 당초에 좋은 취지와 기획으로 접근한 평설로 출발했지만 전체적인 역사적 시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비근한 예로 정조의 죽음에 대해서 당초에 자연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말미부분에서는 다소 한발 빼는듯한 서사는 시종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당초 기대했던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라는 부제와는 거리가 먼 보통의 역사 평설에 가까웠다는 점이  물론 마지막 챕터에서 즉위식, 가례, 경연, 묘호등 쉽게 접하기 힘든 분야에 대한 서술이 그나마 추가되어 있어 위안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취지나 의도했던 기획에 비해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오타 오식부분이 제법눈에 들어와서 무엇보다 역사평설이라는 부분에서는 좀더 새심한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구요.

 

2013년 사자성어로 제구포신(除舊布新)을 선정되었습니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치자는 뜻 같은데요. 아마도 우리 역사학계에 만연된 사관에 딱들어 맞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저자의 사관이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한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는 높이 평가하고 싶어지네요. 이러한 기획물들로 인해 일반 대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좀더 역사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역사는 그 민족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종교와도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역사를 잘못 인식하고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계사년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정책과 더불어 개인들도 좀더 열린마음으로 한국사를 대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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